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델이다” 모델 꿈꾸는 장애인들 런웨이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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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델이다” 모델 꿈꾸는 장애인들 런웨이에 서다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2.02.17 09:36
  • 수정 2022-02-22 13: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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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타거나, 의족을 착용한 채, 또는 비시각장애인의 안내를 받아 런웨이를 걷는 모델들의 모습을 상상해 봤는가. 여기, 당당함 하나로 장애의 벽을 넘어서서 앞으로 나아가는 멋진 예비 모델들이 있다. 한국패밀리모델협회(K.F.M.A)는 지난 1월 24일 발기인 대회를 열고, 본격적으로 장애인 모델을 육성하기 위한 움직임에 들어갔다.

오는 5월 20일 ‘제1회 KFMA 장애인 남녀 모델 선발대회’를 통해 키즈, 주니어, 어덜트, 중장년, 시니어 장애인 모델을 선발할 계획이다. 본지는 이번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한 4명의 예비 모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열정과 희망, 그리고 꿈에 대해 들어봤다. - 차미경 기자

 

“목표는 당연히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는 거예요”

김희량 / 시각장애(50세)

 

올해 50세가 되는 김희량 씨는 현재 시각장애인 안마사인 헬스키퍼로 일하고 있지만, 진짜 꿈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패션쇼를 보고 나도 저렇게 멋있게 런웨이를 걸어보고 싶다는 꿈을 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각장애인이 된 후 점점 그 꿈을 잊고 살아왔고, 거기다 나이도 많아지면서 사실 그 꿈을 접어뒀어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김희량 씨도 현실적인 문제로 꿈은 접어두고 현실을 바라보며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찾아 살아왔다고 했다. 그랬던 그녀가 다시금 마음속 깊이 넣어 두었던 꿈을 끄집어낸 것은 TV에 나온 시니어 모델을 본 이후였다.

“몇 년 전부터 TV에 시니어 모델들이 활동하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사시는 분들을 보면서 제 열정도 조금씩 다시 깨어났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SNS를 통해 장애인 남녀 모델을 뽑는다는 게시물을 보자마자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고 바로 신청하게 됐어요.”

누구보다 먼저 신청서를 낸 후 훈련 프로그램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김희량 씨는 벌써 수업받을 날을 생각하면 설레고 기대가 된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기대돼요. 워킹 방법은 물론 포즈를 어떻게 취해야 하는지, 또 표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거잖아요. 가끔 혼자서 상상하고 연습해 보기는 하지만 전문가분들의 코치 하에 배울 생각을 하니 지금도 심장이 콩닥콩닥하는 것 같아요.”(웃음)

모델로서 런웨이에 서는 것이 1차 목표이지만 꿈이 여기서 그치지는 않는다고 말한 그녀는 기회가 된다면 TV에도 출연하고 싶다는 꿈을 내비치기도 했다.

“우선 첫 번째 목표는 이번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는 거예요.(웃음) 그리고 나서는 패션쇼나 광고, 또 홈쇼핑 모델로도 활동해 보고 싶어요. 그렇게 경력이 쌓이면 연기 분야에도 도전해 보고 싶고요. 모델로의 도전이 어쩌면 제 인생에 찾아온 두 번째 기회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러므로 허투루 흘려보내고 싶지 않고, 꼭 그 기회를 붙잡아 멋진 제2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요.”

김희량 씨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도전에 또 다른 장애인들에게 힘과 용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장애와 모델을 하기에는 다소 많다고 느껴지는 나이지만, 그렇다고 꿈까지 버려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모두 꿈꿀 기회는 평등하게 가졌다고 생각해요. 다른 분들도 저의 도전에 조금이나마 용기를 가지고 함께 세상 밖으로 나오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패션쇼는 물론 연기까지 도전하고 싶어요”

박혜주 / 청각장애(29세)

 

 

MZ세대인 박혜주 씨는 평소 TV나 휴대폰을 통해 비장애인 모델들의 화보 등을 찾아볼 정도로 모델 일에 관심이 있었지만, 장애를 가진 자신에게는 먼일처럼만 생각했었다고 했다.

