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소리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된다는 것에 보람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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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소리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된다는 것에 보람 느껴“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1.02.22 10:13
  • 수정 2021-02-22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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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 시각장애인 녹음봉사자

“안녕하세요”라며, 기자를 반겨주는 이은영 봉사자의 목소리는 ‘전문 성우’를 방불케 하는 안정적이고 따뜻한 톤을 가지고 있었다.

올해로 26년째 시각장애인 녹음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은영 씨는 현재 인천광역시시각장애인도서관에서 일반도서와 생활자료는 물론 시각장애인들이 요청하는 다양한 자료를 음성으로 제공하기 위한 녹음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틀려도 수정 못했던 과거 녹음시스템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추억으로 남아

 

이은영 씨가 처음 녹음 봉사를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20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산 쪽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내고 있던 이은영 씨는 지인을 통해 한 시각장애인을 만나면서 녹음봉사자의 길을 걷게 됐다고 회상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교내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고, 그런 쪽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 지인분께서 한 시각장애인분을 소개해 주셨어요. 그분의 소개로 만나 뵙게 된 시각장애인분은 집 안에 녹음기를 설치해 두고, 책이나 자료 등을 음성으로 녹음해 줄 사람을 필요로 하고 계셨고요. 그렇게 우연한 기회를 통해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퇴근 후에는 그분 집으로 가서 일반도서 등을 녹음해 주는 일을 하게 됐죠.”

그녀가 처음 녹음 봉사를 시작했을 때는 지금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고 했다. 그래서 발음이 정확하지 않거나, 단어를 잘못 읽어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고 이야기했다.

“정말 아날로그 방법이었어요. 녹음기에 테이프를 꽂고 녹음을 하는 거였는데, 혹시라도 발음이 꼬이거나 잘못 읽어도 재녹음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었죠. 그렇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아쉽고 다시 하고 싶어도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물론 그때는 시각장애인 당사자 한 분을 위한 파일이다 보니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지금의 시스템에서 나오는 결과물에 비교하면 정말 엉망이었죠(웃음). 또 퇴근 후에 녹음을 진행하다 보니 피곤하기도 , 졸리기도 해서 졸면서 녹음 한 적도 많았어요. 그런데도 그 일을 그만두지 못했던 건 그 시각장애인 당사자분의 열정을 못 본 척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정보를 얻고 싶고, 공부하고 싶고, 탐구하고 싶어 하셨던 그분의 열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다른 불편한 모든 것을 이겨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녹음 봉사의 길에 들어선 이은영 봉사자의 본격적인 활동은 그녀가 학익동에 세워진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의 문을 두드리면서부터였다.

 

인천송암점자도서관에서

시작된 두 번째 녹음봉사자의 길

 

20대 초 5~6년 동안 녹음 봉사를 해오던 이은영 봉사자는 결혼과 출산 육아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녹음 봉사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녹음 봉사에 대한 마음은 있었지만, 환경적으로 한계가 있었던 이은영 봉사자에게 두 번째 녹음 봉사의 길이 열린 것은 주거지였던 학익동에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이 들어서면서부터였다.

“학익동에 시각장애인복지관이 들어선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조금의 주저 없이 전화를 걸어 녹음봉사자가 필요하지 않냐고 물었던 것 같아요. (웃음) 다행히 복지관에서도 당시 녹음봉사자를 모집하는 중이었고, 그때부터 다시 지금까지 두 번째 녹음봉사자의 삶이 시작된 거죠.”

그렇게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녹음봉사자 활동을 다시 시작한 이은영 봉사자는 초반에는 부족한 봉사자 수 때문에 주 4일 하루 3~4시간씩 녹음을 했지만, 지금은 녹음 봉사가 많이 알려지고 희망자도 많아 주 1회 2시간 정도 녹음을 진행하고 있다.

“하루에 2시간 녹음이라고 하면 보통 책의 한 챕터를 녹음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이렇다 보니 과거에 ‘소설 동의보감’과 같은 장편소설을 녹음할 때는 완성까지 7~10개월이 걸리기도 했어요. 거의 1년에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 거죠. 최근에는 독자분들의 성향도 변화해서 장편보다는 단편을 선호하시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권의 책이 완성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리다 보니 마무리를 하고 나면 시원섭섭하면서도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목소리 관리보다 중요한 것은

편안한 마음으로 녹음하는 것

 

20대 초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26여 년을 녹음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은영 봉사자에게 경력만큼이나 목소리 관리를 위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비법이 있냐는 질문에 이 봉사자는 미소를 띠며,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라고 말했다.

