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어, 법 규정만큼 국어와 동등한 언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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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어, 법 규정만큼 국어와 동등한 언어인가?
  • 배재민 기자
  • 승인 2020.06.05 13:40
  • 수정 2020-06-05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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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한국수화언어법(이하 한국수어법)이 제정되며 그해 8월 4일부터 한국수어는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 법정 공용어가 되었다. 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지위를 갖게 된 것이다. 한국수어법이 제정되고 4년이 지났다. 강산이 반 정도 바뀐 지금, 농인들의 삶은 나아졌을까. 한국수어가 법에 등재된 것처럼 국어와 같은 지위를 갖추고 있을까.

본지는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의 김철환 활동가, 국립국어원 새수어모임 담당자이자 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 농인부모의 청인자녀)인 이현화 주무관, 한국농아인협회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수어의 현실을 알아보고 미래를 전망해 본다. - 배재민 기자

 

한국수어, 법은 제정됐지만 현실은 달라진 게 없어

 

코로나에 드러난 한국수어 현실

정부조차 신경 쓰지 않아

청와대부터 모범 보여야

 

가끔, 사람들은 단순한 법의 제정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법의 제정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장애인 관련 법들은 특히 더 그렇다.

국립국어원 이현화 주무관

국립국어원 새수어모임의 이현화 주무관은 현재 수어의 위치에 대해 “현실은 갖추어진 것이 없는 척박한 환경.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하며 “법이 현실을 견인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직 수어는 역할이나 지위가 갖추어지지 않았다. 역할과 지위를 갖추기까지 가야 하는 시작 단계, 환경을 만들어 나아가야 하는 시점이다.”라고 현 상황을 분석했다.

한국농아인협회는 “수어에 대한 위상이 많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나 아직 비장애인들은 수어가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에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고 현실을 들추었다.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의 김철환 활동가는 “겉으로는 수어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지만, 현장에서는 통역사도, 통역에 대한 활동보조 서비스도, 정부의 예산도 하나도 늘어난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올해 발생한 코로나19는 정부가 한국수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코로나19가 한국에서 막 기세를 부리기 시작할 때, 정부가 제공하는 관련 안내 동영상과 정부 브리핑에는 수어 정보가 전혀 제공되지 않았었다. 장애인단체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자, 그제야 정부는 정부 브리핑에 수어통역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장애의벽을허무는 사람들 김철환 활동가
장애의벽을허무는 사람들 김철환 활동가

김철환 활동가는 “그나마 지금은 안정이 되었다. 하지만 처음 방송에서 통역이 나올 때 화면 어디에 통역을 배치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것이 보였다. 또한, 여전히 코로나 감염 문제 때문에 대부분 지역에서 병원 통역 지원을 하지 않는다. 정부가 준비가 안 되어 있고 기준도 없다. 이것이 현장이다.”라고 비판했다.

코로나만이 아니라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3주년 특별 연설에서도 수어통역은 보이지 않았다.

연설을 생중계한 TV채널들 중 일부 매체에서만 수어통역이 제공됐다. 이는 정부가 수어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장애인단체가 항의할 때만 급하게 수어통역을 제공하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한국농아인협회 측은 “청각장애인 입장에서 알 권리를 침해당하는 느낌이 든다.”고 토로하며 “한국농아인협회는 꾸준히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김철환 활동가는 “청와대에서 정식으로 수어통역사를 배치하면 좋겠다. 물론 몇 명은 청와대가 그런 것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는 꾸준히 요구하는데 청와대는 부분적으로만 받는다. 물론 외국도 부분적으로 시행한다. 하지만 이건 외국에서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수어법은 국내법이기에 행정부의 최고기관인 청와대가 모범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수어와 구화 선택의 사이

 

농아인은 크게 세 가지의 소통 방법이 있다. 수어, 구화 그리고 필담. 모두가 훌륭한 언어다. 하지만 수어, 구화, 필담은 모두 문법 체계가 다르다. 청각장애인 만화가 라일라의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에서 작가는 “수어만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은 문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다른 언어다.

옆 나라 일본의 경우에는 농아인들이 수어와 구화를 둘 다 배운다고 전해진다. 수어 혹은 구화가 아닌 수어와 구화이기에 필담을 할 때에도 문법적인 이해도가 높다.

국립국어원의 ‘농인의 국어능력 향상을 위한 기초연구 결과 보고서’에 의하면 취학 전 농아인의 36.2%가 구화를 습득하고 17.3%가 수어를 습득한다. 이는 건청인 부모가 수어를 사용하는 아이가 구화를 사용하는 아이보다 사회에 나왔을 때 더 큰 불이익을 얻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반영된 결과다.

한편, 국립국어원에서 2017년 발간한 ‘한국수어 사용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구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농아인이 33.3%,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비율이 27.9%,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비율이 23.7%로 조사되었다.

