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대학 새내기 최중증장애 최동연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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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대학 새내기 최중증장애 최동연의 하루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3.03.23 14:05
  • 수정 2023-03-23 14:0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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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대학교 사회통합학부 장애인레저스포츠 전공 23학번 최동연.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갖고 태어난 중증장애인이다. 최중증뇌병변장애로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응급실을 호텔로 알 정도로 병치레도 잦았다. 그러다 보니 학교도 초중고 모두 특수학교(연세재활학교)를 다녀야 했고, 고교 졸업 후에는 특수학교의 전공과를 2년 다녔다. 그리고 올해 대학을 진학했다. 심한 언어장애에 저작이 안 돼 혼자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용변 처리도 스스로 할 수 없을 정도의 중증장애를 지닌 최동연 씨의 대학생활은 어떨까. 아버지와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며 대학생활을 하는 대학 새내기 최동연 씨의 하루를 따라가 보았다.

“새벽 6시 기상, 강의부터 동아리활동까지…힘들지만 신나요”

 

▲최동연 씨와 아버지 최규갑 씨. 동연 씨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

오전 6시, 아버지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

아침 7시 반 기상안내 방송이 울린다.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한경국립대 평택캠퍼스 생활관의 아침은 이 기상방송과 함께 시작된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빠른 새벽 6시부터 오전 일과를 시작하는 방이 있다. 라온동 307호 사회통합학부 장애인레저스포츠 전공 23학번 최동연 씨의 방이다. 중증뇌병변장애로 가진 동연 씨는 아버지 최규갑 씨(이하 아버지로 약칭)와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한다. 장애가 심하다 보니 9시에 수업을 시작하는 1교시 수업이 있는 날(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목요일)이면 새벽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이제 두 주일 남짓, 아버지도 동연 씨도 점차 대학생활에 적응해가고 있다.

이곳 한경국립대 평택캠퍼스의 생활관에서는 다른 대학과 좀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일반 대학의 생활관에서는 재학생들만 생활하는 것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학생의 보호자(부모나 활동보조인)와 함께 생활한다. 이는 이 학교가 중증장애인도 들어올 수 있는 대학이기 때문이다.

2023학년도부터 한경국립대학교 평택캠퍼스로 이름을 바꾼 이 대학의 전신은 한국복지대학교다. 한국복지대학교는 2002년 장애인들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됐다. 올해부터 안성의 한경대학교와 통합되어 한경국립대학교로 이름을 바꾸고 3년제 전문대에서 4년대 종합대학이 됐다.

2023년 현재 한경국립대 평택캠퍼스 재학생은 총 651명, 이중 장애학생이 248명이다. 장애학생들의 장애유형은 다양하다. 장애유형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재학생들의 장애 정도. 장애학생 248명 중 중증장애를 가진 학생이 222명이나 된다. 한마디로 다른 대학들에서는 받기 꺼리는 중증장애학생들도 이 학교는 환영이라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이들 중증장애학생들의 생활 지원 차원에서 보호자의 생활관 동반 입소 또한 가능하다. 그래서 이 학교 캠퍼스 곳곳에서는 학생들의 엄마 아빠(혹은 활동보조인)들을 만날 수 있다. 한 가족이 같이 들어와 생활하는 사례도, 자녀들의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아예 대학에 다시 다니는 엄마의 사례도 있다. 이런 제도가, 최동연 씨와 그의 부모가 이 대학을 선택한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다.

▲ 체육관 수업은 답답한 강의실보다 신이 난다. 언어장애가 있지만 태블릿PC와 스마트폰만 있으면 조교와의 소통에도 문제가 없다.

 

휠체어도, 수어통역도, 속기지원도 낯설지 않은 강의실

오전 8시 반, 동연 씨와 아버지는 생활관을 나선다. 동연 씨의 휠체어에는 그날 강의에 필요한 교재며, 일상적인 소통에 도움을 주는 태블릿PC가 실리고, 아버지의 백팩에는 휴지부터 수저까지 동연 씨의 일상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물품이 가득하다.

화요일 첫 교시는 ‘뉴스포츠’, 세 시간 연강이다. 체육관에서 이뤄지는 실기 수업이지만 오늘은 개강 초라 한 시간은 강의실에서 이론수업을 하고 체육관으로 이동해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이루어졌다.

동연 씨가 적을 두고 있는 사회통합학부는 장애인레저스포츠 전공, 장애상담심리 전공, 공공행정 전공의 3개 전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애학생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학부이며, 각 전공별로 한 학년 정원은 13명이다.

