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의미의 탈시설

전현일 /국제발달장애우협회 대표

2019-04-23     편집부

최근에 미국에서 시설에서 나온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때 그들의 삶의 질이 과연 기대한 만큼 향상했는가에 대한 연구 논문이 있었다. 중도요양시설(대개 20명 미만의 발달장애인거주시설)에서 나와서 그룹홈에 살고 있는 1350명의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다방면으로 측정하고 분석했다. 연구결과 나타난 것은 과거에 지적발달장애인의 탈시설(deinstitutionalization)이라고 여겨 왔던 것이 단지 시설 이주화 (transinstitutionalization)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지역사회 주거가 서비스 제공기관 소유의 그룹홈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시설 이주화’는 한 시설체제에서 다른 시설체제로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시설 간의 이주는 과거부터 주로 정신장애인에게 지역사회 근거한 인프라가 부족함으로 인해 흔히 벌어져 왔던 일이었다.

본 연구로 나타난 것은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이 단순히 현대판 시설 이주화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1350명의 지적발달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나타내는 어떤 면에서도 그들의 장애정도에 상관없이 발달장애중도요양시설과 서비스제공기관 소유의 그룹홈 사이에 그 성과 면에서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같은 시스템, 만연한 가부장적인 태도와 관념, 지역사회의 적절한 인프라의 부재로 인해서 제약적인 하나의 체제에서 서비스제공기관 소유와 관리체제인 그룹홈과 같은 다른 제약적인 체제로 옮긴 것에 불과했다.

이 논문의 저자는 결코 시설과 제공기관의 그룹홈 체제 사이에 별 차이점이 없다고 해서 시설을 더 선호하는 것이 아니다. 실상, 과거 수십 년 동안 미국의 발달장애인들은 지역사회 체제를 선호했고 그곳에서 그들의 삶이 향상된 것은 분명하다.

단지, 이러한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서비스제공기관 소유의 그룹홈 체제가 더욱 진보적이 되기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실상, 이 연구에 의하면 발달장애인이 자기 혼자 자립해서 혹은 자기 가정에서 가족과 같이 살 때에 그룹홈에 사는 경우보다 그들이 지역사회에서 대인관계를 맺고 좋은 삶의 성과를 경험하는 예가 훨씬 많다는 것이었다.

서비스제공기관이 재정적, 기타 다른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설 이주화를 없애기 위해서는 서비스제공기관이 변화함으로써 그 조직의 문화를 혁신하고 단순히 법규를 지키고 보호모델의 케어체제를 벗어나서 통상적인 것을 재검사하고 장애인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을 없애고, 입증에 근거한 당사자 중심의 지원체제를 도입하고, 서비스제공기관이 지원하는 지적발달장애인의 바람에 응하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조직의 변화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더욱이 지역사회 인프라의 결여, 필요한 서비스의 부족됨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본 연구의 저자가 추천하는 것은 삶의 질에 대한 불변의 지표가 되고 있는 개별 주거나 장애인의 가정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정도에 관계없이 그들이 자기 집이나 자기 가정에 살 때에 가장 높은 안정감, 지역사회와 대인관계, 그리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성과가 가장 높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발달장애인의 가정은 이미 그 서비스의 부담을 과중하게 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돌보는 가족이 연로해 가는 것을 생각할 때 가족지원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공적기금의 비용을 늘리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작은 변화는 가족이 보수를 받아가면서 개인 케어서비스를 하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지역사회에서의 비용이 시설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탈시설에서 절약하는 비용을 지역사회의 장기 케어 프로그램에 투자해서 서비스를 확충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설 이주화를 종식하기 위해서는 시설 위주와 시설 편파적인 국가의 복지예산 체제를 허물어 버리는 것이 필수적이다. 국가 정책으로 장애인과 고령의 노인들이 제대로 된 지역사회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창조적인 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

복지부는 발달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서비스제공기관에만 의존하지 말고 장기 지원과 서비스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당사자 위주가 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절차도 갖추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