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고 방방곡곡] 계절의 경계에서 봄을 찾아 나선 목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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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타고 방방곡곡] 계절의 경계에서 봄을 찾아 나선 목포 여행
  • 편집부
  • 승인 2023.03.09 10:22
  • 수정 2023-03-17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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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바람의 칼날이 무뎌졌다. 우수, 경칩이 지나면 마음은 벌써 봄이다. 봄을 찾아 나섰다. 한반도의 서남해안의 항구, 목포. 가수 이난영의 ‘목포는 항구다’로 유명하고, 맛의 도시로도 유명한 목포를 절친들과 급행열차를 타고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열차 한 편에 전동휠체어석 단 두 개, 결국 두 팀으로 나뉘어 따로 이동, 목포에서 접선. 목포역 근처 근대거리를 중심으로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근대역사관 두 곳 모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어 문 앞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서야 했지만, 아점과 저녁을 맛있는 음식과 넘치는 친절함으로 융숭하게 대접해준 식당들이 있어 나름대로 성공한 봄 마중 여행이었다.
전윤선_무장애여행 칼럼니스트

요맘때면 낮엔 겉옷을 벗고 광합성을 듬뿍할 만큼 기온이 오르고, 아침저녁으로는 겉옷을 다시 껴입어야 할 정도 기온이 뚝 떨어진다. 봄과 겨울이 공존한다고나 할까. 가늠하기 어려운 날씨에 적응하면서 목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번 여행은 절친들과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유행가 가사처럼 목포행 완행열차도 있지만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기엔 목포행 급행열차가 딱이다.

기차 여행에는 편리함도 있지만 제악도 따른다. 일행 네 명이 기차를 타고 여행하려면 둘씩 두 번에 나눠 타야 한다. 기차에는 전동휠체어 좌석이 달랑 두 개뿐이어서다. 둘은 용산역에서 출발하고 둘은 수서역에서 타기로 했다. 그렇게 흩어져서 기차를 이용해야 하니 기다리는 시간이 많다. 일본의 신칸센처럼 휠체어 좌석을 여섯 개까지 늘려야 서너 명이 같은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할 수 있다. 서로를 기다리는 시간이 없으니 당연히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코레일은 기존에 있는 휠체어 좌석도 줄이는 판이다.

 

휠체어석이 단 두 석인 목포행 급행열차

주인장의 친절이 맛을 더한 한식뷔페식당

 

목포역에 도착해서 두 시간가량 일행을 기다렸다. 공복 상태가 계속되다 보니 당이 떨어지는 것 같아 꼬마 김밥 하나로 당 충전을 한다. 그리고 곧 나머지 두 명의 일행이 도착했다. 다들 새벽부터 집을 나섰으니 배가 고플 터다. 아점을 먹기 위해 서둘러 근대역사문화거리 쪽으로 갔다. 근대역사문화거리에서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식당을 찾아다녔다. 근대역사문화거리는 오래된 건물들이 대부분이어서 턱이 없는 식당을 찾기 쉽지 않다. 들어갈 수 없는 식당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다 드디어 문턱 없는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아싸~ 한식 점심 뷔페식당 ‘보리밭사잇길로’를 발견했다. 아니, 정확히 식당 사장님이 우릴 불렀다.

▲ 개화기 당시 의상으로 갈아입고 흑백사진을 찍을 수 있는 유달동사진관 ⓒ유달동사진관

“여기 휠체어도 들어올 수 있게 공간이 넓으니까 들어오세요.” 사장님이 친절하게 우릴 부른다. 전동휠체어 네 대가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고 턱도 없는 데다가 입식 테이블이 있는 식당이다. 너무 반가워서 얼른 식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는 동안 사장님은 접시에 밥이며 반찬이며 퍼다 주신다. 그리고는 사장님 남편도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어서 우리의 심정을 잘 안다고 하신다. 게다가 사장님 남편은 “모모는 철부지~”로 시작되는 대중가요 <모모>의 작곡가라고 한다. 반가워하는 사장님 덕에 기분은 좋아졌고 착한 밥값에 더 흥이 났다. 게다가 음식은 기깔나게 맛있으니 여행 시작부터 삼박자가 딱 떨어진다. 남도여행에서는 맛있는 여행에 대한 기대가 있다. 기대에 부응하듯 백반 뷔페가 욕구를 만족시켜줬다.

든든히 배 속을 채우고 본격적으로 목포근대역사문화거리를 훑어본다. 백 년 전 건물은 시간을 덧칠해 레트로 감성에 젖게 하고 추억을 소환하는 여행으로 손색없다.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는 근대역사문화거리

근대역사관 두 곳 모두 휠체어 접근 불가

 

목포근대역사2관이 있는 거리로 갔다. 근대역사2관은 일제강점기 때 동양척식주식회사로 쓰였던 건물이다. 동양척식회사는 토지 경영, 부동산 담보대부 등의 사업으로 우리나라 경제력을 지배하기 위한 회사로 1920년 6월에 문을 열었다. 목포의 동양척식회사 건물은 해방 이후 많은 변천사를 거쳐 1999년 11월 20일 전라남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일제강점기 사회상 사진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목포를 찾는 여행자에게 목포의 근대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안타깝게도 휠체어 사용인은 역사관 진입로 계단 때문에 진입할 수 없다. 장애인 주차장도 마련돼 있는 역사관인데 정작 역사관 건물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 유달산 자락에 있는 목포근대역사1관으로 가는 길은 완면한 경사로가 새로 나 있다. 그러나 막상 역사관에는 계단 때문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다. ⓒ전윤선 

역사관 앞에는 경사로가 있는 유달동사진관이 있다. 유달동사진관에서는 개화기 당시 의상으로 갈아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휠체어 이용인이 사진관 안으로 들어가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좁은 공간이어서 사진관 앞에서 기념사진 찍는 걸로 대신했다.

