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정책과 직업재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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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정책과 직업재활
  • 편집부
  • 승인 2021.11.02 15:23
  • 수정 2021-11-02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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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정책연구팀 부연구위원
이수용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정책연구팀 부연구위원

정부는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8~2022)’에서 장애인의 자립생활이 이루어지는 포용사회(Inclusive Society)를 비전으로 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어느 계층도 소외됨 없이 경제성장의 과실과 복지를 고루 누리면서 개인이 자신의 역할과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보이는 대목이다.

탈시설 정책은 이 중심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정부의 장애인거주시설 소규모화 정책과 탈시설 정책은 이전부터 언급되고 있었으나 이번 포용사회 비전은 장애인거주시설 소규모화와 탈시설 정책 등의 가속화를 가져왔고 이 가운데 ‘시설거주 장애인’은 정책대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흐름에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2019년 거주시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하여 살 수 있도록 범정부·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장애인 탈시설 추진단’을 구성하고, 탈시설 정책과 방향 목표, 그리고 추진일정 및 예산 등 11개 요소를 포함한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을 마련할 것을 국무총리에게 권고한 바 있다.

이에 국무조정실은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장애인정책위원회를 개최하여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심의·확정했다. 이에 따라 장애인의 주거결정권 보장 및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권리를 우선 고려해 탈시설 장애인이 독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물리적 거주공간과 복지서비스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탈시설 정책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상호협력이 아닌 일부 시·도 또는 시·군·구에서 시행되고 있었으며 주거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자립생활주택, 자립주택, 자립생활가정, 체험홈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또한, 그 지원방식과 지원금도 제각각이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탈시설 장애인 지원정책이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고, 실제 혜택을 보는 장애인의 수도 많지 않았다. 이에 따라 “시설 장애인의 탈시설 수요를 파악하고, 지역사회 통합 돌봄과 연계한 중앙정부-광역시도의 탈시설 지원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정부의 로드맵은 정부가 장애인 탈시설 정책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한편, 탈시설 정책에서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지원주택과 주거서비스이다. 이는 시설거주 장애인들의 탈시설 시작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포용사회(Inclusive Society)를 비전으로 하는 정책의 핵심은 무엇보다 일을 통한 장애인의 자립이다.

주거지원이 탈시설 장애인이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최우선 선결 조건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탈시설 이후 삶에 대한 지원책이 분명하지 않다면 시설에서 자립생활센터로, 또 임대주택으로, 결국 다시 시설로 되돌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실제 자립생활 체험홈을 경험한 많은 수의 장애인이 다시 시설로 되돌아간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실증연구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탈시설 장애인이 자립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사회 지원체계요인에 관한 연구(고광영 외, 2016)를 살펴보면, 취업여부 변수는 주거특성 변수 다음으로 탈시설 장애인의 자립생활 유지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으로 밝혀졌다. 이는 일찍이 Wendell(1996)이 언급한 대로 장애인에 대한 진정한 인권보장은 국가로부터의 이전소득에 의한 기본생활 보장뿐만 아니라 장애인이 직접 소득을 벌 수 있도록 취업을 보장할 수 있는 직업재활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연구에서는 밝히고 있다.

취업으로 인한 직장생활은 단순히 경제적 목적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넓게 보면 직업 생활을 통해 시설에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는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음으로 이는 곧 사회참여와 인적자본의 증대를 가져올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나아가 사회통합(Social Inclusion)을 이룰 수 있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획득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시설거주 장애인이 직업을 가진다는 것’…,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종단연구(한국장애인개발원, 2020)에 따르면 시설에서 나와 거주시설에 독립한 장애인 중 일을 하고 있지 않은 8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절반이 넘는 53.8%가 본인 스스로 일을 할 수 있는 근로역량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근로를 위한 지원에서는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유연한 근무시간, 장애특성을 고려한 작업 환경, 직업훈련, 직무수행을 위한 보조기기 등을 필요로 하였다. 즉, 충분한 개별적 지원이 선행된다면 공간적 탈시설이 아닌 포용사회로의 통합을 위한 진정한 의미의 탈시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과연 직업을 위한 계획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어야 할까? 개인의 특성 및 상황에 따른 차이는 있겠지만, 탈시설 이전 거주시설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즉, 지역사회 거주와 동시에 직장생활이 시작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되어야 하며, 이는 개인별 탈시설 지원계획 수립에 개별화된 고용계획(IPE)도 함께 포함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탈시설은 단순히 시설에서 지역사회로의 공간적 이동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차별받지 않고 소외됨 없이 동등한 과실과 복지를 고루 누리면서 직업을 통해 자신의 역할과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포용사회’의 진정한 구성원이 되는 혁신적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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