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들] “우리는 수어로 말하고 잘 보는 ‘농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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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만난 사람들] “우리는 수어로 말하고 잘 보는 ‘농인’입니다”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2.05.09 13:14
  • 수정 2022.05.09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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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희/대안학교 ‘소보사’ 대표교사

여기 자신들을 청각장애인이 아닌 ‘농인’으로 불러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제1언어로 ‘수어’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위치한 낡은 건물 4층, 간판도 걸려 있지 않은 이곳은 우리나라 유일의 수어 중심 교육 대안학교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소보사)’이다. 과거 방송에서 마당이 딸린 작은 분교로 소보사를 접한 기자의 의아함에 김주희 소보사 대표교사는 얼마 전에 이사를 왔다면서,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며 익숙한 듯 웃었다.

 

재미로 시작한 수어
인생의 반 이상을 수어 
속에서 살고 있어

 

 2006년부터 수어 중심의 공부방을 열어 농학생들을 가르쳐온 김주희 대표교사는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학생들을 위해 전과목 교육이 수어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 100% 수어로만 수업을 하는 특수학교는 전무하다. 그녀가 2017년 스스로 대안하교 ‘소보사’를 만든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소보사는 ‘수어’를 제1언어로 선택한 농인들이 온전히 수어만을 사용해 공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아주 기본적인 신념으로 시작했다. 청인학교와 마찬가지로 국어와 영어, 수학을 배우고 있으며, 대안학교의 특징을 살려 친환경·생태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농문화와 농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농역사와 수어 시(時), 수어 문학도 가르치고 있다. 소보사를 다니는 학생들은 수어로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는다. 언어만 다를 뿐 청인의 학교와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
 “고등학교 때 수어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농인친구들과 함께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당시 저는 수어를 하고 싶고 그래서 더욱 농인 친구들 곁에서 어울리고 싶어했던 것에 비해 농인 친구들은 자신이 농인인 것을 부끄러워하고 대학 진학을 하고 싶어도 그것에 대해 꿈조차 못 꾼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의아했어요. 그런데 또 다른 농인친구는 자신이 농인인 것도 또 수어를 하는 것도 전혀 부끄럽지 않아했죠. 당시에는 저도 어려서 같은 농인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라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이 ‘정체성’의 문제였다는 걸 알게 됐어요. 자기 스스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같은 농인이라도 삶을 생각하는 방향이 다른 거죠.”
 농인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바로 수어 자격증을 취득한 김주희 대표교사는 그때부터 말대로 ‘미친 듯이’ 농인들을 쫓아다니며 수어를 익혔다. 그렇게 다양한 계층의 농인들을 만나던 그녀는 생각보다 많은 농인학생들이 수어를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고 했다.
 “많은 젊은 친구들이 구화와 수어 둘 다 완벽하게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렇다 보니 청인사회는 물론 농인사회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겉도는 삶을 살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농인 당사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구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평가하는 사회적 시선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게 제가 소보사를 열게 된 궁극적인 이유였죠.”

소보사에는 청인인 김주희 대표 교사(아랫줄 가운데) 외에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박상욱, 이소연, 정우현, 유현주, 노지원 등 5명의 농인 교사가 함께하고 있다. 

 

