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 ‘수어’보단 ‘국어’담당기관이라는 인식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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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수어’보단 ‘국어’담당기관이라는 인식 강해”
  • 배재민 기자
  • 승인 2020.06.05 17:59
  • 수정 2020-06-08 2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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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화 주무관/국립국어원 ‘새수어모임’
이현화 주무관/국립국어원 ‘새수어모임’
이현화 주무관/국립국어원 ‘새수어모임’

 

올해 3월, 국립국어원은 ‘새수어모임’을 발족했다. 새수어모임은 농아인협회 관계자, 한국농아방송앵커, 수어통역사, 청각장애인통역사, 언어전공자, 수어교원 등 다양한 분야의 수어 전문가들 8명으로 구성된 단체로 정보 접근이 어려운 농인들에게 시사성이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수용도가 높은 수어를 마련해 보급하고자 만들어진 단체다. 장애인생활신문은 새수어모임이 어떤 방식으로 수어를 선정하고 보급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국립국어원 이현화 주무관을 만났다.

이현화 국립국어원 주무관은 “새수어모임이 선정하는 용어들은 우선 시사성이 높아야 한다. 이어 수어로 존재하나, 전문용어를 전달하기 어려운 단어들 위주로 구성원들이 안건을 올린다.”고 보급 수어의 선정 기준을 우선 설명했다.

“구성원들이 안건으로 올린 수어들 위주로 조사한다. 안건이 올라오면 구성원들이 용어를 조사한다. 예를 들면 ‘코로나19’, ‘승차 진료’ 이런 수어들을 여러 개 모아 후보를 만들고 논의를 하고 투표 진행을 한다. 그러고 나서 실제 수어 사용자들을 만나 어떤 방식으로 해당 단어들을 말하고 있는지 조사한다. 그리고 용어의 적절성, 해당 개념을 잘 전달하는지, 혹은 보급시 수용도가 높은 표현인지 최종 검토한다. 마지막으론 수어를 촬영하고 영상편집, 사진편집을 한 후 공개한다. 한 회기에 두세 수어를 보급하는데 보통 3주 정도 걸린다.”

용어의 적절성, 해당 개념의 전달성 그리고 보급 수용도. 적절성과 전달성은 조사와 설문을 통해 파악할 수 있지만, 보급 수용도는 예측의 영역이다.

“보급되기 전까진 해당 수어의 수용성에 대해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특징은 있다. 긴 용어는 수용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한두 개 정도의 표현이 시각적으로 잘 결합한 형태가 수용도가 높을 것으로 판단한다. 또한, 수어표현 수집 시 조사자들이 해당 표현을 어떤 농인들이 사용하는지 말해 준다. 일부인지, 사용자가 많은지, 여러 지역에 걸쳐 쓰는지. 이미 많이 사용되는 수어가 수용도가 높다고 판단한다. 확신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예비조건들을 통해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측한다.”

기자는 지금까지 새수어모임이 한국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단어들을, 새롭게 수어로 만들어 보급하는 방식인 줄 알았으나, 이현화 주무관의 ‘수어를 수집한다’라고 표현한 부분이 새롭게 다가왔다. 만들어 보급하는 것과 수집해 보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방식이다.

“만들지 않는다. 우선 수집한다. 수집한 수어 후보를 보고 그 안에서 권장안을 선정한다. 한국어는 여러 용어를 만들어 보급할 수 있다. 조어법 연구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규칙이 있고 그 규칙에 따라 만들면 되는데 수어는 연구가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조어법이 드러나지 않았다.”

새로운 개념의 단어가 등장하면, 농아인들 사이에서도 그에 맞춰 새로운 수어 단어들이 생기는 듯한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각 지역별로 새로운 단어를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다고 하는데 기자는 그 다른 단어의 표현 방식들이 국어의 영역에서 ‘방언’의 개념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방언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여러 수어의 형태를 모은다. 그 형태들은 이미 농아인들 사이에서 사용이 된 언어다. 수어도 자연언어다. 무슨 의미냐 하면 실제 언어 사용자들의 직관이 반영되었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청인들이 조어를 만들 때 자연스레 만든다. 생활에서 자연스레 말을 줄인다. 의식하지 못하지만, 규칙을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조어를 만들면 어색하게 들린다. 수어도 마찬가지다. 수어 사용자들만의 직관이 있다. 직접적인 화자가 아닌 우리가 섣불리 수어를 만들면 수어 생태계를 교란할 위험이 있고 수용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새수어모임이 발족한 지 4개월이 지나간다. 이들이 보급한 언어의 수용도와 농아인들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이현화 주무관은 “여러 매체에서 기사화는 꽤 된 거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농사회에선 국립국어원이 수어를 담당하는 기관보단 국어를 담당하는 기관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니 국어원이 수어 관련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이 있을 수도 있다. 잘 녹아들기 위해선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이현화 주무관의 대답 중 농인들이 국어원을 ‘수어를 담당하는 기관보단 국어를 담당하는 기관’이라고 인식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수어도 엄연한 한국의 공식 언어이니 국립국어원에서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기자의 취재 전 생각이었다.

“수어도 당연히 국립국어원에서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아까 말한 농인들의 정서는 국어원에서 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은 그래도 자신들의 언어인데, 연구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주도하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있다. 아직 시작단계여서 부족하지만, 우리는 농아인협회와도 유기적으로 협력하면서 진행 중이다.”

새수어모임은 지금까지 ‘코로나 19’, ‘질병관리본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시작에 있는 단어들을 보급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시사성이 높은 용어들은 코로나19 관련이기에 그럴 것이다. 이현화 주무관은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정부 브리핑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를 위주로 수어를 보급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부 브리핑은 문체부, 교육부, 과기부 등 다양한 부서가 한다. 그런 부서들 전반에 걸친 내용에 맞춰 선정할 것 같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현재 새수어모임을 진행하며 힘든 점에 관해 물어봤다. 이현화 주무관은 힘든 점은 없지만, 현실적인 부분에서 아쉬운 점은 있다고 토로했다.

“새수어모임 취지에 따라 더 많은 인원이 참여하면 좋겠다. 조금 더 규모가 크면 좋을 것 같다.”

아직 한국수어가 가야 할 길은 멀다. 공중파에서의 수어 뉴스는 아직도 먼 얘기이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지상파 3사 메인뉴스에 수어통역을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아직 미흡하지만 정부 브리핑은 수어 통역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농아인협회는 수어의 지위 향상을 위해 꾸준히 투쟁한다. 그렇기에 수어의 인식은 조금씩 좋아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새수어모임도 취지에 따라 규모도 커지고 더 활발한 활동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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