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후위기와 장애인 인권…장애인, 기후위기 피해자 아닌 기후정의 주체로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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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후위기와 장애인 인권…장애인, 기후위기 피해자 아닌 기후정의 주체로 나서야
  • 이재상 기자
  • 승인 2023.05.19 09:00
  • 수정 2023-05-18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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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첫 사망자는 장기 입원해 있던 정신장애인이었으며, 2022년 반지하 폭우 참사로 사망한 피해자 역시 발달장애인 일가족이었다. 이처럼 장애인들은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 가장 먼저 죽고 다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기후위기인천비상행동과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주최하고 염전골햇빛발전협동조합에서 주관한 ‘기후위기와 장애인 인권’ 토론회가 5월 9일 인천시 부평아트센터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플라스틱 빨대 사용하지 않기,

빨대 없이 물 마실 수 없는

장애인을 고려 않은 기후재난

대응에서의 대표적 사례…

수소 저상버스 등 ‘장애포괄적

기후위기 대응방안’ 마련돼야

 

■장종인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장은 “장애인을 재난 불평등의 피해자로만 호명할 것이 아니라 기후 정의의 주체로 호명할 때 장애, 비장애 모두가 실천 가능하고 누구의 권리도 침해하지 않는 기후 정의 행동이 가능할 것”이라며 “기후 정의 논의 테이블에 장애인의 참여를 적극 보장해야” 함을 주장했다. ‘기후 정의’란 기후위기를 정의라는 가치와 연결하는 흐름이다.

1980년대에 비해 전 세계 날씨에 의한 재난 횟수는 3배가 증가했다.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 태풍, 집중호우, 한파, 산불, 감염병 등의 기후재난은 2022년 8월 폭우, 지난 4월 강릉산불에 이르기까지 재난의 일상화라고 해도 될 정도의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기후재난의 원인과 불평등의 원인은 동일하다. 지구와 인간의 안전보다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그러한 기업을 위한 정책 결정을 생명보다 우선시해 온 국가, 반지하와 쪽방·고시원·시설처럼 안전하지 않은 공간을 용인해 온 국가, 노동자를 소모품 취급하는 기업과 저임금에 불안정한 일자리 확대를 가능하게 해 온 국가, 탄소 배출 제로를 주창하면서도 이윤만을 위한 대규모 토건 사업을 지속하며 철거민을 만들어내는 국가, 즉 시스템의 문제다.

장 국장은 “이러한 국가적 또는 전세계적 시스템을 극복하고자 기후 정의를 위한 행동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기후 정의가 장애인을 배제한 채 오히려 장애인을 차별하는 정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기후위기 대응방안으로 강조되는 이른바 ‘에코-에이블리즘(eco-ableism)’은 생태주의적 실천을 강조하면서, 그 과정에서 장애인들을 배제하는 태도를 지칭한다. 어떤 장애인은 빨대 없이는 물을 마실 수 없지만, 그저 ‘소비 습관의 변화’만을 강조하며 빨대 사용 자제를 촉구하거나, 기후재난 대응에서 장애인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대표적 사례다.

미국과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플라스틱 빨대 금지’ 정책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도 대형 프랜차이즈들을 중심으로 ‘플라스틱 빨대 사용하지 않기’가 새로운 기후위기 대응 실천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최근에는 팩 음료수에 딸려오는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장애 특성상 구부러지지 않는 종이 빨대나 단단한 스테인리스 빨대 등을 이용할 수 없는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매번 자기 돈으로 빨대를 구매해 가지고 다니거나 불편하고 위험하게 음료를 마셔야 하는 걸까? 환경을 위해 플라스틱 빨대를 모조리 없애버리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신체와 특성을 가진 사람은 고려되지 못했다.

장 국장은 “이러한 플라스틱 빨대 사용하지 않기가 기후위기에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 등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정책이 기업의 친환경 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경우가 더 많다.”며 “그 기업이 상품을 생산하고 포장하고 유통하는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 친환경성은 모두 은폐되고 플라스틱 빨대 사용하지 않기로 친환경 이미지를 가져가는 그린워싱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평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차량 운행량을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 이용 시 세제 혜택 등의 유인책을 부여하는 정책들도 점점 더 많이 도입되고 있으며 ‘탄소세’ 등 자가용 이용에 대한 비용을 점점 높여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은 제한적이며, 지역에 따라 대중교통을 전혀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너무나 많다. 더 나아가 최근 인구가 적은 지방 도시의 장애인이동권 확보를 위해 버스를 대폭 늘리고 이를 저상버스로 도입하자는 장애계의 요구에 대해서도 ‘친환경 정책과 배치될 수 있다’며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장애인 등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장애 포괄적 기후위기 대응 방안’으로 장애인이동권을 보장하면서도 탄소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전기 저상버스, 수소 저상버스의 도입을 추진할 수 있다. 이미 2021년 이종성 의원이 버스차량 교체 시 반드시 친환경 저상버스로 교체하도록 하는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고 2022년 인천시가 2030년까지 모든 시내버스를 수소 버스로 교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기본소득, 폭력이 규명되지 않는

‘느린 재난’ 속에서 살아가는 힘…

기본소득 연결한 탄소세 도입해야”

 

■김한별 기본소득당 인천시당 위원장은 “기후위기뿐 아니라 차별과 배제로 인한 사회적 재난은 일상에서 서서히 그리고 치명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며 “기본소득이 ‘느린 재난’ 속에서 살아가는 힘이자 기후 정의 주체로서 목소리 낼 수 있는 사회참여의 구체적인 기초가 될 것”임을 주장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시작점이 명확하지 않지만, 그 여파는 커서 사람들에게 포착되는 순간에는 이미 복구가 어렵다. 시작점부터 사람들에게 등장하고 사라지기까지 이 모든 과정이 기후위기 속에 있다는 것.

