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같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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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같이 갑시다
  • 편집부
  • 승인 2023.04.06 10:17
  • 수정 2023-04-06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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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_시각장애인 칼럼니스트

눈 보이는 사람들에겐 믿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흰 지팡이로 길을 찾아다니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팡이 끝이 벽에 부딪히면 좌로든 우로든 꺾어서 가면 되고 아래로 푹 꺼지는 느낌이 들면 계단인지 낭떠러지인지 확인하고 다음 걸음을 선택하면 된다. 일정 기간 훈련이 필요한 일은 분명하지만 내 주변 시각장애인들의 통계로 볼 때 지팡이 보행은 엄청난 노력이나 선천적 자질과 관련한 신기하고 대단한 일이 아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그러기 때문에 처음 가는 낯선 길이나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장소는 흰 지팡이 보행 능력만 믿고 찾기는 어렵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릴 적 나의 아버지나 어머니도 그랬다. 분명 멀쩡한 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가고 싶은 모든 길을 쉽게 찾을 수는 없었다. 자주 다니는 길이나 가까운 어디만큼은 걸어가든 뛰어가든 운전을 해서 가든 언제든지 편히 다닐 수 있었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 사시는 친척께서 이사라도 가시는 날엔 지도를 보고 이정표를 봐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다가 도저히 아닌 듯하면 다시 돌아오고 오른쪽으로 갔다가 또 아니면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하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지금의 내 지팡이 보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길눈 밝은 어른들은 시행착오 줄여가며 빠르게 도착하기도 하셨는데, 지팡이 짚은 친구 중에도 이상하게 길 잘 찾는 녀석들 있는 것과 그 또한 유사했다.

먼 길을 찾아가는 것은 매번 불편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해법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눈 보이는 사람 중 길 못 찾는 이들의 수는 내비게이션이라는 도구로 인해 말도 안 되게 줄었다. 일일이 GPS의 점들을 돌아다니며 주소와 이름을 붙이고 그것들을 지형지물의 변화에 따라 업데이트하는 일은 불가능한 영역이라 여겼지만, 다수의 편의 증진이란 목표를 공유한 이들에 의해 어느 틈에 해결돼 버렸다.

스마트폰 하나만 가지고 있다면 대부분 사람은 어디를 찾아가더라도 길을 묻거나 헤매지 않아도 된다. 이토록 편리한 삶은 과거의 사람들에게 상상 밖의 일이었지만 현실이 되고 더 나은 발전을 향해서 다시 움직인다. 아주 오래 전 사람들은 길이 만들어지기를 꿈꿨을 것이고 모든 길에 이정표가 있기를 바랐을 것이지만 그 당시 그들은 그것이 이루어지리라는 확신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를 상상하던 이들도 보행 내비게이션을 원하던 사람들도 그것이 머지않은 미래에 손안에 쥐어지리라는 생각까지는 할 수 없었겠지만, 다수가 바라면 현실이 됐다.

안타까운 것은 그 시간 동안 지팡이 짚은 이들의 길 찾는 방법은 큰 변화 없이 제자리걸음이라는 것이다. 벽을 만나면 돌아서고 낭떠러지를 만나면 피해야 하는 지팡이 보행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팡이의 재질이 달라지고 어떤 선한 이들의 시각장애인용 지도 앱 개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빠른 속도로 드라마틱하게 변해가는 다수의 변화와 비길 바는 못 된다.

눈 보이지 않는 이들의 상상 속에도 더 나은 세상은 존재한다. 지팡이 하나만 있으면 어떤 길이든 찾을 수 있고 안전할 수 있으리라는 꿈은 어쩌면 현실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지금 다수가 누리는 대부분의 편리함도 이전에는 그런 것들이었다. 다만, 그것은 다수의 바람이었고 내가 상상하는 것은 소수라는 것이 유일의 차이다.

어떤 이들은 결국 우리는 극도의 발전으로 장애와 비장애 없이 모두가 편안해지는 세상으로 간다고 말을 한다. 어느 시간엔 무인 자동차가 만들어지고 보이는 사람이나 보이지 않는 사람이나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안에서 장애 없는 다수는 또 다른 꿈을 꾸고 그것이 현실이 되어가는 동안 우리는 또 다른 차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날 수 있는 사람과 날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우주로 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함께 산다는 것 그리고 모두가 편리해진다는 것은 자연 상태에서는 꽤나 어려운 일이다. 다수의 꿈을 이뤄갈 때 소수의 바람이 함께 꽃 피우려면 다수의 의지가 필요하다.

길이 만들어지고 이정표가 생기는 동안 시각장애인들도 그 안내를 볼 수 있어야 했다. 많은 이들의 내비게이션이 발전하는 동안 나의 지팡이도 그만큼 스마트해졌어야 했다. 무인 자동차가 만들어지고 하늘을 날 수 있는 시간에 그때엔 나를 포함한 우리가 모두 함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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