또한, ‘이해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은 교육 수준은 대학교 졸업 이상(57.8%), 고등학교 졸업(52.7%)이며, ‘이해하지 못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은 교육 수준은 무학(67.1%), 초등학교 졸업(53.9%), 중학교 졸업(50.6%) 순으로 나타났다.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구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수어의 경우 ‘모두 이해한다’가 30.5%, ‘거의 이해한다’가 28.9%, ‘어느 정도 이해한다’ 23.5%,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가 10.2%로 조사되었다.

‘수어를 이해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은 교육 수준은 대학교 졸업 이상(93.9%), 고등학교 졸업(87.3%), 중학교 졸업(80%), 초등학교 졸업(77%), 무학(76.3%) 순으로 나타나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수어를 이해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낮아짐에도 불구하고 구화보다 이해도가 높음을 알 수 있다.

 

수어를 배우지 못하는

것은 농아인 자존감과

정체성에도 문제로 작용

 

건청인 부모들은 수어보다 구화를 선호한다. 부모를 비난할 수 없다. 사회가 수어 사용자를 배제했기에, 사회구성원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음성언어인 구화를 배우는 게 더 낫다고 부모들이 판단했을 뿐이다.

이현화 주무관도 “수어를 사용할 때 불이익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수어 사용자가 초등학교 입학을 해도 수어교육을 받을 수 없다. 그럼 기초학력이 낮아지고 취업이 힘들어진다. 전 생애에 걸친 문제다. 병원에는 수어통역사가 없다. 동사무소에서 간단한 서류조차 떼지 못한다. 직원도 없다. 체계도 없다. 청인과 농인 사이 장벽이 너무 높다. 먹고 사는 문제도 중요하다. 일반 회사에선 면접 볼 때 수어보단 음성언어를 선호한다. 조금 발음이 안 좋더라도 발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그는 이어서 “농인들은 구화로 완전해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구화는 농아인들이 발화자의 입모양을 보고 단어를 유추해서 대화를 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말하는 방법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입을 안 움직이고 말을 한다. 그걸 어떻게 알아보나? 또 예를 들자면 ‘아빠’, ‘아파’, ‘바빠’ 이런 단어들은 입 모양이 굉장히 흡사하다. 기초적인 단어 중에선 입 모양이 비슷한 것들이 많다. 그러니 평생을 구화를 배우는 데 할애할 수밖에 없다. 청인들이 국영수를 배우고, 영화 보고, 책 읽고 교양을 쌓을 때 농인들은 입 모양만 공부한다. 여기서 학력의 갭이 커진다. 이는 자존감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어린 시절의 자존감은 수많은 성공의 경험을 통해 획득된다. 구화는 농인들에게 안 들리는 언어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언어. 맨날 실패하는 것이다. 자존감은 낮아지고 눈치로 알아봐야 한다. 이게 농인의 정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구조들과 힘듦은 오롯이 개인과 가족들의 몫이다. 그래서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었지만, 아직 달라진 건 없다.”

김철환 활동가는 통합교육이 어떻게 농아인들에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통합교육은 분명 순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청각장애인들에게 통합교육은 우려가 된다.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통합교육을 받게 되면 아동기 때 자신이 청각장애인인지, 듣는 사람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특히 인공와우 수술을 하면 듣는 사람이란 생각은 하겠지만 여전히 불편하다. 청소년기는 중요한데, 이 시기에 자신이 모호해지는 것이다. 교육이 받쳐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수어를 가르쳐 주고, 통역을 해 줘야 하는데 그런 환경이 안 되는 상황에서 통합교육을 하다 보니 수어는 뒷전이 되고 음성언어만이 정답이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음성언어의 의존도는 높은데 만족도는 높지 않다.”고 말했다.

‘KT, 마음을 담다’ 캠페인은 청각장애인 가족의 목소리, 동년배 사람들의 목소리를 분석한 후 청각장애인의 구강구조를 파악해서 AI 음성합성 기술을 통해 목소리를 찾아주는 캠페인이다. 얼핏 보면 따뜻하지만, 농아인단체들은 장애인을 존중하지 못하는 광고라고 비판했다.
‘KT, 마음을 담다’ 캠페인은 청각장애인 가족의 목소리, 동년배 사람들의 목소리를 분석한 후 청각장애인의 구강구조를 파악해서 AI 음성합성 기술을 통해 목소리를 찾아주는 캠페인이다. 얼핏 보면 따뜻하지만, 농아인단체들은 장애인을 존중하지 못하는 광고라고 비판했다.

 

소리 강요하는 사회와

기울어진 운동장

 

지난 4월, KT는 ‘따뜻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선천성 청각장애인의 목소리를 찾아주는 프로젝트 ‘마음을 담다’를 홍보했다. 청각장애인 가족의 목소리 특성을 분석해 대상자의 나이, 성별, 구강구조 등을 고려해 AI가 본래의 목소리를 추론해 주는 사업이다.

