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고 방방곡곡] 비 오는 고샅길, 조선을 거닐다_안동 하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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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타고 방방곡곡] 비 오는 고샅길, 조선을 거닐다_안동 하회마을
  • 편집부
  • 승인 2022.09.02 11:14
  • 수정 2023-03-1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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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거리 두기가 해제되면서 그동안 눌러왔던 여행에 대한 욕구가 봇물 터지듯 터지고 있다. 장애인생활신문은 이에 부응해 휠체어를 타고 지구촌 곳곳을 여행하며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무장애 여행 칼럼니스트 전윤선(sun67mm@hanmail.net)의 ‘휠체어 타고 방방곡곡’을 2022년 말까지 매달 1회 연재한다. 장애인이 느닷없이 떠나도 장벽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국내 여행지와 무장애 여행정보를 전윤선의 글과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평등하고 보편적인 무장애 여행이 특별한 것이 되지 않는 그 날을 기다리며._편집자 주
전윤선_
무장애여행 칼럼니스트

비를 몰고 안동으로 내려갔다. 휠체어 이용인은 비가 오면 기존에 잡았던 일정을 취소하고 비가 그치길 기다린다. 하지만 나는 약속된 일정을 강행하기로 했다. 일명 ‘우중투어’. 장애인은 비가 오면 활동을 멈춘다는 편견을 바꾸고 싶었다. 장애인도 비가 와도 여행도 하고, 학교도 가고, 회사에도 가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든 없든, 비가 오든 안 오든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내야 삶을 유지하기에….

 

비에 젖은 꽃의 고고한 자태에 매료 

하회장터에서 마을까지, 빗속을 걷다

 

비에 젖은 하회마을 풍경은 편안하면서도 우수에 젖은 모습이다. 담벼락에 핀 비 맞은 꽃은 화려함을 넘어 고고하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햇빛과 빗방울과 바람과 어둠이 꽃에게 양분이 되어준다. 가끔 지나가는 이들이 던진 한마디 “어쩜 이리 고울까?”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우쭐해진 꽃의 자태에 숭고해진다.

가뭄과 산불을 이겨내고, 장마와 태풍을 이겨내고, 땡볕과 자연이 주는 모진 시련을 이겨내야 비로소 실한 열매로 보답한다. 그래야 새로운 생명을 준비할 수 있으니까. 자연은 공짜를 허락하지 않는다. 넋 놓고 하회마을 보며 잠시 풍경 취해 본다. 그리고 가끔 새어 나오는 외마디 말, ‘아~!!!’. 감탄사만 연발하게 된다.

 

하회마을 입구. 비 내리는 하회마을은 우수에 젖은 모습으로 나그네를 맞는다.

하회마을인 줄 알고 내린 곳은 하회장터였다. 화장실이 급해 볼일 먼저 보고 나와 주변을 살펴보니 장터엔 식당과 카페, 기념품숍 등이 즐비하다. 우선 카페로! 비 오는 카페는 운치 있었다. 카페에서 따듯한 차 한 잔으로 한숨 돌리고 하회마을로 가기로 했다.

식당가에서 하회마을까지는 1킬로미터는 더 가야 한다. 오래전 하회마을에 갔던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한쪽의 기억만 남아 있다. 하회마을까지는 셔틀버스가 다니지만 휠체어 이용자는 탈 수 없는 계단 버스다.

천천히 비 오는 거리를 걷기로 했다. 숲이 우거진 거리는 한가롭고 낭만적이다. 차도 다니지 않으니 위험하지도 않다. 가다 보니 어느새 하회마을 입구다.

 

빗방울을 머금은 무궁화가 영롱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전통 마을

옛 모습 간직한 고택, 휠체어는 들어갈 수 없어

 

낙동강 상류인 화천이 굽이치며 마을을 감싸고 흐른다. 하회마을은 태극 모양과 연꽃이 물에 떠 있는 형상으로 예부터 명당의 조건인 배산임수(背山臨水)를 갖춘 곳이다. 조상들의 국토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하회마을은 고려 중기에 김해 허씨와 광주 안씨, 고려 말 풍산 류씨가 들어와 씨족마을을 이루었다. 이후 풍산 류씨를 중심으로 마을이 번성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최초로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간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 후로도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부자가 차례로 방문했다. 201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전통이 살아 있는 마을로 보존하고 있다.

