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는 두 개의 언어를 구사하고 두 개의 문화를 잇는 존재”_장현정 코다코리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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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는 두 개의 언어를 구사하고 두 개의 문화를 잇는 존재”_장현정 코다코리아 활동가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3.01.09 11:30
  • 수정 2023-01-09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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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잇는 코다코리아’. 지난 11월 한 통의 보도자료가 편집국에 도착했다. 서울시 청년허브 청년의제별 네트워크 지원사업인 ‘N개의 연결’ 프로그램 중 하나로 코다코리아란 단체와 ‘아.파’ 네트워크가 함께 공론장을 연다는 내용이었다. 2022년 3월 영화 ‘코다’의 주인공 트로이 코처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타면서 잠깐 관심의 중심에 섰던 ‘코다’란 단어의 재등장이었다. 우리가 몰랐던 세계, 코다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만난 사람이 코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단체 코다코리아 활동가 장현정이다.

코다코리아 활동가 장현정을 만난 곳은 서울 불광역 인근에 있는 서울혁신파크 미래청에 자리한 청년허브의 한 작은 사무실이다. 청년허브는 서울시가 청년 주도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든다는 목표로 청년들을 지원하기 위해 운영하는 사업이다. 코다코리아는 이 사업 중 다양한 생각을 구현할 수 있는 공간 지원 사업인 ‘미닫이실험실’ 사업에 선정돼 작은 공간(정말 작다. 사람 네댓 명이 들어가 겨우 회의를 할 정도의 넓이다.)을 지원받고 있다. 아쉽지만 계약이 2022년 연말까지여서 새해에는 새 보금자리를 찾아야 한다.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부탁한다.

코다코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 장현정이다. 부모님 모두 농인이신 코다다. 주로 회계업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단체가 작다 보니 1인 다역을 한다. 사업 진행도 하고, 회계도 하고, 사무실 지킴이도 하고.

 

회계할 게 많나? 단체가 작아서 회계가 그리 복잡할 것 같진 않은데….

하하. 단체가 작다고 무시하지 마라. 올해만 해도 세 개의 외부 사업을 했다. 그 정산 작업이 만만치 않다.

 

외부 사업이라면 어떤 건지 소개해 줄 수 있나?

우선 서울시 청년허브 청년의제별 네트워크 지원사업인 ‘N개의 연결’이 있다. 농인단체인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 한국농대학생연합회, 수어민들레, 한국농아동교육연구소와 함께 ‘아,파’ 네트워크를 구성해 공론장 ‘모-두를 위한 교육: 수어로 교육받을 권리’를 11월 19일 이곳 청년허브에서 진행했다. ‘아,파’ 네트워크는 구성 단체를 보면 알겠지만 농교육의 변화를 꿈꾸는 농인과 청인, 코다의 연합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네트워크가 지속되고 더 많아졌으면 싶다.

두 번째 사업은 카카오 ‘같이가치’ 기브티콘 모금사업이다. 2021년 12월 13일부터 2022년 1월 12일까지 한 달간 카카오에서 수어를 표현한 이모티콘을 판매했다. 이 사업을 통해 조성된 기금으로 두 번의 대중강연, 코다코리아 홈페이지와 각종 홍보자료 제작, 어린이코다를 위한 교육을 위한 교안을 만드는 등 코다에 대한 인식개선사업을 했다.

세 번째 사업은 한국장애인재단 지원으로 개최한 ‘아시안 코다 콘퍼런스’다. 지난 9월 23일, 24일 이틀간 줌을 통한 웨비나로 열렸다. 일본, 인도, 필리핀 등 아시아 코다들이 비록 줌으로나마 한자리에 모여 경험을 나누는 최초의 자리였다. 내년에 열린 국제코다콘퍼런스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사전 행사였다.

세 사업 모두 사업 만료일이 11월 30일이었다. 그러니 정산 작업이 한꺼번에 몰려 나는 정신이 일도 없었다. 이제 좀 한숨 돌리던 참이다.

 

단체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은데, 의외로 사업을 많이 했다. ‘코다코리아’, 어떤 단체인가?