음성언어를 선호하는 사회
정체성을 잃는 농인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청력장애를 가지고 있는 청각장애인 44만732명(2020년 기준) 중 의사소통을 하는 데 ‘말’을 사용하는 청각장애인들은 84.2%에 달한다. 이어 ‘구화’(5.9%)와 ‘몸짓’(3.0%)이 뒤를 이었고, 수화와 필담은 각각 2.8%, 2.5%에 그쳤다.
 김주희 대표교사 자신의 오랜 경험상 과거에 비해 젊은층일수록 수어를 사용하는 수가 현저히 줄고 있다고 말했다. 
 “인공와우 수술이 시작되면서 이러한 변화는 예견됐었어요. 농아동과 농청소년들이 수어룰 점점 배우지 않게 된 거죠. 수술을 통해 청인사회에 속해서 살아가는 청각장애인들이 그만큼 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시절 수어를 배우지 않던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 다시 수어를 배우고 농사회로 돌아오고 있어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사실 기자는 김주희 대표교사를 만나기 전 그녀가 다수의 언론을 통해 내놓은 말들이 구화를 쓰는 청각장애인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심스럽게 기자의 느낌을 전하자 그녀는 너무나 시원하게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구화를 쓰는 청각장애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화를 쓰는 사람을 수어를 쓰는 농인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 그리고 구화 배우기를 강요하는 시선에 대해 부정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공와우 수술 후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재활을 거쳐 구화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들 개개인의 선택과 노력을 존중해요. 하지만 문제는 구화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농인 개인의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지적하는 것이 문제예요. 수술 후 노력을 하면 구화를 배울 수 있고, 그렇다면 청인들 사이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 수술해라, 노력해라, 수어보다 구화를 배워라 식의 사회적 압박, 심지어 부모와 가족의 압력이 농인들에게는 너무 큰 상처이자 폭력이라는 거예요.”
 실제로 인공와우 수술 후 구화를 배워 생활하다가 성인이 돼서 소보사를 찾은 많은 농인들이 청인문화에 온전히 속하지 못했던 자신의 지난 시간에 대해 외로움을 느꼈으며, 수어를 배운 이후 농인으로서 농인사회에서 살아가는 삶에 만족해한다는 것이 김주희 대표교사의 설명이다.
 “청인의 문화가 소리를 기반으로 한다면, 농인의 문화는 시각문화라고 할 수 있어요. 완전히 다른 문화이기에 구화를 선택한 청각장애인들이 청인문화를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편안히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해요. 문화란 그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결과물인데, 이를 자연스럽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애써서 노력하고 나 자신을 극복하며, 맞추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맞지 않잖아요.”

숲탐험-숲속의 생명을 만나기 전 도감을 살펴보며 그림 그리기
노작활동-모내기하기 전 써레질
쉬는 시간, 다양한 연령이 함께 모여서 수어로 대화를 나누며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수어’를 선택한 삶이
차별 받지 말아야

 

 “우리나라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산부인과에서 청력검사를 기본으로 해줘요. 이후 검사 결과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 의사들이 부모에게 이 같은 사실을 설명하면서 인공와우 수술에 대해 설명해주죠. 수술비를 정부에서 지원해준다는 얘기도 함께요. 그런데 어떤 의사도 수어를 배우는 삶에 대해서는 얘기해주지 않아요. ‘수술 후에 재활을 통하면 구화를 배울 수 있고, 그러면 청인들 사이에서 살 수 있어. 그렇게 할래?’라고는 물어도 ‘수어를 배우면 농인들과 농인문화를 함께 공유하며 살 수 있는 삶이 있어. 어떤 삶을 선택할래?’라고 묻지 않는다는 거죠.”
 김 대표교사는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삶이 농인들에게 가장 편안한 삶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부모니들이 청각장애아동을 수어가 아닌 음성언어로 키우고자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온전히 수어를 사용하는 교육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20년 교육부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전체 청각장애학생 중 20%만 특수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78%는 일반학교(특수학급 22%, 일반학급 56%)로 진학했다. 청각장애학생들을 위한 농학교조차 보통 입말로 수업이 이뤄지고, 교과 과목에 수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국어로서 수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곳이 없고, 또 100% 수어로 수업을 하는 학교가 없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특수교육을 가르치는 대학에서조차 수어를 교육 과정 중에 이론으로만 배울 뿐 필수사항으로 두고 있지 않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특수학교에서 수어통역사 자격증을 가진 교사는 10%에도 미치지 못해요.”
 일반적인 영아들이 2~3세 사이에 말을 배우는 것처럼 농아기들 역시 이때부터 수어를 자연스럽게 배워야 하지만 수어를 가르치는 기관이 없고, 또 이에 대한 정보조차 찾기 힘들다 보니 농인의 삶을 선택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난 2016년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 제12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농인 등의 가족을 위한 한국수어 교육과 상담, 관련 서비스 등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야말로 규정에 불과하다.
 “농인을 부모로 둔 자녀들, 즉 코다를 위한 바우처는 있지만, 농아동을 위한 바우처, 특히 농아동과 그의 가족들이 함께 수어를 익히고 농문화를 배워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바우처는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에요. 저희가 바라는 건 딱 하나예요. 구화든 수어든 당사자의 선택의 문제라면, 그 선택에 따른 지원도 공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인공와우를 선택한 사람들에게 수술비를 지원한다면, 그만큼 수어를 배우겠다고 결정한 농인들에게 교육비를 지원하는 게 공정한 거잖아요. 수어만 쓰면서도 배우고 살아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사회가 되길 바라요. 그래서 더 많은 농인들이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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