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화언어법이 남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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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화언어법이 남긴 과제
  • 임우진 국장
  • 승인 2016.01.2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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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어를 공용어로 인정하는 ‘한국수화언어법안(대안)’이 지난 12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미 130여개 나라에서 수화언어를 공용어로 인정하고 있다고 하니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하위 법령을 마련해 시행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수화언어의 체계적인 연구, 조사, 보급 사업을 진행하고 한국수화언어의 발전을 위한 장기계획도 수립할 계획이다. 한국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갖게 됨으로써 수화언어 사용이 늘어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소통도 더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실질적인 효과를 보기 위해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이 남아 있다. 통과된 법률안의 내용을 뜯어보면, 수화사용 실태조사와 기본계획 수립 등 아직은 선언적인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수화언어법은 한국수화언어 사용환경 개선을 위한 국가 및 지자체의 정책 수립·시행, 5년마다 한국수어발전기본계획 시행, 3년마다 농인의 한국수어 사용환경 등에 관한 실태조사, 교재 개발과 교원 양성 및 한국수어교육원 지정, 장애발생 초기부터 한국수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환경 조성, 수어통역이 필요한 농인 등에 대한 통역 지원, 한국수어의 발전과 보급을 위한 관련법인·단체 지원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수어 관련과목 신설 조항이 법안 심사과정에서 빠짐으로써 초·중등학교에서 수어 관련과목을 신설할 수 없게 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비장애인들에게 수어 보급 기회가 막혀 ‘농인들만의 언어’로 한정시킨 꼴이라는 것이다. 수어교육과정과 교재개발 기관이 국가가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라는 점도 문제다. 국가 재정이 어떻게 편성되느냐에 따라 사업 자체가 소멸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미비점에도 불구하고 장애계가 이번 한국수화언어법안의 국회통과를 환영하는 것은 
오랜 염원 때문일까. 그동안 농인들이 겪어야 했던 사회적 차별과 소외를 생각한다면 한 가닥 지푸라기를 잡은 심정일 것이다. 농인들은 수화언어 사용자로서 의사소통은 물론 일상생활에서조차 많은 제약을 받아오지 않았던가. 교육과 취업은 물론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차별과 서러움을 겪어야 했다. 장애인복지법 등을 통해 정보접근권 등 농인의 권리보장을 제도화하고 있지만 농인의 근본적인 언어권 신장과 삶의 질 향상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수화언어법 제정은 교육, 사회, 문화 등 농인들의 생활영역 전반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다 줄 터 닦기임에 틀림이 없다. 이를 계기로 농인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사회활동의 참여가 활발해지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한국수화언어법 제정을 계기로 한국수어 보존과 보급이 활성화돼야 한다. 수화언어는 농인들만이 아니라 비장애인에게도 매우 유용하다는 주장도 있다. “물리적으로 말할 수 없을 때, 방독면을 쓰고 있을 때, 침묵 속에서 일을 처리해야 할 때, 물속에서 잠수나 자맥질할 때, 소리가 닿지 않는 먼 곳에 신호를 보낼 때, 너무 시끄러운 데서 말할 때 등은 수화 역시 하나의 자연언어로서 ‘기본적인 소통 수단’”(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이라는 것이다. 국내 농인 및 언어장애인 27만 명(2014년 말 기준)의 언어로서만이 아니라 한국어를 사용하는 국민들의 공용어로서, 동일한 언어적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정책들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법 이행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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