분명 청인들의 시선에선 따뜻하고 보기 좋은 프로젝트다. 하지만 농아인단체들은 이 프로젝트에 대해 탐탁지 못하단 입장을 내놓았다. 단체들이 ‘마음을 담다’ 자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다. 분명 좋은 프로젝트인 것은 맞으나 동등한 조건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김철환 활동가는 “잘못된 프로젝트는 아니다. 하지만 이는 선택권의 문제다. 음성을 선택하든, 수어를 선택하든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선택을 하려면 구매할 때 상품이 동등하게 보여야 하는데 kt는 장애를 비장애화시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에 대한 존중, 가치에 대한 존중, 아직 우리 사회에선 멀다고 느껴진 순간이다. 장애를 비장애화시키면 다양성의 선택이 없어진다. 현재는 수어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아닌 상태다. 농교육에서도 수어가 잘 안 쓰인다. 이렇게 홀대하는 분위기에서 이런 광고를 보여주면 당연히 감동한다. 홀대는 뒷전이 된다. 수어가 보편언어로 잡히지 않은 상태, 광고의 인식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지금은 시기상조라고 생각된다.”고 했다.

이현화 주무관 또한 이는 “선택의 문제”라고 못박았다. 그는 “어떤 농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듣고 구화를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다. 당연하다. 개개인의 선택이다. 다만, 농인이 그 선택을 하기에 앞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춰야 한다. 동등한 환경과 동등한 조건에서 선택권을 주었다면 소리를 선택했을까? 여기에 답이 있다고 본다. 지금은 동등한 환경이 아니다. 음성언어가 우세한 환경이다. 수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 수어를 배울 때 무엇이 좋은지에 관한 정보를 접하기 어렵다. 환경도 정보도 음성언어에 맞춰져 있으니,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라고 주장했다.

한국농아인협회 측은 “농인마다 농 정체성 정도에 차이가 발생할 수는 있으나 제1 언어로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 입장에선 ‘목소리를 잃은’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이 불쾌할 수도 있다. KT의 노력과 기술의 발전은 환영할 만한 일이나 한국수화언어법에 의거해 ‘농인’은 농문화 속에서 한국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회의 한 구성원임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다.

 

수어의 미래?

자연수어는 사라져도

수어 자체는 없어지지 않아

더 이상 농인만의 언어 아냐

 

5월 21일 개봉한 김진유 감독의 영화 ‘나는 보리’에는 코다 누나가 와우수술을 앞둔 농아인 동생에게 “너 정말 수술하고 싶어?”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동생은 “아니. 나는 모두가 수어를 배웠으면 좋겠어.”라고 답한다. 수어가 한국 법정 공용어이니 학교에서 간단한 수어를 가르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수어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미래에는 어떻게 변할까. 김철환 활동가는 우선 수어의 장점에 대해 말했다. “수어는 없으면 안 된다. 인공와우 수술을 하고 음성언어를 배워도 나중에 수어를 배우는 경우가 많다. 답답하니까. 구화의 한계를 체득하는 것이다. 한편, 수어는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니 수어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예전 농아인들이 사용하던 자연수어는 조금씩 없어지고 한국어가 혼합된 형태로 바뀔 수는 있다. 이는 음성언어와 다른 형태로 체계성을 가지고 쓰느냐, 혼합해 쓰느냐의 차이니 자연수어는 없어져도 수어 자체는 남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기술로 청각장애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그는 이어 인권의 관점에서 말했다. “한국사회는 한때 단일언어, 단일문화였다. 지금은 깨졌다. 우리는 다문화 사회에 들어섰다. 분명 아직은 진정한 다문화 사회는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문화와 언어조차 존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진정한 다문화는 어디에서 오든, 어떤 장애가 있든, 문화나 언어를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인권의 입장이다.”

한국농아인협회 측은 이번 코로나로 인해 공공수어통역이 활성화된 것을 긍정적인 시작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며 “이번 공공수어통역으로 인해 수어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었고 향후 일상생활 영역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협회의 방향을 선언했다. 이어 현대 기술의 발전과 수어의 보급에도 주목했다. “현대 기술의 발전으로 AI를 활용한 수어안내 서비스 제공(SRT, 코레일 등 수어영상 안내, 영화관 내 긴급대피 안내 등)을 활성화하고 있으며, 언어-수어를 상호 인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어 향후 ‘수어’라는 언어가 ‘기술’과 결합해 농인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현화 활동가는 법에 대한 관점에서 수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짚었다. “한국수어법이 만들어지면서 ‘한국수어는 한국 농인의 공용어다’라고 선포했다. 하지만 법이 만들어진 이상 이는 농인들만의 언어가 아니다. 국가가 관리하는 공적인 언어다. 보호해야 한다. 그래서 널리 퍼져야 하는 언어다. 농인의 언어로만 국한하면 언어환경이 갖춰지지 않는다. 법원, 학교, 동사무소 등 언어환경을 갖추기 위해선 모두의 언어라는 인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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