오랫동안 천천히, 애정을 담아 작품을 감상하는 곳 ‘허름한 미술관’으로 오세요
상태바
오랫동안 천천히, 애정을 담아 작품을 감상하는 곳 ‘허름한 미술관’으로 오세요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2.06.27 09:30
  • 수정 2022-12-06 17: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름한 미술관을 운영하는 동화작가 이정애 씨(왼쪽)와 그녀의 딸이자 미술작가로 활동중인 박소영 씨.

인천시 미추홀구 용현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 걷다 보면 유독 눈에 들어오는 담장 그림이 눈길을 이끈다. 노란 바탕에 웃고 있는 빨간 하트, 그리고 ‘장애(長愛) - 길게 사랑하는 것’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면, 다시 뒤로 몇 걸음을 옮겨보자. 그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간판 ‘허름한 미술관’이 눈에 들어올 곳이다. 그리고 바로 오늘 우리가 방문할 특별한 장소가 이곳이다. 

미술관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이 미술관의 관장 ‘이피’다. 캣타워에 앉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미술관을 찾은 관객을 편안하게 맞아 준다. 하지만, 여기서 참고해야 할 것은 이피 관장은 항상 자유를 꿈꾸기에 미술관 문을 꼭 닫아줘야 한다. 언제 문 밖으로 자유를 찾아 나설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시선을 이끄는 것은 벽면 가득 붙어 있는 미술 작품들이다. 기자가 찾은 날은 양준혁 작가의 공룡전시회가 진행 중이었다. 다양한 외형을 가진 공룡과 알록달록한 색감이 순수한 동심을 느끼게 해 준다.

 

28세 꿈 많은 소영 씨의

작업실이자 전시관

 

소영씨는 최근 몽당크레파스를 작게 잘라 붙이는 방식으로 색을 입히는 작업에 몰두중이다.

허름한 미술관의 주인은 발달장애인 자녀의 엄마이자 동화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정애(63) 씨다. 지난 4월 1일 문을 연 ‘허름한 미술관(이하 미술관)’은 화가로 활동 중인 딸 박소영 작가(28)의 첫 전시회 장소이기도 하다.

다운증후군인 박소영 씨는 일반 학교와 특수학교를 오가며 학교생활을 하던 중 유독 미술에 관심을 보이고 또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취미로 그리던 그림은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더욱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그 실력을 인정받아 지난 2020년 10월 한국지체장애인협회가 주최한 제33회 전국장애인종합예술제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싱가포르 글로리아 케와 콜라보한 작품 ‘허수아비’

또한, 그녀는 작년 싱가포르 아티스트 글로리아 케와 함께 컬래버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글로리아 케는 박소영 작가의 작품에 감명을 받아 박소영 작가가 스케치하면, 색을 입히는 작업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글로리아 케는 그녀와의 협업에 대해 “25세의 이 젊은 아가씨는 특정 장애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매력적인 작품 속 그녀의 표현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줄 뿐만 아니라 마음을 만지고 따뜻하게 하는 표현을 훌륭하게 했다.”고 극찬했다. 그녀의 대표작이기도 한 ‘멕시코 검은 소’는 2020년 국제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난 2020년 국제전에 참가했던 박소영 작가의 대표작 ‘맥시코 검은소’

이처럼 그림을 좋아하는 순수한 아가씨는 이 미술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감상하러 온 사람들과 소통하며,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인생의 태클이었던 딸

이제는 보물 같은 존재

 

허름한 미술관의 관장인 ‘이피’는관람객들이 들어올때마다 꼬리를 살랑살랑흔들며, 인사를 건낸다.
허름한 미술관의 관장인 ‘이피’는관람객들이 들어올때마다 꼬리를 살랑살랑흔들며, 인사를 건낸다.

대학에서 강사로 활동한 이정애 씨에게 장애가 있는 소영 씨를 받아들이는 것이 처음부터 쉬웠던 일은 아니었다. “부모라고 해도 장애는 저도 처음이잖아요. 쉽지 않았어요. 소영의 치료와 육아를 포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솔직히 많이 생각했고요.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소영이로 인해 정말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어요. 제가 동화작가로 활동하는 것도 소영이가 아니었으면 꿈도 못 꿨을 일이니까요.”

심장 수술 후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병상에 누워있는 소영 씨의 모습을 담은 동화 <뜨거운 이별>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동화작가로의 제2의 삶을 살게 됐다.

동화 <뜨거운 이별>은 말을 못 하는 주인공 ‘또영’이가 산소호흡기와 엄마에 대한 미움, 미안함, 살고 싶은 의지 등의 대화를 하는 형식을 담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 눈을 뜬 또영이 호흡기와 이별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소영이를 사회의 일원으로 잘 키우겠다는 결심을 한 후에는 오랫동안 해오던 국어 강사 일을 그만두고 장애인복지관에서 인지치료사로 활동하면서 장애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그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하다가 동화를 통해 인식개선에 조금이나마 역할을 하고자 했고요. 사실 제 또 다른 작품인 <내 인생에 태클을 건 당신>에도 표현됐듯이 제 인생에 태클 같은 존재였던 소영이가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너무나 큰 소중한 존재로 자리하고 있는 거죠.”

이정애 작가는 다음 작품으로 자폐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옴니버스 형식의 동화를 구상 중이라고 했다. 이 작품을 통해 많은 독자에 각기 다른 장애와 그 특징에 대해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누구나, 조건 없이

전시회를 열 수 있는 곳

 

소영 씨의 작품 전시를 위해 마련된 곳이지만 이정애 작가는 이곳이 누구나 조건 없이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전시회라고 하면 격식을 갖춰야 하고, 수상 경험이 있는 말 그대로 ‘작가’들만 하는 고급스러운 활동이라는 인식이 많잖아요. 하지만 멋진 액자에 담기지 않아도, 사이즈가 제각각이어도 그 자체만으로 작품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 선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공룡전시회 : 현재 허름한 미술관에서는 양준혁 작가의 ‘공룡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실제로 현재 전시 중인 ‘공룡전시회’의 주인공은 이정애 작가가 인지치료사로 활동하면서 만난 초등학교 5학년 양준혁(자폐) 학생이다.

미술관의 문은 꼭 장애인들에게만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서의 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분들에게 언제든 공간을 내어준다는 것이 이정애 씨의 계획이다.

처음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벽화 앞에서 박소영 작가와 사진 촬영에 임한 정애 씨는 ‘장애’에 대한 철학이 이 벽화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장’자를 막힐 장(障)이 아니라 길 장(長)을 사용하자고 항상 말하고 있어요. 뭔가 막혀 있고,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 길게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줘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이곳에서는 나이, 성별,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마법처럼 누군가를 편견 없이 길게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허름한 미술관은 인처니 미추홀구 인주대로 238번길 20에 위치해 있다. 용일초등학교 후문을 따라 걷다보면 찾을 수 있다. 이정애 작가 개인이 운영하다보니 공간에 상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방문을 희망한다면 사전에 연락을 해보는 것이 좋다. 이정애 작가(010-4184-6930)

차미경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