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시각장애인에게 휠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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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시각장애인에게 휠체어?
  • 편집부
  • 승인 2022.10.20 10:12
  • 수정 2022-10-20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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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 / 시각장애 칼럼니스트

보이지 않는 나의 이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과 염려의 대상이 되곤 한다. 어머니는 내게 있어서는 눈 감고도 다닐 수 있는 출퇴근길마저도 안전하게 완료되었다는 확인 연락을 받기를 원하시고 갑작스레 비라도 오는 날이면 새벽부터 차를 몰아 집 앞에 대기하고 계신다. 낯선 사람들과 가지게 되는 늦은 밤 모임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선한 지원자가 나타나기도 하고, 술이라도 먹은 날엔 무사 도착, 안전 귀가, 정상적 잠자리까지 보고받아야 안심하는 사람들로 하루 마무리의 시간이 길어진다.

30여 년간 지팡이 하나 들고 곳곳을 누비고 다닌 내 보행 실력은 나름 괜찮은 편에 속하지만 길을 지나는 어떤 이를 붙잡고 물어봐도 눈 멀쩡한 본인보다 나의 걸음걸이가 더욱 안정적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내 상태나 의견과는 아무런 관련 없이 도움을 강요하는 사람들을 나는 거의 매일 만난다.

도움이라는 것이 그 이름에 걸맞게 언제나 도움받는 이에게 이로운 작용을 일으킨다면 좋겠지만 의사 확인 절차 없이 이루어지는 그것은 나의 걸음을 목적지와 정반대로 돌려놓는 것 같은 부정적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주변 누군가가 아무런 예고 없이 나의 접시에 음식들을 마구 올려준다거나 영문 모를 부담스러운 선물을 받아 본 경험이 있다면 일방적 도움의 느낌이 무엇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겠다.

낯선 이국땅에서 처음으로 혼자 진행한 비행기 탑승 과정에서 난 또다시 강요된 도움을 받았다. 분명 그것이 내게 있어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은 맞으나 꼭 그런 식의 서비스여야만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사건임에도 분명했다.

난 분명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지만 팔이나 다리는 비장애의 범주에 속한다. 안내를 받으면 혼자 걸을 수 있고, 안정된 장소라면 오랜 시간 서서 기다릴 수도 있다. 공항이라고 하는 넓은 장소에서 수속을 하고 원하는 비행기를 시간에 맞춰 타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 있지만 그런 문제는 방향과 위치를 알려주는 도움만으로 해결된다.

그렇지만 내가 시각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렸을 때 항공사에서 제안한 방법은 휠체어 탑승이었다. 내가 고를 수 있는 편의 지원은 그것 하나밖에 없었지만, 현장에 가서 설명을 하면 안내 보행 등의 더 적합한 방법이 제공될 줄 알았다. 그렇지만 절충과 타협의 여지 같은 건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휠체어를 타고 집으로 오느냐? 아니면 내 다리는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비행기를 놓칠 것이냐? 단 두 가지 중 하나였다.

긴 대화를 나눴지만 내 주장이 매뉴얼의 규칙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내 다리가 건강하다는 것과 팔꿈치만 내어주면 함께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은 항공사 관계자들은 동의하는 부분이었지만 눈으로 확인한 현재 사실만으로는 규칙을 변화시켜 적용할 수는 없다고 했다. ‘안전을 위한 것이다’, ‘예측 못 할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다.’라는 등의 장황한 설명을 덧붙엿지만, 그것은 매뉴얼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즉석에서 만들어낸 핑계임이 분명했다.

다행히 비행기 내에서는 일반 시트에 앉아서 비행을 했지만, 인천공항에 내리는 순간 난 다시 휠체어에 태워졌다. 조금만 일어나려 해도 친절하게 “위험합니다.”라는 제지의 신호가 들렸고, 그 덕분에 마중 나온 가족들은 내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놀란 가슴을 어루만져야만 했다.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서 누군가 밀어주는 대로만 있다는 것은 사실 내겐 굉장히 안전하고 편한 경험이긴 했다. 그렇지만 내게 적합한 도움은 아니다. 밥을 떠먹여 주거나 업어서 이동시켜 주는 것은 누구에게나 편할 수 있지만, 모두에게 적절한 도움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항공사 홈페이지에 시각장애인 신청을 한 것은 어떻게 체크돼 있을까 확인했을 때 눈동자 표시에 빗금이 그어져 있었다. 내게 필요한 최소한의 도움의 아닌 절대적 안전을 택한 것은 시각장애라는 것을 다름이 아닌 눈의 상실로 보는 그들의 표기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었다.

언젠가 보호자가 없어서 비행기를 타지 못할 뻔했던 날에 비하면 오늘의 경험은 매우 진일보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나는 혼자서도 비행기를 탈 수 있었고 그것은 항공사의 따뜻한 고민으로 만들어진 매뉴얼로 인해서 가능했다. 너무나 감사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주셨으면 하는 부탁을 드린다.

시각장애 표시는 자립의 상징인 지팡이 같은 것이면 좋겠다. 내게 주어질 서비스는 휠체어가 아닌 안내 보행이면 족하다. 도움이 진정 그 목적에 맞게 작용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도움받는 이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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