코다코리아는 한국 코다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코다들이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코다와 함께 농인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기 위해 모인 모임이다. 2014년부터 코다들의 자조모임 형태로 활동해 오다 2021년 11월 21일 비영리단체로 출범했다. 현재(2021년 12월 20일 기준) 정회원은 18명이고, 후원회원은 55명이다. 정회원은 코다만 될 수 있고, 농인이나 청인은 후원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순서가 좀 바뀐 것 같다. 코다는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영화 <코다>의 트로이 코처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으며 ‘코다’라는 존재가 대중에게 좀 더 알려지긴 했지만 아직도 ‘코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코다는 ‘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로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용어이긴 하다. 나도 스물네 살 때인 2016년 처음 알았다. 그때 대전에서 이길보라 감독(현 코다코리아 대표)의 <반짝이는 박수소리>의 상영회와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이길보라 대표를 처음 만났고, ‘코다’라는 말을 처음 알았다. 그때 기분은 새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 새해 제주에서 열리는 세계농아인대회(WFD)의 홍보대사로 위촉된 배우 트로이 코처(가운데), 코다코리아 이길보라 대표(왼쪽)와 함께. 홍보대사 위촉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트로이 코처를 한국농아인협회 소개로 만나 코다 활동과 코다국제콘퍼런스에 대해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코다’는 그냥 단어 아닌가. 단순히 용어를 하나 알았다고 해서 새 세상이 열렸다는 것은 다소 과장으로 들린다. 왜 그런가?

‘코다’는 그냥 농인의 자녀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의 정체성이다. ‘코다’라는 말을 알기 전에 나는 그냥 청각장애인 누구누구의 딸이었다. 그러나 이젠 코다 장현정이다. 그리고 코다는 곧 연대의 용어다. 청각장애인 누구의 딸일 때는 어려움이 개인적인 차원의 일이었지만 코다 장현정의 어려움은 모든 코다의 어려움으로 모일 수 있다. 함께 경험을 나누고 그 어려움을 헤쳐나갈 방안을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수 있는 ‘우리’가 생기는 것이다.

 

다른 유형의 장애를 가진 부모를 둔 비장애인 자녀도 있다. 그런데 유독 ‘코다’를 그들과 다르게 위치 지우는 이유는 뭔가?

우선 청각장애인과 농인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청각장애는 단순히 의학적인 정의다. 그러나 농인은 다르다. 농인은 수어를 언어로 하는 사람이다. 언어가 다르면 문화가 다르듯 수어를 제1언어로 하는 농인과 청인의 문화는 다르다. 그래서 농문화라는 것도 생겨났다.

코다는 그런 농인을 부모로 둔 자녀다. 그들은 농인의 세계와 청인의 세계를 모두 경험한다. 그리고 농인의 세계와 청인의 세계를 잇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간혹 그냥 농인 부모의 말을 청인들에게 수어로 통역하는 게 농인 자녀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통역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고 서로 다른 개념과 관습까지 전달하는 게 코다인 셈이다.

농인들이 귀가 안 들린다는 것을 결핍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코다 역시 그 자체로 존재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코다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알고 농인문화에 대한 이해도 깊어져서 자신이 코다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겠지만 어렸을 적에는 ‘싫었을’ 것 같다. 농인의 자녀로서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해 달라.

“나는 좀 특이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은 부모님이 모두 농인이시고 이모 두 분이 모두 농인이시다. 그러다 보니 사촌들도 모두 코다라서 수어가 어색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자연히 엄마 아빠가 농인이라는 게 부끄럽지 않았다.

물론 불편한 점은 있었다. 이건 모든 코다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불편인데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빠의 통역사 노릇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은행이든 병원이든 복덕방이든 엄마 아빠와 함께 가야 하다 보니, 그 나이에 몰라도 되는 가정형편도 어쩔 수 없이 알게 된다. 그래서 자연히 철이 일찍 든 것 같다.”

 

수어는 언제부터 했나.

수어를 교육기관에서 배운 적은 없다. 자라면서 부모님이 하시니까 자연적으로 습득하게 된 것 같다. 대여섯 살 적에 수어로 잠꼬대를 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 훨씬 전부터 수어를 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코다들이 나처럼 부모님으로부터 은연중에 수어를 배우다 보니 작게는 집집마다, 크게는 지방마다 표현이 살짝살짝 다르다.

 

코다코리아에 합류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했다고 들었다. 본가가 대전이라고 하던데… 선뜻 서울로 오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쉽지 않았다. 고민을 많이 했다. 부모님 두 분이 건강이 안 좋으셔서 계속 병원도 다니셔야 했다. 내가 없으면 부모님 병원은? 그런 생각을 하며 망설이는데 부모님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한번 해 보라고 하셨다.

대전에 있을 때 카드회사 고객센터 콜센터에서 (영상으로) 수어 상담하는 일을 했다. 돈에 관계된 일이다 보니 압박감도 크고 고객들의 컴플레인도 많았다. 그렇게 4년 정도 일을 하고 나니 더 이상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 이길보라 대표가 코다코리아란 단체를 만들 건데 함께 의미 있는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약간 미쳐 있었던 듯도 싶다.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과 한번 사는 인생인데 하는 생각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됐다.

