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누군가에게, 이 웹툰이 발자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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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은 누군가에게, 이 웹툰이 발자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 배재민 기자
  • 승인 2022.03.21 17:43
  • 수정 2022-03-21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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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만화의 시대가 저물면서 등장한 웹툰은, 기존 만화에서는 보여 줄 수 없었던 다양한 주제와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접근성을 가진 매체와 함께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갔다. 특히, 웹툰이 생기면서 호황을 맞은 장르가 있다. 공감툰과 일상툰이다. 현재 카카오 웹툰에 연재되는 많은 공감툰과 일상툰 중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웹툰은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 ‘열무’와 ‘알타리’를 키우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영 작가의 '열무와 알타리'다. - 배재민 기자

 

“길을 잃은 누군가에게, 이 웹툰이 발자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웹툰 '열무와 알타리' 연재 유영 작가

유영 작가의 캐릭터 ‘소소’

 

웹툰 '열무와 알타리'를 그리는 유영 작가는 그림과 관련된 일을 했지만 만화를 그리진 않았었다. 그는 과거에 게임회사에서 근무하는 게임 콘셉 원화가였다. 그런 작가를 웹툰으로 이끈 건 일란성 쌍둥이 ‘열무’와 ‘알타리’를 출산하고 열무가 장애진단을 받고 나서였다. 작가는 “아마 열무의 장애진단이 아니었으면 계속 같은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열무를 키우며 저처럼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 스트레스가 풀렸다. 그래서 ‘나처럼 특별한 육아를 하는 분들이 공감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볼 수 있는 육아 웹툰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 내가 한번 시작해보자.’는 마음에서 ‘열무와 알타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로 웹툰을

그리는 것이 맞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컸다

 

웹툰을 그리는 일은 만만치 않다. '열무와 알타리'의 초기 연재분들을 보면 임신 초기의 어머니들의 보편적인 모습과 조산했을 때의 감정, 그리고 아이가 장애진단을 받았을 때의 당혹감과 절망감이 솔직하게 묘사된다. 너무나 솔직한 묘사에 독자들은 아이를 키우는 작가의 감정이 절절하게 다가오지만, 한편으로 이는 연재하는 작가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웹툰을 그리는 게 쉽지는 않았다. 가벼운 일상툰을 그리자고 시작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지나간 시간들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제 스스로의 감정 정리가 안 되어 있었다. 이런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만 2년이 넘게 걸린 것 같다. 이야기를 쓰려고 하면 눈물부터 났다. 그래서 한동안 안 그리다가 다시 그리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주변 분들에게 보여주니 지인들이 좋다고 얘기도 하고 응원을 많이 받았다. 공감이 된다는 말들이 힘이 되었다. 나의 일상들을 올렸을 때, 비슷한 육아를 하시는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위로를 해주셔서 초반에는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즐겁게 작업했다.”

작업하는 유영 작가

 

가장 그리기 힘들었던 에피소드는

출산부터 장애진단까지의 이야기

가장 그리기 좋았던 에피소드는

29화 '나는 행복하기로 마음먹었다'

 

작가는 웹툰의 초기 에피소드들이 가장 그리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임신부터 출산, 열무의 장애진단까지의 에피소드들이다. 작가는 “이야기를 시작하고 정리하는 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고 말하며 “가끔은 너무 우울해서 일주일 동안 멍하게 있었을 때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때 잊었던 감정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또 그런 상황들을 대사로 만들고 그림으로 그리는 게 힘든 순간이었다. 다행히 연재를 시작할 때는 이미 이런 이야기들이 전부 작업 완료되어 있는 상황이라서 큰 문제 없이 연재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그리기 좋았던 에피소드로는 29화를 꼽았다. '나는 행복하길 마음먹었다'는 에피소드다. 행복에는 정답이 없고, 우리는 우리만의 행복을 찾겠다는 내용이다. “이 에피소드의 내용을 독자들에게 가장 들려드리고 싶었다. 사실 웹툰에서 묘사된 기간은 몹시 짧은 시간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내가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기까진 꽤 힘든 시간을 반복했다. 그런 기억들 때문에 나에게는 더 특별한 에피소드였다. 만약 <열무와 알타리>가 단편으로 마무리 지었다면 이 에피소드가 마지막 회가 되었을 것 같다.”

주인공 열무와 알타리

 

열무는 나에게 아픈 손가락

 

웹툰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비장애인 독자들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지만 우리가 애써 모른 척했던 혹은 무시했던 장애아동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들이 귀여운 그림체로 묘사되지만, 내용은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그리기는 힘든 소재다. “사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아이의 장애를 굳이 꺼내서 웹툰을 그리고 싶을까?’라고 생각을 하는 독자들의 반응도 두려웠다. 나 역시 ‘이런 이야기로 웹툰을 그리는 게 과연 맞는 걸까?’ 하는 고민도 많았다. 연재 중인 지금도 종종 이런 생각이 들며 슬럼프가 올 때도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의도와는 다르게 우리의 불행을 전시하는 이야기처럼 보이거나 혹은 장애 가족들에게 안 좋은 편견을 더 심어주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가장 크다.”