사진도 찍고 예쁜 카페 구경도 하면서 근대역사1관으로 발길을 이어갔다. 근대역사1관은 유달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역사관으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한 새 길을 냈다. 근대역사1관은 1897년 목포 개항 이후 일본의 영사업무를 위해 1900년 12월 완공된 건물이다. 광복 이후 목포시청, 시립도서관, 목포문화원으로 사용되었고 근대 건축물 가운데 문화재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목포근대역사1관. 일제강점기 일본영사관으로 쓰였다.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전윤선
▲ 목포근대역사1관에서 바라본 풍경 ⓒ전윤선

목포근대역사1관은 드라마 <호텔 델루나> 촬영지이기도 하다. 근대역사1관 건물 진입로에도 4개의 계단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기차 탈 때 쓰는 이동식 리프트만 있어도 휠체어 이용인이 역사관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자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을 어찌하랴.

▲ 근대역사1관 뒤쪽에 있는 일제의 방공호 내부. 일제 징집된 조선인들이 방공호를 파는 모습이 재현돼 있다. ⓒ전윤선

다행히 역사관 뒤 방공호는 둘러보는 데 문제없다. 방공호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태평양전쟁을 시작하면서 공중 폭격에 대비해서 대피 장소로 만들었다. 유달산 밑에 만들어진 방공호는 일본군 150사단의 사령부가 유사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방공호 조성에는 군인으로 징집당한 조선인이 강제 동원돼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일제의 방공호는 태평양전쟁 당시 공중에서 가해지는 폭격을 차단하기 위해 취사시설과 공기정화시설까지 마련하고 장기전을 대비해 준비됐다. 한반도의 경우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대형 방공호가 만들어졌으며 목포에는 유달산과 고하도에 방호가 만들어졌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도 없다는 명언처럼 아픈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고 교육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반면교사를 삼아야 한다.

 

수줍은 매화꽃은 봄을 알리고

목포는 항구, 아니 맛의 도시다

 

목포에는 이미 봄이 도착해 있다. 매화꽃이 수줍게 웃어주고 기온은 부드럽다. 햇살은 따스하고 유달산은 봄을 끌어들이고 있다.

목포9미 중 하나인 홍어회 ⓒ전윤선

‘목포는 항구다’ 아니 ‘목포는 맛있다.’ 그런 목포에 왔으니 저녁까지 먹고 돌아가기로 했다. 저녁 식당은 오늘 길에 찜해둔 ‘낭만포차 신안어촌’이다. 턱도 없고 사장님도 친절하게 테이블을 휠체어에 맞게 세팅해준다. 참 괜찮은 곳이다.

 

손님으로 대접받는 이 기분, 늘 이랬으면 좋겠다. 여행은 소비행위라 돈 쓸 때마다 기분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하지만 휠체어 탄 장애인은 돈을 쓰면서도 차별을 받거나 기분 나쁠 때가 많다. 그런데 목포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손님으로 정당한 대접을 받으니 목포 여행은 멋있는 여행과 맛있는 여행으로 성공한 여행이다.

광어회와 홍어, 낙지호롱을 시켰다. 그런데 곁들임 음식이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나온다. 낙지, 멍게, 소라, 거북손, 전복, 해삼, 가리비, 병어회, 돔구이, 가자미구이, 생선전까지 먹음직스러운 해산물이 상 위에 가득하다. 눈호강, 입호강, 오감이 춤을 춘다. 게다가 멸치젓에 삭힌 고추무침은 밥도둑으로 등극했다. 이 정도면 목포 여행은 레트로 여행과 맛있는 여행으로도 성공한 셈이다.

장애인은 참 많은 것을 참고 산다. 그러니 부처가 따로 있나 싶을 정도다.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도 참을 때가 많고, 여행에 나서서도 많은 것을 참고 인내하고 속으로 삭힌다. 장애인이 부처이고 예수이고 인류다. 물론 봄을 찾아 나선 목포 여행도 여러 곳에서 참을 인(忍) 자를 새겨야 했다. 그러나 목포의 맛만은 엄지척이다.

▲ 유달산 노적봉 ⓒ목포시청

 

▲ 활짝 핀 매화꽃, 봄이 왔다. ⓒ전윤선

무장애 여행 정보

 

* 가는 길

KTX를 타고 목포역으로, 단 KTX에는 한 편당 전동휠체어 좌석 2개뿐이므로 감안해서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거리는 목포역 근처여서 도보(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다.

 

* 접근 가능한 식당

-보리밭사잇길로: 한식뷔페. 가성비가 뛰어나고, 매장이 널찍해 전동휠체어 네 대도 거뜬히 들어간다.(▲전화 061-242-0433, 전남 목포시 해안로 259번길 39)

-낭만포차 신안어촌: 목포9미의 하나인 홍어삼합을 즐길 수 있고, 각종 남도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전화 061-234-7056, 전남 목포시 해안로259번길 5-1)

 

* 접근 가능한 화장실

목포역과 근대역사문화거리 행정복지센터, 근대역사1관 아래에 장애인화장실이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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