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장애차별금지법제를 연구한 소감
상태바
세계 각국의 장애차별금지법제를 연구한 소감
  • 편집부
  • 승인 2009.05.22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준일/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법과대학 교수
▲ 이준일/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법과대학 교수

 지난 6개월 동안 보건복지가족부에서 발주한 ‘장애차별 모니터링체계 구축’에 관한 용역연구에 참여하면서 세계 각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비교ㆍ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동안 차별금지법제에 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오긴 했지만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제에 대해서는 연구가 미진한 상태였다. 어쨌든 보건복지가족부의 용역연구를 통해서 장애차별금지법제에 관한 전반적이고 총체적인 시각을 갖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연구의 결과로 우선 장애차별금지법제에서 ‘장애(disability)’의 개념에 대한 정의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장애의 개념은 넓게 볼 수도 있고, 좁게 볼 수도 있는데 장애차별에 대한 권리구제나 제재의 수단으로 어떠한 제도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특히 한국의 ‘장애인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처럼 ‘악의적인’ 장애차별에 대하여 형벌을 부과하는 경우에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따라 장애의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장애의 개념을 아무리 명확하게 규정한다고 해도 HIV감염처럼 새롭게 등장하는 장애의 범주에 대해서는 법률의 해석을 통해서 해결될 수밖에 없고, 이로써 장애개념도 점차로 넓어진다는 점이다. 또한 본인의 장애뿐만 아니라 친지의 장애까지도 장애의 개념에 포함시킴으로써 장애의 개념은 확대될 수 있다. 더욱이 특정인이 장애가 있다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장애가 있을 것이라는 주관적 인식이나 추정까지도 장애의 개념에 포함되면 장애개념은 그 외연을 더욱 확장하게 된다.


 한편 장애차별의 대표적인 5가지 유형으로 직접차별, 간접차별, 괴롭힘, 차별지시, 보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행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도 직접차별과 간접차별 및 괴롭힘은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 지시나 명령, 그리고 장애차별에 관한 진정이나 소송을 제기했다고 가해지는 보복행위는 장애차별에 포함되어 있지 않는데 이것들은 다른 세 가지 유형의 장애차별보다 그 가벌성이 더 크다는 점에서 도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면에서 장애차별에 대하여 형벌이 필요하다면 차별지시나 보복행위에 대해서 형벌을 부과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본다.


 연구의 또 다른 결과물은 장애차별에 대한 권리구제의 보편적인 방법으로 ‘진정’과 ‘소송’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점이다. 우리 장애인차별금지법에도 이러한 기본적인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장애차별의 피해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여 시정권고를 받아낼 수도 있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차별중지와 같은 임시조치결정이나 손해배상판결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그밖에도 차별중지, 재발방지, 원상회복에 관한 ‘시정명령’을 ‘법무부’에 신청할 수 있는 제도도 존재하는데 이것은 외국법에는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제도로 이해된다. 아무튼 차별시정기구에 대한 진정과 시정명령신청 및 법원에 대한 소송까지 외관상 완벽하게 보이는 권리구제절차는 단순한 보장보다는 구체적인 실행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앞으로 절차의 실행 여부를 지속적으로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장애차별에 관한 우리만의 독특한 제도로는 악의적 장애차별에 대한 ‘형벌’의 부과를 들 수 있다. 장애차별에 대한 형벌의 부과는 한국에서 발생하는 장애차별이 가혹하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이지만 형벌의 과잉이라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장애차별에 관한 권리구제의 방법으로는 오히려 독일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계약무효제도’가 도입될 필요성이 있다. 장애차별이 주로 발생하는 영역으로 고용이나 사적 거래를 들 수 있는데 이러한 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 발생했다면 차별적 내용의 계약을 무효로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장애차별의 시정에서 제도의 완비만큼 중요한 것이 의식의 개선이라는 점은 더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장애차별이 발생한 뒤에 이를 사후적으로 시정하고 구제하는 것보다 장애인도 동등한 사회구성원이라는 인식을 통해 장애차별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세계 각국의 장애차별금지법제를 연구하면서 얻은 가장 큰 결과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