유영 작가의 걱정과는 다르게 '열무와 알타리'는 현재 카카오 웹툰에서 순항 중이다. 2452만9천 명이나 되는 독자들이 웹툰을 구독하고 있다. 웹툰을 연재하는 것은 작가에게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열무는 나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숨기고 싶은 아픈 손가락이었다.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웹툰을 그린 이후에도 열무는 여전히 아픈 손가락이지만 더 이상 우리 가족이 장애 가족이라는 것도, 열무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도 숨기지 않게 되었다. 나 스스로 당당해졌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그 전에는 한없이 우울해졌지만, ‘지금은 웹툰으로 그리겠어!’라면서 기록하는 여유까지 생긴 것 같다. 그리고 일상에서 생기는 일들을 좀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작가는 “'열무와 알타리'를 보고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걱정해주는 분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우리 근황을 따로 알리지 않아도 전부 알고 있어 나도 더 편하다.”고 대답했다. 웹툰에 달린 댓글들도 작가에게는 소중하다. 댓글은 독자와 작가를 연결해주는 첫 번째 창구다. 작가는 뇌성마비를 가진 대학생이 댓글에 “지금은 꽤 멋진 사람이 되었다.”고 적으며 풀어낸 그의 이야기가 감동이었다고 회상하며 “언젠가 열무도 이렇게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고 대답했다. 그 외에도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던 선생님의 댓글 등 너무 감사하고 기억에 남는 댓글이 많다고 작가는 말했다.

웹툰 '열무와 알타리'의 일러스트

 

 

장애는 누군가의 잘못도

누군가의 불행도 아니다

 

‘즐겨보던 로맨스 영화와 TV 속 드라마…. 그 어디에도, 장애를 가진 아이와 그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이야기는 볼 수 없었다.’ '열무와 알타리'의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말이다. <열무와 알타리>는 장애를 가진 아이와 그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만화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비장애인 독자들에게 먼 세상이었던 장애 가정의 이야기가 웹툰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열무를 키우며 수많은 감정과 많은 일이 있었지만, 꼭 알려드리고 싶었던 건 장애는 누군가의 잘못도 아니고 불행도 아니라는 것이다. 나 역시도 장애는 불행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열무의 장애진단이 너무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우리 가족의 행복에 열무의 장애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단지 조금 불편할 뿐이다.”

'열무와 알타리'에서 인용한 에밀리 펄 킹슬리의 글은 작품을 본 많은 독자의 마음에 남는 구절이라고 생각된다.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는 것은 이탈리아로 멋진 여행을 계획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몇 개월이나 애타게 기다린 그 날이 찾아온다. 그러나 비행계획은 변경되었고 비행기는 ’네덜란드’로 왔다. …중략… 하지만 이탈리아에 못 간 것을 언제까지나 한탄하고 있으면 네덜란드만의 특별함과 네덜란드만의 사랑스러움을 진심으로 즐길 수 없다.”는 글이다. 유영 작가에게 현재의 네덜란드는 어떤 느낌일까.

“처음에는 정말 이곳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난 뒤 에밀이 펄 킹슬리의 글을 다시 읽었는데 그때는 모든 구절이 공감되었다. 우리 계획과는 전혀 다른 곳이지만 충분히 잘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전히 내가 가지 못했던 그 삶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다른 분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우리만의 행복들을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상을 조금 천천히 보고 느리게 가는 법도 배운 거 같다.”

 

엄마와 아빠는 순간마다

최선을 다했다고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모든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마음에 크게 남기를 바란다. 이는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유영 작가는 만약 '열무와 알타리'의 완결을 그린다면 “꼭 다음 이야기가 있을 것처럼 그냥 평범하게 끝을 맺을 거 같다.”며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를 통해 내가 그릴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우리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고 작품연재의 의지를 드러냈다. 이어 유영 작가의 가장 소중한 사람인 열무와 알타리가 미래에 이 웹툰을 읽었을 때, 어떤 작품으로 남길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언젠가 아이들이 자기의 상황에서 좌절하거나 우리에게 실망할 수도 있다. 그때 이 작품을 보고 알아주면 좋겠다. 엄마랑 아빠는 매 순간 너희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그렇게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 되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해와 달 이야기'의 한 장면 캡쳐 (출처 - 카카오 웹툰)

 

길에서 장애인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사회

장애-비장애 구분없는 사회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열무와 알타리'를 읽다 보면 장애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의 심정을 구구절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좋은 사회, 좋은 나라란 무엇일까 하고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 작가가 아닌 장애아동을 키우는 어머니로서 유영 작가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는 무엇일까.

“예전에 ‘해와 달 이야기’라는 에피소드를 작업했다. 영국에서 뇌성마비 아이를 키우는 부부의 이야기였다. 작업하면서 들은 그 나라의 장애복지들은 너무 놀랍고 부러웠다. 한편으론 한국 복지가 닮아가야 할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복지들과 장애교육, 장애인식에 대한 미디어의 노력이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길에서, 일터에서 장애인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사회, 장애와 비장애 구분이 없는 사회가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전히 한국에는 장애아동을 키우면서 관련 정보를 얻기 힘든, 혹은 장애아이를 어떻게 육아해야 할지 모르는 수많은 부모가 있다. '열무와 알타리'는 그런 부모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유영 작가는 기자의 생각을 듣고 “길을 잃었을 때 먼저 간 사람의 발자국이 보이면 누군가 이 길을 걸어갔구나. 여기에 길이 있구나 하고 몹시 안도하게 된다. 나도 열무를 키우며 접한 선배 부모님들의 이야기들이 정말 많이 위로되었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그런 발자국 같은 웹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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