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비용의 두 얼굴
상태바
소송비용의 두 얼굴
  • 편집부
  • 승인 2022.04.07 09:17
  • 수정 2022-04-07 09: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미연/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2021년 9월, 지하철에 승·하차하는 장애인의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의 보장을 위해 제기되었던 ‘지하철 단차 소송’의 원고 한 명으로부터 다급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변호사님! 서울교통공사에서 ‘소송비용 확정신청서’라는 게 날아왔어요. 1,000만 원 남짓한 소송비용을 청구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이후 공감은 지하철 단차 소송 원고 두 사람에 대한 서울교통공사의 소송비용확정 신청 절차에 대응하면서 공익소송 소송비용 감면의 필요성을 피력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같은해 12월 원고 두 사람이 각 500만 원씩 소송비용을 부담하라고 기계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원고들은 이러한 소송비용 확정 결정에 불복하였고, 현재 항고심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소송비용이란, 인지대·송달료·감정료 등 소송행위에 필요한 비용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는 민사소송법 제98조 및 제109조에 따라 변호사 선임료를 포함한 소송비용을 패소자가 부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송비용 패소자부담주의’는 미국이나 일본 등의 ‘소송비용 각자부담주의’와 구별됩니다.

소송비용 패소자부담주의가 도입된 배경으로는 ‘남소 방지’를 들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소송이 남발되어 원활한 소송절차 진행이 저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입니다. 그런데, 원칙적으로 소송비용을 각자 부담하고, 공익소송을 독려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편면적 부담주의(원고 패소 시 각자부담, 승소 시 비용청구 가능)를 취하고 있는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소송건수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를 넘어 뉴욕주 수치에 근접해가고 있으며, 프랑스와 독일을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더구나 지하철 단차 소송 원고들, 그리고 공익소송을 계획하고 있거나 진행 중인 당사자들에게는 소송비용이 매우 중차대한 문제가 됩니다. 변호사 보수규칙 제6조 제1항에서는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법원이 소송비용에 포함되는 변호사 보수를 상당한 정도까지 감액 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공익소송 소송비용 감면에 대한 명시적 내용이 없고 법원의 재량이다 보니 실제 작동례가 많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불합리한 제도개선을 이끌어 내는 공익소송과 같은 변화의 목소리를 가로막고, 헌법상 기본권인 재판청구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단차 소송은 비록 패소하였으나, 법원은 승강장과 차량 사이 간격이나 단차로 인하여 휠체어를 이용하여 지하철에 승·하차하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승·하차하기 어려운 승강장의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차별행위가 존재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다만, 안전설비 등을 설치하는 것이 과도한 부담이거나 곤란한 방식으로 판단하여 불가피하게 원고들의 차별시정에 대한 구제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법원의 기각결정 이유를 고려하지 않은 채 소송비용 중 변호사 보수까지 차별구제청구소송을 제기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상환하도록 하게 한다면, 어느 누구도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패소의 위험을 무릅쓰고 서울교통공사처럼 거대 공기업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법무·검찰 개혁위원회는 2020년 2월 10일, ‘공익소송 패소비용의 필요적 감면규정 마련’을 권고하였고, 대법원도 같은 입장에서 2018년 3월부터 6월까지 5차례 실시된 ‘시민단체와의 열린 간담회’ 후에 공익소송 비용 경감 문제를 우선 검토해 개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변호사협회를 비롯한 각계단위가 공동주최하는 관련 토론회에서 문제 제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21대 국회도 이러한 문제 제기를 수용해서 소송비용에 관해 민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에 다수 계류 중이지만 당장 공익소송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할 당사자들의 현실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공익소송을 제기한 당사자에 대한 소송비용 감면이 입법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이상, 법원은 이 사건과 같은 공익소송에 대한 소송비용을 확정하면서 명시적으로 공익성에 대해 판단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재량권을 행사함으로써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결론을 도출해야 합니다. 2014년 전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신안염전노예사건의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도, 지하철 단차 소송에서도, 최근 8년 만에 선고된 장애인 시외이동권 판결 및 그밖에 공익소송에서도 현재의 소송비용 패소자부담주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용기 있는 변화의 목소리에 유독 매서운 얼굴로 다가왔습니다.

이에 공감은 항고심에서 공익소송 소송비용 감면의 예외를 두고 있지 않은 민사소송법 제98조 및 제109조에 대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습니다. 또한 ①공익적 목적을 가지고 제기되며, ②소송의 당사자가 사회적 약자가 되고, ③증거의 편재 등으로 인해 패소 가능성이 높아 남소의 폐해가 없는 공익소송에 대하여 패소자에게 상대방 변호사 보수를 포함한 소송비용 전부 부담하도록 하는 문제를 널리 공유하고, 개선해 나가고자 합니다. 소송비용으로 인한 이중고가 아니라, 공익소송이 보다 활성화되어 다양한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