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적장애인 성폭행 무죄’라는 무책임한 법원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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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지적장애인 성폭행 무죄’라는 무책임한 법원 판결
  • 편집부
  • 승인 2022.12.01 11:19
  • 수정 2022-12-0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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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여성을 수 차례 간음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장애인 준강간죄를 적용할 수 있다’면서도 무죄를 확정,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해당 사건에서 ‘정신적 장애를 지닌 성폭력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더라도 가해자에게 장애인 준강간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기준까지 제시해 놓고도 피고인 남성이 ‘피해자의 항거불능 또는 곤란 상태를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무죄 선고했다.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사건마다 납득할 수 없는 법원 판결이 반복되는 현실에서 법리들의 장애 감수성 결여로 인한 지적장애인 피해자에 대한 몰이해가 장애인 대상 성범죄를 양산하지 않나 걱정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적장애 3급인 여성피해자(46)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해자(81, 범행 당시 78)는 사건 1년여 전 무료급식소에서 알게 된 피해자에게 용돈을 주거나 음식을 사주며 친분을 쌓은 뒤 2019년 2월 “우리 집에 가서 청소하자”며 유인해 다섯 차례에 걸쳐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자는 지능검사 결과 지능지수 57, 사회지수 14 진단을 받았고, 초등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 경험 없이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피해자는 지인에게 울면서 이야기할 정도로 원하지 않았음에도 ‘피고인으로부터 꾸지람을 들을까 봐 무섭다’는 이유로 피고인의 성행위 요구에 반항하지 못한 채 응했고, 심지어 경찰에 신고한 이후에도 피고인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다고 한다.

해당 사건과 관련, 2심과 대법원은 1심에서 성폭력처벌법 6조4항의 장애인 준강간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성관계 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며, “피해자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거나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에 대해 저항 또는 거부의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있었고, 가해자도 피해자가 이러한 상태에 있었음을 인식하고 있었음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봤다. 하지만 2심은 “피해자의 지능지수가 50 이상 70 이하인 사람으로 교육을 통한 사회적 재활이 가능한 지적장애 3급”이란 이유를 들어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지적장애로 인해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특히 “피고인이 용돈을 주는 등 호의적인 행위를 한 후 성관계 요구를 하는 데 대해 피해자가 거절을 하지 못했던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가 장애로 인해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었음을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인다.”고 한 대법원 판단은 법리의 권한을 넘어선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다. 가해자가 장애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할 경우 가해자 말만 믿고 무죄 판결을 내리는 한 법의 허점을 노리는 성범죄자의 처벌은 불가능하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가진 장애에 대한 이해는 물론, 가해자가 피해자의 취약점을 어떻게 이용했는지가 법적 해석의 핵심이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장애인에 대한 성폭행을 가중처벌하도록 한 취지를 외면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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