동연 씨가 수업에 들어가면 아버지는 강의실이 있는 인학관 2층에 마련된 학생휴게실에서 ‘대기’한다.

“동연이가 갑자기 화장실에 가야 한다거나 하는 등 돌발상황이 있을까 봐 ‘비상대기’하는 겁니다. 아직 학기 초고, 일반 학교생활은 처음이라 적응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 아버지의 말이다. 이날도 수업 도중 잔뜩 긴장했던 동연 씨가 구토를 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한 차례 ‘출동’했다.

동연 씨 아버지와 같이 자녀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는’ 부모님이나 활동보조인들은 학생들이 수업을 하는 동안 (중증의 경우) 학생휴게실이나 강의실 문 앞에서 대기를 한다. 자녀가 경증일 경우에는 기숙사를 정리하거나 자녀 친구들의 상담역이 되기도 한다.

강의실에서 체육관으로 이동할 때는 경증 친구들이 동연 씨와 같은 중증 친구들을 돕는다. 물론 보호자들이 함께 있지만 당사자들 역시 보호자의 손길보다는 친구들과의 소통을 더욱 좋아한다. 동연 씨 역시 수업이 이루어지는 내내 화장실 용무 외에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세 시간 연강이 끝나니 점심시간이다. 점심은 당연히 학생식당에서 ‘학식’으로 해결한다.

화요일 오후, 동연 씨는 한 시간의 전공 수업과 저녁 시간의 동아리 모임을 해야 한다. 2시부터 시작되는 전공 수업은 ‘특수체육개론’. 사회통합학부 학부장이기도 한 오광진 교수의 수업이다. 강의실에는 학생들 외에 수어통역사와 속기사가 학생들과 짝을 이뤄 들어온다. 전동휠체어를 탄 최동연 씨는 가장 뒤쪽으로 자리를 잡는다. 다행히 한 시간짜리 수업이라 중간에 화장실을 가야 하는 일도 없이 잘 마쳤다.

▲ ‘특수체육개론’ 수업. 휠체어를 타는 최동연 씨는 맨 뒷자리에 앉아 강의를 듣는다. 앞쪽에 청각장애학생을 위한 수어통역사(흰옷을 입은 여성)도 보인다.

 

대학생활의 진수 ‘동아리모임’

오후 6시 인학관 220호,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휠체어를 탄 학생은 최동연 씨를 포함해 여섯 명. 자신들을 ‘매니저’라고 소개한 학생들까지 모두 10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이 동아리는 한경국립대 파워사커동아리(한경PSC)이자 평택시 장애인파워사커생활교육교실이다.

파워사커는 최동연 씨가 대학에 진학하기로, 특히 한경국립대 장애인레저스포츠과로 진학하기로 결심한 가장 큰 동기다.

“재작년에 우연히 파워사커를 접했어요. 서울에 있는 청소년동호회에서 파워사커를 시작했는데, 너무 신이 났죠.”

파워사커는 한마디로 말하면 휠체어 장애인들이 하는 축구다. 평생 자신이 축구라는 스포츠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한 최동연 씨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아버지에게는 동연 씨의 미래가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었다. 파워사커를 만난 날부터 ‘축생축사’를 하게 된 동연 씨가 한경국립대의 장애인레저스포츠학과를 알게 된 것은 2022년 5월이었다. 파워사커용 휠체어를 빌리러 갔던 한경국립대(당시는 한국복지대) 체육관에서 함께 운동도 하고 즐겁게 생활하는 선배들을 보고 ‘나도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연세재활학교 전공과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던 차였다.

대학 진학은 쉽지 않았다. 중증장애인도 들어갈 수 있는 학교였지만 입시 준비가 늦었던 동연 씨는 10월 수시전형에선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13명 모집에 24명이 지원했고, 그중 동연 씨는 가장 장애가 심했다.

낙심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2022년 12월 29일, 평소처럼 태블릿으로 인터넷을 하고 있던 동연 씨가 소리를 지르며 아버지를 불렀다. “아브~~”(동연 씨는 심한 언어장애를 갖고 있다. ‘아브’는 아빠를 부르는 동연 씨의 언어다.)

한경국립대 사회통합학부 장애인레저스포츠학과의 정시 모집 공고를 본 것이다. 아버지는 즉각 학교에 문의해 3명의 결원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고, 다시 정시 지원, 면접을 통해 결국 합격했다.

▲ 오늘 일정 중 가장 신났던 동아리 모임. 최동연 씨는 한경PSC의 일원이다.

