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칼럼]유니버설디자인: 집이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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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칼럼]유니버설디자인: 집이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되려면
  • 편집부
  • 승인 2023.04.06 10:12
  • 수정 2023-04-06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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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지/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

하루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 불을 켜는 순간 느껴지는 안도감 같은 것이 있다. 집 밖에서의 힘든 일들을 잠시 잊고 사회적 자아를 내려놓은 채 온전히 한 개인으로 존재하는 공간. 자고, 먹고, 씻고, 밀린 집안 일을 하다가 여가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생활의 기초가 되는 공간. 요컨대 ‘집’이란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내가 나를 돌볼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하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는 집이 필요하다.

그런데 순조롭고 평범하게 흘러가는 집에서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큰 사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 욕실에서 샤워를 하거나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는 일상 하나하나가 남들보다 배로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느껴져야 할 일상의 공간이 투쟁의 장소가 되어버린다면 그걸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유니버설디자인 주택에 대한 논의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유니버설디자인(Universal design)’이란 누구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계획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배리어프리 디자인(Barrier-free design)’ 개념과 조금 차이가 있는데, 배리어프리 디자인이 주로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도 안전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의미한다면 유니버설디자인은 장애뿐만 아니라 성별, 연령, 국적 등 다양한 요소들을 모두 고려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니버설디자인은 주로 공공건축‧디자인영역에서 논의되고 있다. 서울시가 2016년 유니버설디자인 도시 조성에 관한 기본조례를 제정한 이후 일부 지자체에서도 유니버설디자인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고, ‘도시숲 등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이나 ‘공공시설물 디자인 가이드라인(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훈령 제288호)’ 등에서 유니버설디자인 개념이 실제 건축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은 내용적인 면에서 유니버설디자인적 요소를 차용하고 있다.

한편, 해외에서는 유니버설디자인에 대한 논의가 주택 설계에 대한 단계에까지 확장되어 있는데, 미국의 경우 4호 이상의 공동주택은 ‘공정주택법(Fair Housing Act)’에 따른 ‘접근성 요건(accessibility require-ment)’을 충족해야 하고, 영국과 스웨덴 등에서도 주택 건설 시 장애인이나 고령자를 고려한 설계를 하도록 하는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물론 주택은 거주자의 편의와 욕구에 따라 그때그때 내부 구조와 형태를 변경할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주택이 이미 지어진 이후에는 개조가 어려운 요소들, 예를 들어 건물 출입구의 면적, 승강기 설치 여부부터 시작해 주택 내부의 설비 중 벽체의 종류나 화장실의 구조 등은 주택을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정해진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유니버설디자인 주택의 핵심은 개조 가능성에 있고, 개조 가능성을 위해서는 주택 건설 시 특정한 기준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주거기본법에서 ‘주거권’을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제2조)’라고 정의하고 있으면서도, 주거권에 대한 대부분의 정책이 주택 공급에 그칠 뿐 ‘어떤 주택’을 공급할 것인지, 공급한 주택에서 ‘어떻게 생활’할 수 있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려가 없다시피 하다. 물론 ‘장애인‧고령자 등 주거약자 지원에 관한 법률’, ‘공공주택특별법’ 등 일부 법령에 주택 설계에 대한 기준들이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준 자체가 통합적이지 않고 공공주택 등 매우 극소수의 주택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범용성을 갖는 통합적인 기준이 되기 어렵다. 따라서 주거기본법에 따른 최저주거기준이나 유도주거기준 개념을 활용하거나, 건축법과 주택법상 기준에 유니버설디자인 요소를 포함시켜 주택을 짓는 단계에서 직접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방향의 입법이 필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 이동권 투쟁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집 밖에서의 평등만큼이나 집안에서의 평등이라는 개념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리에서, 학교와 직장에서, 혹은 대중교통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몸을 움직이고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면 이러한 평등은 가장 사적이고 미시적인 공간인 주택 내부에서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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