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칼럼]남의 이야기가 재미있으려면
상태바
[주간칼럼]남의 이야기가 재미있으려면
  • 편집부
  • 승인 2022.11.04 10:18
  • 수정 2022-11-04 10: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은지_함께걸음인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회복지사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는 당연하게도 나 아닌 남의 이야기가 그다지 재미가 없다. 내 가족, 내 친구, 하다못해 연예인 가십 이야기가 아니면 더더욱 재미없다. 원치 않는 남의 이야기는 불필요한 정보로 분류되어 시간낭비로 여겨질 뿐이다. 그렇다면 남의 이야기가 재미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화자의 매력과 청중을 휘어잡는 화술을 차치한다면, 중요한 요소는 이야기의 소재에 대한 ‘관심’이다. 평소에 관심 있던 이야기라면 어쩌다 행선지가 겹쳤을 뿐인 생면부지 낯선 이의 통화에도 귀가 쫑긋 선다. 핸드폰 화면을 슬롯머신처럼 팽팽 내리다가도 떠오른다는 주식 동향 소식에서는 기가 막히게 레버를 잡아챈다. 신기하게 관심이 있으면 눈에 번쩍 띄고, 귀에 쏙쏙 박힌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라는 것은 철저하게 가공된 남의 이야기다. 흥미로운 시놉시스와 배우의 낯으로 포장되어 관객을 꾀어낼 뿐, 근본적으로 나와는 거리가 먼 남의 이야기인 영화가 재미있을 수 있는 이유는 관객이 몰입하기 때문이다. 타자화가 숨 쉬듯 자연스러운 사회에 살다가도 캄캄한 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관객은 그 시간을 휴식과 여가로 인식하고 콘텐츠를 받아들이기 위해 몸을 이완시키며 정신을 집중시킨다. 경계를 낮춘 관객은 일시적인 공감과 유대를 허락하며 영화 속의 인물과 동기화된다. 실존하는 타인의 고통에 착잡하게 미간을 좁히는 대신 스크린에 굴절된 고통에 비로소 눈물 흘릴 수 있다.


 지난 3년간 인천시의 지원으로 ‘인천장애인인권영화제’가 개최된 것은 이런 바탕에서다. 장애인 인권의 중요성을 대놓고 부정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내 삶과 관련이 없다면 내 일처럼 관심 갖고 목소리를 내 줄 사람은 또 몇이나 있겠는가. 모든 시민이 변화의 선봉에 설 수는 없다. 한 발짝 물러나야만 들여다볼 용기가 생기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접근성이 탁월한 영화는 훌륭한 매개체가 된다. 나는 영화제의 기획에 참여하며 관객이 그저 ‘영화나 한 편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왔다가 조금은 무거워진 머리로, 타오르지는 않아도 적당히 뜨끈해진 가슴으로 귀가하기를 기대했다.


 나아가 영화에 몰입하며 동기화된 관객은 남의 이야기 안에서 자신을 비춘 거울을 찾아내기도 한다.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에서 장애인 당사자는 주인공에, 장애인 당사자의 가족은 주인공의 가족에 투영되는 지난 나를 떠올린다. 평소 장애인 인권에 별 관심이 없던 누군가는 냉담하게 주인공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특별히 지지하지도 혐오하지도 않는, 그저 무관심했던 나를 발견하곤 한다. 영화는 이렇듯 관객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가 남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비록 극장을 나서는 순간 바쁜 소음 속으로 흩어질 옅은 감상이라 할지라도 여운은 남는다. 거듭된 여운은 이윽고 가치관에 쌓인다. 목소리가 된다.


 사실 이미 우리는 장애인이 평등한 구성원으로서 사회참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마땅한 패러다임에 놓여있다. 거대한 변수가 없다면 사회가 장애인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방식은 더디든 빠르든 간에 계속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전진할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인천장애인인권영화제가 개최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그 흐름 안에서 영화제가 기름칠 자알 먹은 가속페달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1회 인천장애인인권영화제 <사람 36.5도>에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온도에 빗댄 장애인의 보편적 인권을 주제로 삼았다. 2회 <러브 미 라잇>에서는 장애인의 올바르게 사랑할 권리를, 3회 <노동치다>에서는 평등하게 노동할 권리를 다뤘다. 가족, 자립, 환경, 돌봄, 여행…. 앞으로도 다루고 싶은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영화제라고 영화 상영이 전부가 아닌 이 오묘한 행사는 관객과의 대화, 인권강연회, 작가인터뷰, 사연참견코너, UCC공모전, 캘리그라피 전시회, 장애인식개선캠페인 등 부대행사 구성도 매년 변모한다. 2회부터는 단편영화도 직접 제작해 출품하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와 실험적 형식에 도전하는 탓에 좀처럼 일에 속도가 붙지는 않지만, 아직은 남의 이야기일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과정은 분명히 즐겁다. 우리의 이야기가 언제고 모두의 이야기가 될 줄 알기에 설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