목을 따뜻하게 한다거나 생강차 등을 마신다는 답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던 기자에게 ‘마음가짐’은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사실 기자님 말씀대로 목 관리는 보통의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아주 일상적인 것들이며, 저 역시 목을 따뜻이 한다거나 목에 좋은 차를 마신다거나 하는 것 외에는 딱히 없어요. 그런데 녹음 봉사를 오랫동안 해오다 보니 결과물을 봤을 때 제가 만족했던 것들은 대부분 제가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과 정신상태에서 녹음했던 것들이더라고요. 제 파일을 듣는 시각장애인분들은 온전히 제 목소리에서 장면을 상상하고 내용을 이해하시잖아요. 그렇다 보니 안정적이고 일정한 목소리 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녹음하러 오기 전에 저는 마음을 정리하고, 또 기도도 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있어요. 그러면 확실히 실수도 덜하고,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마음가짐은 기본이 될 뿐, 보다 전문적이고 질 높은 결과물을 위해 이은영 봉사자는 지속해서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 봉사자는 녹음할 책이 결정되면 미리 책을 읽은 후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또 복지관에서 제공해 주는 다양한 ‘전문가 과정’ 교육도 빠지지 않고 챙겨서 수강하고 있다. 무엇보다 도서관에서 함께 근무하는 직원분들의 모니터링도 자신을 되돌아보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시각장애인 비롯해 장애인 생각 변해

봉사 통해 내가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보람 느껴

 

시각장애인과 인연을 맺은 지 벌써 26년이 흐른 이은영 봉사자는 녹음 봉사를 하기 전까지는 여느 비장애인들이 그러하듯 시각장애인을 포함해 장애인들의 삶과 생활 등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보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했다.

하지만 녹음 봉사를 하면서 그들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고, 또 서로 이해하게 되면서 많은 생각의 변화들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혹시 제가 실수는 하지 않을까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도 많이 하고 걱정도 많이 했지만, 막상 시각장애인분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그냥 우리랑 같은 아니 어쩌면 더 배려심도 많으시고, 감성도 풍부하신 분들이라고 느낄 때가 많아요. 특히 도서관에서 우연히 인사를 나누면 ‘어! 어떤 책 녹음하신 분 아니에요? 저 그 책 들었어요. 너무 좋았어요. 다음에 이런 책도 부탁드려요.’라고 먼저 말을 건네주시고, 칭찬을 해주시면 너무 감사하고 감동을 하게 돼요. 또 오랜 시간 지켜보다 보니 그분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더욱 편안한 삶을 살아갈 방법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기회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생활체육시설에 관심들이 많으신데, 시설의 수나 프로그램이 적어서 활동을 못 하는 분들에게 어떤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든지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고민하는 제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어요. 과거에는 책을 읽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적이 있었잖아요. 제가 20대 초에 처음 만났던 그 시각장애인분처럼 개인이 노력해야지만 정보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요. 하지만 지금은 문학과 인문학, 철학, 전문서적 등 다양한 도서를 음성으로 접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우리가 관심을 계속 가지고 그분들이 내는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미래에도 지금보다 조금 더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목소리도 나이가 들며, 나이가 들수록 발음도 정확지 않기 때문에 언제까지 녹음 봉사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봉사를 하고 싶다는 이은영 씨는 봉사가 자신에게 가져다준 것들이 너무 많기에 더욱 오랫동안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저도 예전에는 TV나 주변에서 봉사를 하다 보면 남에게 주는 것보다 내가 얻는 것이 더 많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잘 이해가 안 갔었는데, 제가 직접 해보니 그 이야기 뭔지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물질적으로 얻는 것이 있다는 것보다 마음이 부자가 되는 것을 느껴요. 무엇보다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보다 보람된 삶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 면에서 녹음 봉사는 저에게 많은 것을 준 선물 같은 존재예요.”

인천송암점자도서관을 이용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이은영 봉사자의 목소리는 세상과의 연결을 돕는 작은 문과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즐거움과 슬픔, 유익함을 얻으며, 누군가는 위안을 받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꿈을 꿀지도 모른다. 부디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더욱 오래도록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며, 그로 인해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이 되길 응원한다.

차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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