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던 아픈 장애인 3시간 혼자 둬 사망…유기치사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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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던 아픈 장애인 3시간 혼자 둬 사망…유기치사 무죄
  • 이재상 기자
  • 승인 2023.01.25 09:31
  • 수정 2023-01-25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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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재판부 "사망 예측 어려워…
죽도록 내버려 둘 이유도 없어"

인천지법 형사13부(호성호 부장판사)는 유기치사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B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월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B 씨가 A 씨의 위험한 상태를 알고도 방치했거나 외출 후 귀가하면 A 씨가 사망할 수 있다고 예측하기는 어려웠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평소 피고인은 A 씨가 병원에 갈 때마다 동행했고, 외출할 때는 휴대전화 위치공유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A씨가 있는 장소를 확인하기도 했다.”며 “지속해서 A 씨와 연락하며 응급상황이 의심될 때는 119에 신고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소 B 씨는 지적장애가 있는데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A 씨에게 연민을 느끼고 곁에서 나름대로 성심껏 돌봤다.”며 “A 씨의 생명이 위중한 상태인 줄 알면서도 죽도록 내버려 둘 이유는 없어 보이고 그럴 동기도 찾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적장애인 A(2021년 사망 당시 25세·여) 씨는 같은 장애를 앓는 동생과 함께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2012년 부모처럼 따르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할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자매는 피해자 보호시설과 정신병원을 전전하다가 연락이 닿은 아버지와 한동안 같이 살았으나 2019년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왔다.

갈 데가 없던 A 씨 자매에게 손을 내민 건 B(26·여) 씨였다. 그도 자매와 같은 지적장애인이었고 자매 중 동생과는 고등학교 특수반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였다. 종종 자매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의 언니인 A 씨와도 친하게 지냈다.

B 씨는 자신의 친척 집에서 자매와 함께 지내다가 2021년부터는 인천 부평에서 오피스텔을 구해 A 씨와 둘만 함께 살게 됐다. A 씨 여동생은 B 씨와 다툰 뒤 집을 나갔다.

A 씨는 건강이 좋진 않았다. 2019년 5월부터 우울증과 불면증 약을 복용했고, B 씨와 둘이서만 산 뒤에도 갑자기 실신해 119구급차에 실려 간 적이 두 번이나 있었다. 의료진은 “24시간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상태”라며 “더 악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B 씨와 함께 병원에 다녀온 뒤에도 A 씨는 구토하며 실신하거나 많은 코피를 흘렸고, 입에 거품을 무는 날도 잦았다.

지난 2021년 5월 31일 오전 8시. 오피스텔에서 잠을 자던 A 씨가 또 입에 거품을 물었다. 심장은 뛰고 호흡은 했지만, B 씨가 팔을 잡고 들어 올려도 반응하지 않았다. B 씨는 약속이 있어 오전 11시 30분쯤 A 씨를 집에 혼자 둔 채 외출했고, 3시간 뒤에 돌아왔다. 계속 잠을 자는 줄 알았던 A 씨는 여전히 의식이 없었고, 이번에는 호흡도 하지 않았다. B씨는 급히 119에 신고해 A 씨를 병원으로 옮겼으나 1시간도 안 돼 숨졌다. 사인은 급성 약물중독이었다.

검찰은 지난해 2월 B 씨를 유기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A 씨와 장기간 함께 지내며 그의 좋지 않은 건강 상태를 분명하게 알았는데도 집에 혼자 방치하고 외출해 숨지게 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B 씨는 법정에서 “언니가 심각한 상태인 줄은 몰랐고 사망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과거 할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때부터 A 씨와 계속 연락한 경찰관은 “A 씨와 B 씨는 친자매처럼 서로 의지했다.”며 “B 씨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A 씨 자매를 안타까워했고 누구보다 먼저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함께 살던 오피스텔의 관리소장도 “둘은 평소 손을 잡고 꼭 붙어 다녔다.”고 기억했고, A 씨의 장애인활동지원사도 “둘이 싸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며 “A 씨가 정서적으로 깊게 B 씨에게 의지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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