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삶’을 선택하는 것보다 쉬운 사람들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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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삶’을 선택하는 것보다 쉬운 사람들의 외침
  • 편집부
  • 승인 2022.05.24 16:23
  • 수정 2022-05-24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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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삶’을 선택하는 것보다 쉬운 사람들의 외침

- 고인이 된 발달장애인과 그 어머니, 부모에게 살해당한 중증장애인을 추모하며 -

 

5월 23일, 서울 성동구에 사는 40대 여성은 발달장애가 있는 6살 아들을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경비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이 모자를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두 사람은 모두 숨을 거뒀다. 또 같은 날 인천 연수구에서 30대 중증장애가 있는 자녀를 대장암을 진단받은 60대 부모가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혼자 살아남은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매년 수차례 벌어지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비극적인 죽음이 어제 또다시 반복된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6살 자녀를 데리고 이런 끔찍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 이 모자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다시금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는 커녕 지역사회 내에 제대로 된 지원서비스도 제공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은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삶을 선택하는 것보다 쉬운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지원의 부담으로 가족이 발달장애인을 살해한 후 본인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들은 매년 수차례 반복되고 있다. 전체 사건은 차치하고 최근 3년간의 사건만 살펴보더라도, 2020년 3월 제주에서 한 어머니가 발달장애자녀를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4월 서울에서는 또 다른 어머니가 4개월 된 발달장애자녀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6월 광주에서는 발달장애자녀와 그 어머니가 차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21년 2월과 4월 서울, 5월 충북에서는 지원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부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들이 벌어졌으며, 11월 전남에서는 한 아버지가 발달장애자녀와 노모를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올해 3월 경기에서는 부모가 발달장애자녀를 살해한 후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2건의 사건이 같은 날 벌어졌다. 그리고 어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이 또다시 반복된 것이다.

이렇듯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 옆에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아무런 희망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앵무새같이 떠들어대는 말뿐인 복지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국가 스스로 존재 이유를 망각했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형편없는 지원체계로 인해 이에 대한 지원의 책임을 부모 등 가족이 전적으로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9년 연구에 따르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있어 발달장애인 중 약 80%가 일정 정도 이상의 지원이 필요하며, 심지어 41%는 ‘대부분 혹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여전히 발달장애인에 대한 제대로 된 지원체계를 고민하고 있지않고 있다.

이러한 비극이 지난 수십 년간 반복돼왔기에, 우리 장애인 부모들은 직접 싸우며 발달장애인 지원에 필요한 정책과 서비스를 하나씩 만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올해도 우리는 발달장애인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하며 치열한 투쟁을 진행했다. 지난 4월 19일에는 장애인부모 등 556명이 삭발했으며, 다음 날인 20일부터 장애인부모 네 명이 15일간 단식농성을 진행했다. 그러나 5월 3일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서 발달장애 영역은 전임 정부에서 진행했던 정책들의 재탕에 불과했으며,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실질적이고 제도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는 이번 정부가 처음은 아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사망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역대 정부는 실효성 없는 서비스 한두 가지를 선심 쓰듯이 발표하곤 했을 뿐이다.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들이 매년 수차례 반복되는 원인은 분명하기에, 이러한 죽음을 막기 위해서 이제는 국가(정부)가 나설 차례다. 이에 우리는 다음 사항들을 정부에 요구한다.

첫째,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라.

둘째, 이러한 과제를 행·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종합계획인 ‘제2차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 수립하라.

셋째,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및 ‘제2차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수립을 위한 민관협의체를 즉각 설치하라!

넷째, 「발달장애인법」 및 「장애아동복지지원법」 등 기존 관련 법령을 현실에 맞게 전부 개정하라.

이제는 목숨보다 소중한 가족을 서로 죽고 죽이는 이런 세상을 끝내야 한다. 아직 인생의 꽃을 피워 보지도 못한 6살 발달장애인, 그리고 지원의 부담으로 자녀를 데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어머니, 부모에게 살해당한 30대 중증장애인 이 세 분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2022년 5월 24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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