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불평등’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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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칼럼)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불평등’ 바이러스
  • 편집부
  • 승인 2021.11.04 09:51
  • 수정 2021-11-0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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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10월 26일자 신문에서 지면 2면을 할애해 다룬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 제하 기획기사는 가슴 아픈 한 개인의 인생사를 넘어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의 최정점으로 내몰린 이들의 문제를 극명하게 짚어냈다는 점에서 울림이 컸다. 이 기사는 한 면 통으로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공영장례를 치른 서울 무연고 사망자 1216명의 이름(가명)과 짤막한 사연을 담고, 다른 한 면에는 ‘빈곤 안고 고립된 이들…죽음도 삶만큼 불평등했다’는 헤드라인으로 분석기사를 실었다. 기사에 따르면, 2021년 1~8월 공영장례를 치른 서울 무연고 사망자는 551명으로 2020년 같은 기간(400명)에 비해 37.8%(151명) 늘었다. 2016~2020년 전국 무연고 사망자 연평균 증가율 13.9%보다 증가 폭이 컸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무연고 사망자가 해마다 증가하는 이유는 빈곤과 가족관계 단절을 근본 원인으로 보고 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크게 증가한 것을 보면, 노숙인, 쪽방촌 주민 등 가난한 이들이 비대면 거리 두기로 돌봄서비스가 약화되거나 의료 사각지대로 내몰렸음은 물론 사회복지시설 등이 문을 닫으면서 사회적 고립이 심화된 것이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보호시설에 산다는 이유로 감염에 무방비로 노출됐던 노인과 장애인들, 무료급식 등이 줄어 끼니를 거르는 노숙인 등 코로나19는 약자들에게 유독 가혹했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을 더 빈곤하게 만들고 사람들 사이에 더 거리를 두게 한 결과 죽음의 불평등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자원봉사활동이 급감한 것도 한 원인으로 짐작된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20년 활동자원봉사자수는 59만538명으로, 2019년 125만6421명의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자원봉사자활동률도 14.7%에서 6.8%로 낮아졌다. 그 결과, 40%가 넘는 사회복지·보건의료시설이 자원봉사를 한 번도 지원받지 못했다. 자원봉사가 줄어든 피해는 결국 시설 종사자의 업무 과중과 취약계층의 돌봄 감소, 무료급식 중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전국 55개 공공병원 중 13곳(23.6%)은 2019년 대비 올해 상반기 월평균 외래환자수가 30% 이상 감소했다. 공공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의료취약계층이 공공의료에서 밀려나야 했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를 보더라도 불평등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지난해 발굴된 위기가구수는 2019년 63만289건에 비해 71% 급등한 107만7784건이었다. 올해 5월까지만 74만5422건에 달해, 코로나 재난이 우리 사회 위기가구를 폭발적으로 양산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 역시 2018~2019년 기준 16.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코스타리카(20.5%), 미국(17.8%), 이스라엘(16.9%)에 이은 4번째라는 보도도 나왔다. 상대적 빈곤율은 평균 소득에 미치지 못하는 상대적 빈곤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빈곤율 16.7%는 전체 국민 6명 중 1명은 기준 중위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이 높게 나타난 이유는 노인빈곤율과 연관이 깊다는 분석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7월 보고서에서, 2020년에만 전 세계적으로 기아 인구가 1억1800만 명 늘었다고 적시했다. 아프리카 4600만 명, 아시아 5700만 명, 중남미가 1400만 명으로 대부분 후진국에 집중됐다. 반면 미국과 유럽 주요국들은 코로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부가 10%나 증가했다. 각국이 코로나 극복을 위해 쏟아부은 경기부양책의 혜택이 정작 가난한 이들의 주머니가 아닌 부자들의 주머니만 채운 꼴이다.

불평등이 증가하면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사회 구성원들끼리의 과도한 경쟁을 부추겨 사회적인 병리 현상과 사회 해체 현상을 낳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 때문에 불평등 해결을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조세정책 등의 변화를 주문하는 해외 석학들도 있다. 정부가 실효적 대책 없이 습관적으로 불평등 해소 운운하는 것으로 이미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도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외치고 있지만, 소득을 얻을 기회조차 제한적이다는 불평이 지배적이다. 복지제도가 미흡한 한국에서 불평등은 곧 ‘부자 천국, 빈자 지옥’과 같은 말로도 통한다.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더욱 확대된 격차의 원인으로 ‘공정을 가장한 능력주의’를 꼽았다. 부모의 경제적 배경이 주요하게 작동한 출발선의 격차를 못 본 체 외면한 능력주의는 그들 자신이 누리는 혜택을 공정한 경쟁의 결과로 포장한다며, 심각한 사회분열을 일으킨다고도 했다. 이런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호망이나 격차를 해소하려는 복지정책은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불평등을 고착시킨다고 경고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25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지금까지 초고속 성장해온 이면에 그늘도 많다.”고 언급하고, “불공정과 차별과 배제는 우리 사회의 통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면서 “미래 세대들이 희망을 갖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들”로 꼽았다. 코로나 위기 탓에 심화된 불평등은 취약계층에겐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정부 당국자들과 위정자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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