“스타일리쉬한 옷을 입고 멋있게 포즈를 취하거나 런웨이를 걷는 모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항상 부럽기도 하고 동경하던 찰나에 ‘한국패밀리모델협회’에서 장애인 모델을 선발한다는 정보를 얻고 내게도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는 생각에 도전하게 됐어요.”

워킹과 포즈 등 배워야 하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두려움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더 크다고 말하는 혜주 씨는 그중에서도 표정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 부분을 배우는 것에 가장 기대를 하고 있었다.

“런웨이 끝에서 모델이 워킹을 멈추고 관객을 응시할 때, 특히 화보 등에서는 옷과 포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표정과 눈빛이야말로 시선을 사로잡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표정을 흉내 내보면서 혼자서 부끄러움을 느낀 적도 있지만, 멋진 표정을 지을 생각을 하면 떨리기도 해요.”

현재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근무 중인 혜주 씨의 이번 도전이 마냥 환영받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가족은 성인인 혜주 씨가 스스로 자립을 위해 열심히 근무하고 있는데, 혹시라도 모델 일을 하면서 직장을 잃거나, 자립에 방해가 될까 걱정돼 그를 만류하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인터뷰 기간 중 그의 어머니는 기자와 직접 통화를 하면서까지 걱정을 표출하기도 했지만, 그의 오랜 꿈이 모델인 것을 알기에 그 마음만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잘 되기만 하면 너무 좋죠”라는 말로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자신의 최종 목표를 말하면서도 그는 개인의 욕구만큼이나 장애인들이 자신을 보고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는 선한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SNS와 외신을 통해 선진국 등에서는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모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어요. 이제라도 우리나라도 이런 기회의 장이 마련됐다는 점에 감사드리고, 앞으로는 장애인 모델과 비장애인 모델이 다양한 행사에서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는 자리가 많이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꿈꿀 수 있고, 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 있으니까요. 그 아름다움을 당당히 펼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요.”


“다양한 무대에서 장애인 모델로 활동하고 싶어요”

김시영 / 지체장애(12세)

 

5살 때 교통사고로 하반신마비가 된 후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고 있는 김시영 군은 무대에 서기 위해 체중조절이 시급하다고 말하는 귀여운 모습을 보였다. 사실 수줍음이 많은 시영 군을 위해 이번 모델대회 참가는 어머니인 박상이 씨가 시영 군을 설득하면서 성사됐다.

박상이 씨는 “평소에 외국 브랜드의 화보를 보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모델로 내세우는 경우가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왔어요. 직접 입는 옷인데, 자신과 같은 모습을 가진 모델이 착용한 것을 보고 고르면 당연히 더 좋잖아요. 그러던 중에 SNS에서 모델대회 광고를 보고 아이를 설득하게 됐어요.”

사고로 다리를 다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 앞에 서거나, 무대에 오르고 발표하는 것을 좋아했던 시영 군이었기에 엄마는 다시 한번 시영 군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시영 군 역시 “처음에는 부끄럽기도 하고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엄마도 응원을 많이 해주시고 저도 생각해보니 흔치 않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들어서 도전하게 됐어요.”

모델 생활에 대해 전혀 사전 지식이 없다 보니 시영 군과 어머니 모두,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고 교육받게 될지 아직은 구체적으로 짐작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표정 연습이 가장 기대된다고 말했다.

“휠체어를 타고 있다 보니 워킹에 대해서는 방법이 다양하지 않을 테니, 표정으로 승부를 봐야 할 것 같아요.(웃음) 멋있는 표정을 지을 수 있도록 많이 연습할 계획이에요.”

향후 모델로서 활동하게 된다면 어떤 무대에 서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시영 군은 ‘아무래도 우선 살을 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체중조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빅사이즈 모델도 있으니까요(웃음). 그래도 멋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지금 식단 조절에 들어갔어요. 나중에 모델이 된다면 제한을 두지 않고 다양한 무대에서 장애인 모델로 활동하고 싶어요.”

