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폐지’ 안 하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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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 폐지’ 안 하겠다는 것인가
  • 임우진 국장
  • 승인 2015.06.0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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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장애등급제 개편 계획안이 마침내 드러났다. 그런데 그동안 장애계가 줄기차게 반발했던 중‧경증 2단계로 단순화하는 내용이어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6단계인 장애등급제가 2017년부터 중증(현행 1~3급)과 경증(4~6급) 2단계로 단순화되고 서비스 전달체계도 개편돼 현재는 장애인들이 개별적으로 서비스를 해당 기관에 신청하던 것이 지방자치단체에서 일괄적으로 처리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화안은 박근혜정부가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던 대선공약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어서 사실상 공약철회가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정부가 ‘2016년까지 장애등급제를 완전히 폐지하고 장애인의 서비스 적격 여부를 판단하는 새로운 체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던 때가 바로 지난해였다. 그러나 이 모두가 빈말이 될 공산이 커졌다.

정부가 이처럼 대통령의 공약까지 어겨가며 장애등급제를 완전 폐지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복지재정 효율화와 맞물려 있다. 겉으로는, 정부가 등급제 폐지 대신 단순화로 방향을 잡은 주된 이유는 현재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각종 감면·할인 제도가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장애등급제 전면 폐지 여부는 전체 장애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장애계의 충분한 의견 수렴과 동의 후 정할 계획이라는 단서까지 달아 폐지 철회가 아님을 우회적으로 변명하고 있다. 달리 해석하면, 장애등급제가 전면 폐지될 경우 장애인에게 지급되는 각종 서비스 혜택을 조정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복지예산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추론할 수밖에 없다. 복지재정 증가를 우려한 정부는 사실상 기존 제도의 틀을 크게 수정하지 않는 선에서 일부 조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점에서 정부가 장애등급제 폐지 공약을 사실상 철회하기 위한 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그동안 장애인들은 장애등급제 개편으로 서비스 혜택 범위가 넓어질 것을 기대해왔지만 서비스 총량은 기존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말로는, 정부가 향후 장애등급제 개편의 주요 원칙으로 서비스 총량이 축소되지 않으며 기존 수급자의 수급권이 최대한 보호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행간을 읽어보면 서비스가 증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서비스 확대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의학적 장애기준은 감면할인제도 유지 등 현실을 감안해 현행 1~3급을 중증으로, 4~6급으로 경증으로 하고 중복장애 합산규정은 현재의 기준을 유지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재정절감이 긴박한 정부가 복지재정 효율화를 외치는 마당에 서비스 확대는 기대하기 어렵다.

1988년 도입된 장애등급제는 장애를 등급화한다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라는 지적을 받아왔으며, 의학적 장애등급만으로는 장애인들의 다양한 서비스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장애계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해왔다. 지난 2013년 장애판정체계기획단 역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중간단계로 단순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고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장애계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복지재정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는 박근혜정부로선 복지재정 증액을 야기하는 장애등급제 전면 개편은 당분간 시행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시범사업 계획안을 철회하고 ‘완전한 폐지와 대안 논의를 위해 국무총리 산하에 장애계가 참여하는 범정부기구를 구성하자’는 장애계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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