물론 후회는 하지 않는다. 회사 다니면서 모았던 돈을 까먹고 있긴 하지만, 부모님에게도 딸 현정이가 자기주도적인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어 좋다. 부모님과는 매일 영상통화를 한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지 이제 6개월이 조금 넘었다. 비영리단체 활동가로서의 경력도 딱 그만큼일 듯싶다. 코다코리아 활동가가 되기 전과 후 자신이 어떻게 변했다고 보는가.

비영리단체의 활동가로 산다는 건, 사실 자신이 무언가를 계속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다. 당연히 책임감도 커지고, 내가 하는 일을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도 커졌다. 코다라는 자부심도 엄청 커졌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하고 싶은 일도 생겼다.

 

하고 싶은 일, 뭔가?

개인적으로는 아.파 네트워크처럼 서로 정체성이 다른 단체들이 함께 모여 고민을 나누고, 작은 일이라도 하나씩 이루어 나가는 일을 하고 싶다. 농인단체만으로, 코다단체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 농인-코다-청인이 힘을 합해야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이 자명한 사실을 현실로 만들고 싶다.

 

코다코리아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코다캠프 운영과 수어계승사전 편찬이다. 코다캠프는 성인코다들과 청소년코다가 함께하는 기회를 만들자는 취지다. 성인코다와 청소년코다들이 함께 캠프를 하면서 농인 부모님이나 청인 선생님들과는 나눌 수 없는 고민을 선배 농인들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면 좋을 것 같다. 서로 만날 기회가 없는 성인코다들에게도 코다캠프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공유해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수어계승사전은 앞에서 말한 대로 집안마다 다른 수어들을 모아 보자는 것이다. 구어에서 사투리사전을 만들 듯 수어도 계승어사전을 만들면 농인들의 문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나아가 농인에 대한 인식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은 새해에 코다코리아가 주관해서 개최할 코다국제콘퍼런스의 성공적인 개최가 가장 큰 과제다.

 

좋은 계획들이다.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지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코다 당사자로서 코다를 한마디로 정의하다면?

코다는 남들보다 많은 경험을 하는 사람이다. 두 개의 언어를 구사하고 두 개의 문화를 모두 경험한다. 농인과 청인의 중간에서 두 문화 모두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입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코다다. 그래서 혜택받은 사람이다. 난 코다여서 행복했던 적이 더 많았던 사람이다.

 

코다 장현정과의 인터뷰는 수다를 떨듯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그 모든 시간 내내 밝게 웃는 그녀에게서 뭇사람들이 흔히 갖는 ‘장애인 자녀의 어두운 그늘’은 없었다. 대신 ‘코다’여서 더욱 당당한, 자존감 높은 한 여성의 모습만 있었다. 그녀가 이루고 싶은 세상, 농인-코다-청인이 서로 돌보는 그런 세상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염원한다.

 

새해 세계의 코다들이 인천으로 모인다

코다국제콘퍼런스

 

2023년 6월 29일부터 7월 2일까지 대한민국 인천에서 코다국제콘퍼런스가 열린다. 전 세계에서 400여 명의 코다들이 몰려와 국경을 초월한 유대감을 쌓는다. 아시아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콘퍼런스를 유치해 낸 곳이 이제 설립된 지 막 1년이 지난 코다코리아다.

코다국제콘퍼런스는 청인 코다들이 설립한 비영리단체 코다인터내셔널이 매년 개최하는 행사다. 세계 각국의 코다들이 모여 서로의 정체성과 경험을 나누는 행사다.

2023년은 코다인터내셔널이 창립 40주년을 맞는 해여서 더욱 뜻깊은 행사다. 3박 4일 동안 열리는 2023국제코다콘퍼런스는 ‘컬러풀 코다(Colorful CODA; 다채로운 코다)’라는 테마 아래 기조연설과 폐막연설, 정체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소그룹 세션,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코다국제콘퍼런스는 참가회원들만의 조용하지만 시끌벅적한 행사라는 점이다. 행사 주최단체인 코다인터내셔널이 첫 행사부터 지금까지 참가자 외 비공개 원칙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전 세계 코다들이 모이는 축제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참가를 원하는 코다들은 코다코리아 홈페이지에서 사전신청 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문의도 언제든 환영이다(코다코리아 이메일 info@codakorea.com, 전화 010-2548-9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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