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사람)그림은 세상과 소통하는 나만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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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사람)그림은 세상과 소통하는 나만의 ‘언어’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0.07.18 10:51
  • 수정 2020-07-20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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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재 작가

본지는 발달장애청년들의 예술 활동을 응원하고 그들의 작품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됨으로써 장애인예술의 이해와 대중화를 이루기 위한 특별한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에 전시회 ‘발달장애인 청년작가전2020 : 보고…다시 보고’에 참여했던 19세부터 34세 발달장애청년작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작품을 통해 담아내고자 하는 세계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본지가 이번 호에 만난 작가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꾸밈없이 그림으로 전하는 이규재 작가다. 

봄을 기다리는 숲 Mixed Media 116.8 x 80.3 cm 2019
봄을 기다리는 숲 Mixed Media 116.8 x 80.3 cm 2019

 

이규재 작가와 기자와의 만남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해 6월 KT&G가 기획한 ‘OVER THE RAINBOW’ 전시회에서 이미 한 번 인연을 맺어서인지 이번 만남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지난해 전시회 이후 이 작가는 언제나 그랬듯이 오전에는 복지관 성인 자조프로그램에 다니고 오후에는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생활을 이어왔다고 한다.

자폐성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 작가가 반복되는 패턴의 생활을 편안하게 생각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자고, 먹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발달장애인 작가들과 그림을 봐 왔지만 이규재 작가와 작품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가 그림을 통해 표현해 내는 소재의 독창성 때문이다.

대부분의 발달장애인 작가들이 자연과 사물, 동물 등을 주로 표현하는 것과 달리 이규재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작품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이 작가의 어머니 김은정 씨도 이러한 특징에 대해 “그림은 규재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규재 그림은 자신의 감정을 노골적으로(웃음)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요. 평상시에도 언어로 의견을 주고받는 대화보다는 규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대화가 주를 이루어요. 당장 자신의 불편함이나 즐거움, 원하는 요구사항을 가감 없이 직접적으로 표현해요. 예를 들어 ‘시간이 되었으니 당장 집으로 가야한다, 지금은 밥 먹는 시간인데 속상하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와 같은 표현이죠. 하지만 규재가 감정을 그림에 표현한다는 게 엄마로서는 감사하게 생각해요. 내 아이가 어떤 생각과 이 상황에서 기쁜지 슬픈지, 속상한지를 알 수 있잖아요.”

이규재 작가의 작품 중 ‘내 마음의 화산’이라는 작품 역시 이 작가의 감정을 담아낸 작품 중 하나다. 어머니인 김은정 씨에게 야단을 맞은 후 그때의 감정을 담은 그림으로 용암이 퐁퐁 터지는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이규재 작가의 당시의 감정을 담고 있다.

내 마음의 상처 Mixed Media 72.7 x 53.0 cm 2018
내 마음의 상처 Mixed Media 72.7 x 53.0 cm 2018

이번 ‘발달장애인 청년작가전2020 : 보고…다시 보고’에 선보인 작품 ‘내 마음의 상처’ 역시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에게 인기를 받았던 작품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상처’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표현한 그림을 보며 이규재 작가와 우리가 서로 다르지만 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표현한 작품 외에도 산과 나무, 바다 등 자연을 담아낸 작품 역시 관람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밝음과 따뜻함 속에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표현한 화려한 색채와 표현 기법 등은 마치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는 동화 삽화를 보는 느낌을 들게 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규재 작가와 가족들은 여행을 통해 힐링의 시간을 갖고, 또 그 안에서 이 작가는 영감을 얻는다.

“여행 장소는 항상 규재의 선택에 달렸어요. 저랑 아빠는 선택권이 없죠.(웃음) 요즘은 강원도의 작은 사설박물관을 다니는 걸 즐겨하는데, 어디서 그런 박물관들을 알아내는지 신기해요. 그곳에 가서는 또 박물관 관장님과 친해지기도 하고, 또 발달장애에 대해 설명 드리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데, 아들 덕에 제가 세상공부를 하는 것 같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렇게 여행을 다니며 규재가 본 것과 대화를 나눈 것들이 모티브가 돼서 작품에 녹아나는 것 같아요.”

이규재 작가는 이미 국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고 초대전과 개인전도 여러 번 개최할 정도로 ‘한국의 대표 아르브뤼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아르브뤼란 불어로 ‘ART’라는 뜻의 ‘아르’와 ‘날 것’의 의미인 ‘브뤼’의 합성어로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사람들의 창의적인 요소를 가미해 완성한 작품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이 작가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8월 더리미 미술관 콜라보 기획전을 준비 중이며, 또 9월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유럽의 발달장애화가들과 미술교류전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전반기에 취소되거나 미뤄진 전시들이 조금씩 다시 열리기 시작해서 바쁜 후반기를 보낼 예정이다.

“작업해야 할 것들도 많고 인터뷰도 소화해야할 것들이 늘고 있어서 지칠 법도 하지만 규재는 항상 즐겁고 진지하게 임하고 있어요. 아마 그림이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인정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규재 뿐 아니라 발달장애가 있는 화가들은 아마 다 같을 거예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 다르다보니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하는데, 그것이 그림이 된 거죠. 시각장애인의 점자나 청각장애인의 수어와 같이 그림을 통해 자신의 말을 전하고 싶은 거라 생각해요.”

자신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림을 통해 말하는 이규재 작가, 그가 가진 그림이라는 언어는 그 어떤 말보다 진실 되고 강해 보였다.

국내 뿐 아니라 세계로 그 가능성을 넓혀 나가고 있는 이규재 작가의 앞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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