이에 재난전문가들은 ‘느린 재난’이란 개념을 제안하고 있다. 느린 재난은 ‘눈에 보이지 않게 일어나는 폭력, 시공을 넘어 널리 확산하는 시간 지체적 파괴, 일반적으로 전혀 폭력으로 간주되지 않는 오랜 시간에 걸쳐 벌어지는 폭력’을 의미한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제 등이 차별로 규명되기까지의 시간, 국가의 책임을 확인하고 대책이 마련되기까지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느린 재난’의 개념은 장애인의 삶 전반에도 적용할 수 있다.

김 위워장은 “기후위기뿐 아니라 차별과 배제로 인한 사회적 재난이, 일상에서 서서히 그리고 치명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때문에 일상을 뒷받침할 ‘모두를 위한’ 정책이면서, 기후 정의의 주체로서 장애인이 지탱할 수 있는 구체적 토대로서 ‘보편적 소득보장책인 기본소득’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장애정도(등급)를 심사하거나 재산 심사 없이 정기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은 자유로운 시간의 확보를 의미하고 자유로운 시간은 일상에서의 기후위기 대응의 힘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는 “기본소득은 폭력이 규명되지 않는 ‘느린 재난’ 속에서 살아가는 힘이자 기후 정의 주체로서 목소리 낼 수 있는, 사회참여의 구체적인 기초가 될 것”이라며 “여기에 장애인 참여를 보장하는 기후대응 거버넌스 정책은 보다 효과적일 것”임을 밝혔다.

이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탄소 감축을 효과적으로 이행하도록 자극하는 촉매제로서 기본소득과 연결한 탄소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본소득당은 21대 오준호 대통령 후보 정책공약에서 연 100만 원의 탄소 배당 정책을 제안한 바 있다.

 

“장애인에게 위기는 보편적 일상,

포괄적인 이야기 대신 장애인에게

시급한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하다.”

 

■박순남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 장애인위원장은 “기후위기와 장애인 인권을 토론하는 자리에 인천시의 관계자들이 자리하지 않아 유감”이라고 밝히며 토론을 시작했다.

화재 발생 시나 홍수가 났을 때 시각장애인이나 휠체어 이용 장애인, 뇌성마비, 농아인 등 거의 모든 장애인은 신속하게 대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박 위원장은 “기후위기를 떠나 장애인에게 위기는 보편적인 일상이다.”며 “포괄적인 이야기 대신 장애인에게 시급한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안전벨이 설치되었다고 장애인이 재난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며 “화재의 경우 낮보다 밤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24시간 장애인활동보조 지원, 임대주택과 거주하는 주택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한 “출·퇴근 시간 때 전철 이용 시 장애인에 대한 배려 없이 바쁘다는 핑계로 밀치고, 제치고 먼저 타 버린다. 장애인은 아무리 바빠도 비장애인들이 다 떠난 이후에야 전철을 이용할 수 있다.”며 이와 관련된 장애인식 개선 교육 필요성을 주장했다.

 

“20년 넘게 장애인이동권 투쟁

벌어지고 있는 한국…기후위기

대응 속 장애인 인권 언감생심”

 

■최기전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서기관은 “특례법 제정 목적에서 최근 장애인학대의 지속적 증가라고 돼 있는데 과연 장애인학대가 실질적으로 증가했는지, 아니면 상존하고 있던 학대가 수면으로 드러난 것인지에 대해선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7년부터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설치돼 장애인학대 신고가 활성화돼 있고 신고 의무자 대상 의무교육, 시민 대상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등도 실시돼 정착화되는 과정에서 장애인학대 사건 발견 숫자가 확대된 것이라는 게 복지부의 해석이다.

최 서기관은 “이런 상황에서 특례법 제정처럼 처벌에 대한 형사절차 상의 실효성 강화 부분으로 갈지,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나 신고의무자제도 등 현행 제도를 문제점 개선을 보완해 나가고 이를 위해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확대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정의 확대와 관련해선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의 경우 법 적용 대상이 등록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도 포함돼 있고 차별금지 영역도 일상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전방위적이고 무차별적인 법률”이라며 “특례법안의 장애 정의를 장차법 수준으로 포괄적으로 규정할 경우 법 적용 현장에서 부담과 혼란 등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펼쳤다.

 

■박병규 정의당 인천시당 정책실장은 2021년 11월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근육위축증으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칼린 알하라르 이스라엘 에너지·수자원부 장관이 휠체어 접근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행사장 밖에서 2시간가량을 대기하다 참석을 포기한 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장애인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을 포함하여 사람들을 가장 먼저 돌보지 않고는 우리의 미래를 보호하고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글을 소개했다.

그는 “이러한 장애를 둘러싼 사회적 편견과 차별, 제도·물리적 장벽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장애인이 환경문제에 동참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주고 있다.”면서 “20년 넘게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어쩌면 기후위기 대응 속에 장애인의 인권은 언감생심일 수도 있다.”며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한 기후위기 대응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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