그렇게 들어온 대학에서 파워사커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은 동연 씨로서는 너무 당연한 일이다. 이 동아리에는 대학에 들어오기 전부터 함께 파워사커를 했던 형들도 있으니 더더욱.

이날 동아리모임은 오리엔테이션이라 강의실에서 이루어졌지만 학교가 지원해주는 파워사커용 휠체어가 들어오는 4월부터는 체육관에서 매주 화요일 한 시간 반씩 코치로부터 훈련을 받게 된다.

올 한 해 한경PSC를 이끌어갈 동아리 회장까지 선출하고 모임을 마치니 어느새 저녁 7시 반이 훌쩍 넘었다. 사실 학생식당의 저녁을 먹어야 하지만 오늘은 아버지와 함께 외식을 하기로 했다. 며칠 동안 ‘예민보스’ 동연 씨를 괴롭혔던 문제가 해결된 기념으로.

대학 새내기 최중증장애인 최동연 씨와의 하루는 밤 9시 고기파티로 마무리됐다. 아침에 처음 만났을 때 동연 씨는 며칠 골머리를 앓고 있던 외부활동 문제 때문에 무척이나 우울해했다. 하지만 오전 중에 문제가 잘 해결되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리고 저녁에 파워사커 동아리 모임까지 하고 난 최동연 씨는 즐거운 대학 새내기의 모습 그대로였다. 기자와 헤어지면서 동연 씨는 “친구들이랑 함께 할 수 있는 게 대학교에 들어와서 제일 좋은 점”이라며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최동연 씨가 동아리모임에서 동영상을 통해 자기소개를 하며 활짝 웃고 있다. 

 

“대학은 장애학생들이 사회로 나아가는 완충지대입니다”

오광진 한경국립대학교 사회통합학부장

 

“동연이는 우리 학교에서도 장애가 심한 편에 속합니다. 그런데 왜 뽑았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간혹 있습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장애 정도가 가벼운 아이들은 일반 사립대학에 가도 됩니다. 장애인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을 지향하고 설립된 국립대학인 우리 학교에서 중증장애인들을 안 받으면 어디로 가겠어요? 어렵고 느리지만 중증장애학생들도 대학생활을 하다 보면 발전합니다. 대학은 지식만 전달하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즉 사회성과 인성도 함양하는 곳이죠.”

‘특수체육개론’ 강의를 끝내고 나온 오광진 교수에게 던진 최동연 씨가 너무 중증이라 대학생활 하기 힘들지 않겠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대학에서의 통합교육’을 주장하는 오광진 교수는 한경국립대학 사회통합학부 학부장이다. 사회통합학부는 장애학생들만의 전공인 장애인레저스포츠 전공, 장애상담심리 전공, 공공행정 전공으로 이루어져 있고, 기본적으로 장애인의 고등교육을 통해 장애인들의 사회통합을 목적으로 한다.

사회통합학부 학부장답게 오광진 교수는 ‘통합교육’의 중요성을 내내 강조했다. “우리 과에 들어오는 학생들 중에도 많은 수가 특수학교에서 초중고를 보내고 옵니다. 그러다 보니 비장애인 아이들과 어울리는 법을 몰라요. 물론, 아직 미숙한 아동기나 청소년기에는 장애아이들이 따돌림을 받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편견도 함께 생활해야 없어집니다. 그런 차원에서 통합학교의 특수반을 늘려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중증장애인의 대학 진학에 대한 생각도 같은 맥락이다. “비록 초중고를 특수학교를 나왔더라도 대학생활을 하게 되면 보다 더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오 교수는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은 “장애인들이 사회통합으로 가는 ‘완충지대’”라고 생각한다.

특히 장애인레저스포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장애인레저스포츠 전공은 장애유형과 정도에 맞는 운동을 가르치고 즐길 수 있게 하는 과입니다. 스포츠를 함으로써 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갈 때 지켜야 할 규칙도 배울 수 있고, 성취감도 느낄 수 있죠. 요즘은 취업도 어렵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새내기 최동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들려달라는 주문에 스승 오광진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포기하지 말고 꿋꿋하게 학교를 다녔으면 합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친구들과 즐겁게 학교생활을 즐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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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샘 2023-03-23 20:28:50
동연아 멋지다!
훌륭하신 아버지와 교수님, 학우들과 함께 행복한 대학생활하길 바란다. 너의 도전을 늘 응원해!

오기철 2023-03-23 18:51:42
정말 감동적인 기사, 잘 읽었습니다,
아버님도 훌륭하시고
동연군도 멋지십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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