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군 성범죄’와 ‘장애인 성범죄’ 이중잣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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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군 성범죄’와 ‘장애인 성범죄’ 이중잣대 안된다
  • 편집부
  • 승인 2021.06.10 09:35
  • 수정 2021-06-10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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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피해 공군 여중사를 죽음으로 내몰고 ‘단순변사’로 보고하는 등 군의 조직적 사건 은폐와 부실수사 등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군대 내 성범죄보다 더 암울한 장애인 대상 성범죄사건들이 동시에 오버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해자 측의 한결같은 회유나 집단적 사건 은폐는 물론 무마와 부실수사에 이어 솜방망이 처벌 등 총체적으로 꼭 빼닮은 점 때문일 것이다. 2018년 들불처럼 번졌던 ‘미투운동’에도 근절되지 않고 여전히 치외법권 지대처럼 남아 있는 점에서 군대 내 성범죄 사건이나 장애인 대상 성범죄 사건은 크게 다를 바 없다. 군이나 장애인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배경에는 약자보다 강자인 가해자 감싸기식 수사와 솜방망이 처벌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공군참모총장을 경질한 데 이어 피해자 추모소를 찾아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며 유족에게 사과하고 국방부 장관에게 “철저한 조사뿐 아니라 병영문화가 달라지도록 하라”고 지시했지만 군 스스로 제 머리 깎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2013년 강원도 육군 부대에서 상관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당한 여군 대위가 숨진 이후 군 당국은 2015년 원스트라이크 제도를 도입해 무관용으로 처벌하겠다 했지만, 대외 면피용에 불과했다는 근거는 넘쳐난다. 드러난 것만도, 2017년 5월 또다시 해군 대위가 직속상관에게 성폭력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면 고질적이고 고답적인 군사문화 척결 외에는 답이 없다.

더했으면 더했지 장애인 대상 성범죄의 실상은 어떠한가. 지난 5월 광주의 한 장애인복지관 직원에게 당한 여성 지적장애인 성폭행 피해 사건 역시 공군 성범죄 사건과 마찬가지로 경찰의 부실 대응이 논란이 됐지만 늘 그랬듯이 사회적 관심 밖이었다. 그나마 인터넷을 통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가해자인 장애인복지관 직원은 지적장애여성에게 바닷가를 구경시켜주겠다며 유인해 차량에서 성추행하고 술을 마신 후 숙소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 가족들이 다음날 딸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사건을 광주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떠넘겼다. 조사과정에서 해당 복지관 측과 정보가 공유돼 2차 피해까지 가해졌는가 하면, 신고 후에도 가해자는 한동안 버젓이 복지관 근무를 했다니 더 말할 필요가 있는가.

장애계로선 이번 군 성범죄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니다. 폐쇄적 집단생활에서 저항할 수 없는 약자를 대상으로 만연하게 벌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장애인 성범죄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00년부터 무려 6년에 걸쳐 교장과 교직원들이 수년간 청각장애학생 제자들을 성폭행한 광주 인화학교 사건이 그랬다. 그나마 영화 ‘도가니’ 탓에 참혹한 실체가 세상에 드러났다. 당시도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사법당국과 행정당국의 처사에 국민이 공분했다. 정치권은 ‘도가니방지법’을 만들겠다며 법석을 떨었다. 이번 군 성범죄 사건과 관련, 평시 군사법원 폐지 등 군 수사 시스템과 사법체계 전반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관계 당국이 이번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장애계는 예의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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