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예산 돌려막기식 무늬만 ‘장애인개인예산제’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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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예산 돌려막기식 무늬만 ‘장애인개인예산제’ 안된다
  • 편집부
  • 승인 2023.03.23 11:12
  • 수정 2023-03-2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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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장애인개인예산제’가 본격 추진된다. 올해 모의적용 연구를 통해 개인예산제 사업모델을 확정하고 내년부터 지자체 시범사업을 거쳐 2026년 본격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는 3월 9일 이 같은 내용의 장애인개인예산제 추진 방향 등이 담긴 ‘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23~2027년)을 발표했다. 장애인개인예산제는 장애 유형이나 정도에 따라 정해진 복지서비스를 받는 게 아닌 일정 예산 한도 안에서 장애 당사자가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다. 하지만, 장애인의 선택권을 강화하는 것이 사업 취지인데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복지 총량과 종류가 부족한 상황임에도 예산 확보 방안이 빠져 있는 등 정책의 구체성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정부는 우선 장애인개인예산제 본격 도입에 앞서 올해 4개 지방자치단체 거주 장애인 120명을 대상으로 두 가지 사업모델 모의적용 연구를 할 계획이다. 그중 ‘급여 유연화 모델’은 기존 지급 장애인활동지원 예산 중 일부(10% 내)를 떼어내 재활, 긴급돌봄, 의료비, 보조기기 구매 등 공공서비스나 주택개조, 주거환경 개선, 자가용 개조 등 민간서비스에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필요서비스 제공인력 활용 모델’은 기존 장애인활동지원 예산 일부(20% 내)로 간호사, 언어치료사, 물리치료사, 보행지도사 같은 인력으로부터 서비스를 받는 방식이다. 문제의 핵심은 두 사업모델 모두 장애인개인예산제 관련 예산을 이미 지급되고 있는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으로 충당한다는 조건이다.

정부의 발표부터 장애계가 반발하는 첫째 이유는, 이처럼 관련 예산을 왜 기존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으로 메꾸려 하느냐는 것이다. 정부의 모의적용 모델대로라면, 장애인개인예산제가 시행되면 기존에 받던 활동지원 급여가 줄어들게 되는 것은 뻔하다. 장애인에게 활동지원이란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제공하는’ 생명줄과 같은 필수불가결한 급여다. 맘대로 지원을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장애인들이 도움 없이 홀로 지내다 목숨을 잃은 댓가로 탄생한 게 활동지원제도라는 걸 정부는 잊었는가. 지금도 활동지원 급여가 부족해 많은 장애인들이 희생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장애계가 24시간 활동지원을 줄기차게 요구해오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내놓은 장애인개인예산제 사업모델은 너무 실망스럽다. 서비스 예산 총량을 늘리지 않고서는 제도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개인예산제’라면서 개인예산 활용범위를 제한해 제시하는 것 또한 ‘무늬만’ 개인예산제란 비난을 면치 못할 판이다. 장애인개인예산제가 안착하기 위해선 공공서비스 다양화 및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새겨들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말끝마다 ‘약자복지’를 주창하면서 예산 반영 계획 없이 기존 장애인활동지원 예산을 활용하려는 돌려막기식 장애인개인예산제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약자복지임을 자인하는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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