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대학에서 탐구하는 삶은 자폐인들에게 매력적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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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만난 사람) “대학에서 탐구하는 삶은 자폐인들에게 매력적일 것”
  • 배재민 기자
  • 승인 2019.11.01 09:51
  • 수정 2019-11-01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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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호 인하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국내 최초 자폐인 박사학위 및 교수

2019학년 2학기가 시작된 인하대학교에 초빙교수로 임용된 윤은호 씨는 자폐인이다. 그는 한국에서 자폐장애를 가지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최초의 인물이며 자폐인 최초로 국내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인물이다.

“저를 교수보다 박사로 불러주었으면 좋겠어요. 아직 공식 교수가 되려면 멀었지만 박사 학위는 땄으니까요.”

윤 박사는 부모님의 결정에 따라 일반학교를 다녔다. 공부는 힘들지 않았으나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괴롭힘이었다.

“왕따는 일상이었습니다. 다른 자폐인들과 대화를 해보면 왕따를 겪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다들 심리상담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정부에서도 관리를 해주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존재하는 자폐인들을 향한 폭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터넷도 심각합니다. 폭력적인 문화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장애인을 차별하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소통하려고해도 힘듭니다. 그래도 대놓고 하는 욕설은 과거에 비해 많이 없어진 편입니다. 제가 조금 슬픈 것은 이런 욕들을 감수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윤 박사는 사람과 소통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를 옛날부터 알던 사람들은 그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파고들며 조금씩 세상을 넓혀나갔다.

“중학교 1학년 무렵 자폐가 가장 심했습니다. 하지만 그때쯤 인터넷이 보급되고 좋아하는 것을 검색하게 되고 제가 좋아하는 문화 관련 행사들을 찾아다니며 선호분야를 파고들었습니다. 일단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자폐 당사자들은 과거는 집착이라고 말하는데 집착이 선호로 재인식되면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배워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윤 박사와 대화를 하며 기자가 가장 먼저 받은 인상은 그의 다양한 모습이다. 그에게서 교수, 연구원 그리고 활동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정교수가 되는 것은 너무 많은 걸 의미합니다. 다양한 인간관계에 놓이게 되는 직업입니다. 아무래도 실적을 쌓는 직업이어서 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활동가라는 단어를 저에게 붙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일반인으로서, 개인의 자격으로 해야 할 말을 하는 겁니다. 일단 저는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합니다.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싶은데 그 이유가 더 잘 연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논문을 써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를 통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넓혀나가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그는 성공한 사람이다. 하지만 윤 박사는 아직까지 많은 것들이 부족하다고 증언한다. 그의 앞길은 여전히 멀고 어둡다.

“먼저 다음 단계로 올라 갈 사다리가 없어 보입니다. 연구 관련 지원사업들은 장애인한테 배정을 안 해줍니다. 비장애인들과 동일하게 싸워야 합니다. 학부까진 학생지원센터가 있었지만 대학원부터는 그런 단계가 없습니다. 저도 연구를 하려면 지원사업을 통해 돈을 받고 연구를 하고 평가를 받아 계속해서 다음 단계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 단계가 불명확합니다.”

비장애인 학생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그런 네트워크들은 같은 길을 갔던 혹은 가고 있는 선후배들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장애인들은 그런 네트워크 자체가 없습니다. 장애인 당사자가 연구하려고 해도 지원해주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윤 박사는 그러기 위해 고등교육이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자폐 당사자도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대학 입학이 너무 어렵습니다. 수능 난이도는 굉장히 높은데 난이도를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비장애인들에게도 어려운 시스템인데 계속 이렇게 가다간 자폐장애인들은 고등교육을 거의 못 받게 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론 장애인들이 자리 잡을 기회는 더 없어지게 됩니다. 교육이 나아지려면 차라리 논문을 쓴다든가, 사고력을 키운다든가, 탐구하는 것들을 늘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는 이어서 자폐인들이 대학까진 어떻게든 적응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윤 박사는 대학교에서의 탐구하는 삶은 자폐인들에게 매력적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자폐인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탐구력, 원하는 것을 찾는 열정, 열기 이런 것들은 되게 잘합니다. 지금은 자기선호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자신의 취향을 연구하는 시대는 더 강화될 겁니다. 다들 개인 선호는 다르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들이 많으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고 거기에 맞춰 어떻게 갈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면 분명 대학교에서의 삶은 매력적일 것입니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윤 박사에게 후배 자폐인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람들과의 소통을 하지 않으면, 소통에서 오는 프레셔(압박)를 이기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만 상처 받은 채로 끝나게 됩니다.”

 

배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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