하회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화산 아래 논에 어느새 벼가 익어가고 있다. 빗방울을 달고 있는 분홍색 무궁화꽃이 영롱하다. 마을엔 초가집과 기와집이 궁합 잘 맞는 새신랑 새신부 같이 어우러져 있다. 흙으로 쌓은 낮은 담장이 자꾸 눈길을 끈다.

비에 젖어 더욱 고즈넉해 보이는 고택.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해야 해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충효당 안 대청에 걸린 현판.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의 종택이다.(사진=통로이미지)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니 충효당에 이르렀다. 충효당은 문충공 서애 류성룡의 종택이다. 오래된 고택은 있는 그대로 보존되어야 하기 때문에 휠체어를 탄 여행객은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계단 위에 거대한 대문이 있어 “이리 오너라” 불러도 안에 있는 사람에겐 들릴 것 같지 않다. 지금도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라 함부로 문을 열고 들어갈 수는 없는 곳이다.

고택에 들어갈 수 없으니 골목길에서 사진을 찍으며 오래된 마을의 정취를 만끽한다. 그 옛날, 지체장애인들은 어찌 살았을까. 질병으로 장애발생률도 지금보다 높았을 텐데…. 휠체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외출할 때 여간 곤란하지 않았겠다 싶다. 그러니 전국을 유람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지 않았을까. 나들이를 하려면 가족들이 업어 달구지에 태워 가거나, 양반가 규수들은 가마에 태웠을지도 모른다.

과거로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몇 년 전 인도 여행 때 본 모습이 떠오른다. 인도의 장애인들은 업혀 다니거나 기어 다니거나, 심지어 굴러다녔다. 하지만 인도 사람들 아무도 그런 그들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주변에 늘상 장애인이 있기에 그냥 평범한 이웃이기 때문이다.

돌담과 흙담을 사이에 두고 난 고샅길. 조선의 어느 마을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조화를 이룬 마을

백일홍이 한창, 내 안의 꽃도 함께 피어

 

생각의 끝을 따라 걷다 보니 골목길 앞 배롱나무꽃이 담장을 넘었다. 배롱나무 아래 떨어진 꽃잎이 발길을 멈추라고 붙잡아 카메라 속에 시간을 박제했다. 비에 젖은 진분홍의 배롱나무 꽃잎은 지체 높은 양반집 규수 같다.

기와를 얹은 흙담 밑에 꽃이 피어 꽃담이 되었다.

마을은 기와집과 초가집이 조화롭게 모여 있다. 양오당과 화동고택 사이 골목은 토담과 돌담을 사이에 두고 있다. 담벼락 사잇길로 걸어가면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다. 토담 안 집은 볏짚으로 지붕을 이었고 돌담집 지붕은 검은 기와를 얹어 골목의 멋스러움을 더한다. 바닥엔 야자매트로 멍석을 깔아 미끄럽지 않게 했다.

골목길을 걸으며 대문 안을 기웃거려 보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는다. 조선시대 처자들은 바깥세상이 궁금하면 널이라도 뛰었지, 21세기 휠체어 여행객은 대문 안 집안이 아무리 궁금해도 들어갈 방법이 없다. 그저 인증샷만 남기고 돌아설 수밖에.

마을 길 담장 밑엔 봉선화도 백일홍도 곱게 피었다. 꽃구경만으로도 발길을 뗄 수가 없어 자꾸 사진 속으로 시간을 저장한다. 꽃이 아름다운 건 내 안에 꽃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꽃밭으로 가야만 내 안에 꽃을 발견한다. 여행도 내 안의 꽃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낯선 사람과 쉽게 말을 건네는 것도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다. 여행하는 동안 닫아두었던 마음의 빗장은 나도 모르게 풀려 뜻하지 않게 만들어진 소통의 시간도 여행에서의 특별함이다. 다 지나갈 줄 알았던 시간이 문득 그렇게 되짚어 올 때가 여행에서 만나는 익숙한 풍경 낯선 이야기가 다시 발길을 나서게 한다.

 

무장애 여행 정보

 

∙가는 길

안동역까지는 청량리에서 KTX이음을 이용한다. 하루에 7차례 운행하며 2시간 2분 소요된다. 전동휠체어석은 3호 차에 있다.

-안동역→하회마을: 안동 장애인콜택시(054-856-4422)

 

∙접근 가능한 식당

하회장터에 여러 음식점들이 있다. 하회마을 안에서는 식사를 할 수 없으므로 하회장터에서 해결해야 한다. 무더운 날씨라면 생수도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접근 가능한 화장실

하회장터 주차장 쪽

 

∙기타 문의: 하회마을 관리사무소(054-840-6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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