후천적인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된 시영 군에게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만큼이나 도전을 하는 것 또한 쉽지만은 않았다.

어머니 박상이 씨는 “저희도 처음 사고로 장애가 생겼을 때는 좌절하고 비관하고 스스로가 저주받은 것처럼 불행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살아있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 살아서 지금 이 순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주어진 특별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지금도 예상치 못하게 맞닥뜨리는 사회의 벽 앞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 시영이가 더 앞으로 나아가고 도전하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싶어요.”

시영 군은 이번 대회에 당선이 된다면 모델로서 유명해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싶다는 순수한 꿈을 전하기도 했다. 평소에는 편안한 옷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멋있어 보이고 싶을 때는 포인트로 모자를 주로 쓴다고 말하는 패션 감각이 넘치는 시영 군에게 사인해달라고 부탁할 날이 다가오길 기대해 본다.


“저는 계속 도전할 것입니다, 끊임없이”

박광식 /소아마비(54세)

 

박광식 씨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가슴팍까지 오는 생머리에 긴 트렌치코트 그리고 중절모. 소아마비로 불편한 두 다리를 지팡이로 짚으며 걸어오는데 보조기구인 지팡이마저 패션의 아이템처럼 보였다. 현재 박광식 씨는 영어 통역과 번역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지만, 그에게는 다양한 직업과 직함이 있다. 영문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언어학으로 박사학위 수료중이다. 2014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는 VIP 영어통역요원이였다. 국립극장에 연극 연기자로 무대에도 섰었고 뮤지컬에도 출연했으며 무용수로 활동한 적도 있다.

“20살 때 목표는 대학가요제에 나가는 것이었어요. 성악을 배워 노래도 잘했어요. 비록 대학가요제는 진출 못 했지만, 각종 오디션을 보고, KBS 아나운서 시험도 봤습니다. 서류심사에는 합격했었습니다. 늘 비장애인들 사이에 다리를 절뚝이는 장애인은 저 한 명이었습니다. 매번 떨어졌지만 그래도 계속 도전했습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박광식’이라는 이름 세 글자는 유명하진 않지만 그래도 알음알음 알려졌다. 그리고 올해 초,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안중원 이사장에게서부터 KFMA에 도전해 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처음 런웨이를 걸을 때 제가 첫 순서여서 떨리기도 했지만, 워낙 무대 위에 서는 것을 좋아하고 무대 경험이 처음은 아니어서 막상 올라가니 떨리지 않았습니다.”

박광식 씨는 KFMA 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최종 꿈인 방송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KFMA의 런웨이에 서는 건 무척이나 좋습니다. 수업을 통해 멋있게 걷는 법, 좋은 포즈를 취하는 법을 빨리 배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CF나 영화, 방송에 출연하고 싶습니다.” ‘멀티엔터테이너’, 박광식 씨의 최종 목표다. 그는 목표를 향해 30년째 꾸준히 부딪힌 도전자다. 도전하는 삶은 타인이 보았을 땐 멋있지만, 개인에게는 불안의 연속이다. 끊임없는 낙방은 결국 자신을 지치게 만든다. 30년이 넘는 도전, 인생의 반 이상이 도전의 삶이었다. 박광식 씨를 움직인 원동력은 믿음이다.

“도전을 계속하는 건 힘듭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에겐 언젠간 될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물론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안 될 수도 있죠. 그래도 최선을 다하면 결국 되지 않았을 때, 실패했을 때 혹은 도전을 포기할 때 후회는 없을 겁니다. 또한, 얼마 전 77세의 나이로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오징어게임’으로 상을 받은 오영수 배우님처럼, 도전하고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는 결실을 맺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전하는 것입니다. 저는 계속 도전할 것입니다. 끊임없이.”

한국에는 방송을 하고 싶은,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많은 어린 박광식 들이 있다. 박광식 씨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우선 자신에게 끼가 있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끼가 있으면 꾸준히 연습하고 노력해서 도전해야 합니다. 자신의 실력이 비장애인보다 높으면 장애는 무기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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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지 2023-08-13 23:33:48
지적장애 모델은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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