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않는가?

2019-10-11     최인관/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무처장
 

그리스 신화 중 영웅 테세우스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 위에서 만난 소름 돋는 인물 중에 노상강도 프로크루스테스가 있다. 그는 나그네를 만나면 친절하게도 자신의 침대를 내주며 쉬어가라 권한다. 그런데 그 침대는 쉴 수 있는 침대가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형틀이다. 프로크루스테스는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막강한 힘으로 키를 늘려 나그네를 죽이고, 반대로 키가 침대보다 크면 침대에 맞춰 다리를 잘라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우리 사회는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의 방식을 적용해 왔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발달장애인과 그들의 잘못이니 비장애인사회에 최대한 적응하도록 훈련과 교육을 통해 그들이 발전하여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그 과정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발달장애인과 가족은 불쌍하긴 하지만 그들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문제였으며 사회는 그들을 위해 최선의 정책(생활시설)들을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평생에 걸친 전반적인 지원이 필요한 발달장애인 예산의 무거움과 이제껏 외면하여 체계적인 복지전달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한 우리 사회의 비겁한 변명일 뿐이었다.

2019년 오늘 우리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가? 아직도 발달장애인은 적응기술(adaptive skills)이 부족한 장애인 특히 발달장애인은 사회의 주변부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최근 몇 년 새에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 패러다임이 극적으로 변화되었다. 더 이상 장애의 문제는 적응의 문제라기보다는 지원의 문제로, 장애인 개인이 극복하고 혁신해야 되기보다는 우리 사회에 어떠한 지원을 해야 그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의 문제로 변화되었다.

발달장애인법이 제정(2014. 04. 29.)된 지도 5년이 흘렀다. 발달장애인법은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부모들의 ‘우리의 권리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지역사회 주변부에서 살아야 하는가?’의 꿈과 회의(懷疑)에서부터 시작되어, 그들의 피와 눈물의 노력으로 제정되었다. 이제는 그들이 아닌 우리 스스로에게 반문해 봐야 한다. ‘왜 아직도 발달장애인의 집은 지역사회에 있지 않은가?’, ‘우리는 왜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않는가?’, ‘그들은 왜 아직도 성인이 되어 시설에 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가?’ 등에 대해 꿈꾸고 회의(懷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들과 우리의 경계는 허물어질 것이고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 머물 수 있는 건강한 살 곳들이 많아질 것이다.

지난 25일 인천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의미 있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본 필자는 발달장애인의 건강한 살 곳을 찾기 위해 어떠한 준비와 고민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발표를 하였다. 이 글을 통해 발달장애인 인천이라는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현재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몇 가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인천이 시작해야 되는 것은 선배치 후훈련 방식의 새로운 지역사회 주거 모형 도입이 시급하다. 기존의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 모델인 ‘선훈련(주거생활 훈련 또는 탈시설 준비 과정) → 후배치(지역사회 소재 자립생활주택, 공동생활가정, 개인독립가정 또는 기타주택 등으로의 이전)’ 방식은 다음 단계로의 이전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임시적 주거로 인한 주거 불안정의 위험이 발생할 수 있고, 일정 수준 이상의 자립 수준에 도달해야만 독립 주거로의 배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경증장애인 중심의 정책이 될 수밖에 없는 문제점을 갖고 있으며, 탈시화의 정책의 좁은 해석으로 인해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만 해당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자치조례 개정이 시급하다. 인천광역시에도 발달장애인을 위한 조례가 있으나 선언적이고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보인다. 발달장애인법에 명시된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정책과 서비스들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에 대한 인천만의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하며, 의지를 가지고 시행할 수 있도록 이를 점검하고 조언해 줄 수 있는 민관의 논의기구의 내용은 핵심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 이상 발달장애인이 시설에 들어가지 않도록 시설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시행해야 한다. 탈시설화 정책을 장애인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지만 시설폐쇄 없는 탈시설화 정책은 장애인이 탈시설한 만큼 다시 가정에서 시설로 들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자체 차원에서 의지를 가지고 장애인들의 신규 입소를 막거나, 시설폐쇄에 대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이 외에도 많은 내용들이 있으나 제일 시급하고 중요한 내용만 명시하였다. 요새 광고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란 문구가 자주 보인다. 어떠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과 단계가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이런 준비과정에 매몰돼 준비만 하다 끝나버리거나, 기력이 소진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넓게는 대한민국을 둘러싼 여러 나라들에서 이미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 함께 살아가는 것은 의문의 여지 없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현실적이 이야기가 되었으며, 좁게는 서울에서, 광주에서 이미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주거방안을 실현하고 있다.

우리는 ‘왜 아직도 발달장애인의 집은 지역사회에 있지 않은가?’, ‘우리는 왜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않는가?’, ‘그들은 왜 아직도 성인이 되어 시설에 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가?’란 질문에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들만의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그들이 살고 싶은 마을에서,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우리들과 소통하며 함께 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있는 날을 위해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