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후 살 곳 없다’는 ‘정신장애인’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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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 후 살 곳 없다’는 ‘정신장애인’의 나라
  • 임우진 국장
  • 승인 2019.03.08 09:50
  • 수정 2019-03-08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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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 입원 경험이 있는 정신장애인의 절반 이상이 1년 넘게 입원치료를 받았고 5년이 넘는 비율도 17%나 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오랜 입원기간보다 더 서글픈 것은 장기입원 이유로 ‘퇴원 후 살 곳이 없어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는 사실이다. 정신장애증상관리 때문이 아니라 주거지 문제 등 다른 이유로 장기입원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 진입을 의미하는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천만 명 이상의 나라)에 세계 7번째로 등극한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정신장애인들이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과 의료계는 정신장애인 인권은 안중에도 없이 입원과 치료 등 사회와의 격리를 더 강화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니 큰 문제인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정신장애인 응답자의 85.5%가 정신병원 입원 경험이 있었다. 평균 입원 횟수는 4.8회로 이 가운데 자의에 의한 입원은 1.8회에 불과했다. 정신장애인 스스로 입원을 결정한 경우는 20%밖에 안 됐고 부모나 형제, 배우자 등 가족에 의한 경우가 70%나 된다는 얘기다. 장기입원 이유도 ‘병원 밖에서 정신질환 증상관리가 어렵기 때문’(13.3%)보다도 ‘가족이 퇴원을 원치 않아서’(16.2%)였다. 그럼에도 ‘정신병원 입원’이 정신장애 회복에 도움이 됐다는 정신장애인은 11.4%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정부와 사회가 주목해야 한다. 정부와 사회가 관행처럼 강제해왔던 장신장애인의 정신병원 입원과 격리가 진정한 치료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이 조사에서 드러난 것이다.

현행법으로 장기입원 정신장애인들이 퇴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퇴원하지 못하고 병원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는 것은 정신장애인의 비극이자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가족이 퇴원을 꺼리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족들의 돌봄이 경제적 정신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임을 우선 꼽을 수 있겠다. 정신장애인을 둔 가족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생활상 불이익 등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도 클 것이다. 대다수의 OECD 국가들에서 다양한 선택권을 주고 지역사회 중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과 우리의 상황은 너무 다르다 하겠다. 정신병원 격리 중심의 제도 아래서는 지역사회에서조차 철저히 소외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장기간의 돌봄과 생활고에 지친 가족들이 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끔찍한 일들을 언론보도를 통해 듣고 보아왔다. 돌봄을 가족 문제로 치부해온 결과다. 이런 극단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가족중심의 돌봄이란 틀부터 깨야 한다. 그래야만 ‘퇴원 후 살 곳이 없어서’라는 말도, ‘가족이 퇴원을 원치 않아서’라는 응답도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늦게나마 정부가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니티케어)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무엇보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상 ‘정신장애인’과 정신건강복지법상 ‘정신질환자’란 상이한 개념정의부터 재정립하고 정신장애인의 재활과 자립 및 권익보호를 위한 법 개정이 시급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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