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고 방방곡곡]기차 타고 떠나는 레트로 여행 ‘서천 판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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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타고 방방곡곡]기차 타고 떠나는 레트로 여행 ‘서천 판교마을’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2.07.07 13:58
  • 수정 2023-03-17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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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거리 두기가 해제되면서 그동안 눌러왔던 여행에 대한 욕구가 봇물 터지듯 터지고 있다. ‘장애인생활신문’은 이에 부응해 휠체어를 타고 지구촌 곳곳을 여행하며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무장애 여행 칼럼니스트 전윤선(sun67mm@hanmail.net)의 ‘휠체어 타고 방방곡곡’을 2022년 말까지 매달 1회 연재한다. 장애인이 느닷없이 떠나도 장벽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국내 여행지와 무장애 여행정보를 전윤선의 글과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평등하고 보편적인 무장애 여행이 특별한 것이 되지 않는 그 날을 기다리며._편집자주

[연재순서]

∎7월 서천 판교
∎8월 포천 산정호수
∎9월 안동 하회마을
∎10월 제주 치유의 숲
∎11월 곡성 기차마을
∎12월 덕수궁 석조전

 

 

 

글ㆍ사진_전윤선_무장애여행 칼럼니스트

서천 판교마을은 레트로 여행의 성지다. 시간이 멈춘 듯 작고 조용한 마을에 사람들은 드문드문 오가고 시대극 드라마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기차가 서는 판교역에서 ‘시간이 멈춘 마을’ 판교 스탬프 지도를 들고 마을을 천천히 돌아본다. 워낙에 작은 마을이다 보니 몇 발짝만 가면 스탬프 장소를 금세 찾을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판교, 시간이 넘춘 마울' 안내도. 작은 마을에 볼거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휠체어 타고 만나는 7천 원 냉면의 위용

옛 감성 살아있는 판교역과 판교역전슈퍼

 

독립운동가 고석주 선생의 흉상
접근성 좋은 삼성식당의 냉면, 단돈 7천 원에 맛도 기가 막히다.

판교역에서 500미터쯤 가면 오성초등학교를 지나 첫 번째 스탬프를 찍을 고석주 선생 기념 공원이 나온다. 고석주 선생은 호남 최초의 만세운동인 군산 3·5만세운동의 주역이다. 옥고를 치른 뒤 판교마을에 정착해 농촌 계몽운동을 주도했다.

고석주 기념관을 지나면 음식특화거리가 나온다. 특별할 것 없는 작은 시골마을의 몇몇 음식점과 상점들이 마주하고 있다. 마침 배가 고파 접근성 좋은 식당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보니 40년 전통의 삼성식당이 보인다. 냉면전문점이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여행자도 접근할 수 있는 착한 식당이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 접근성 좋은 식당이 있다니 기분이 좋아졌다. 메뉴는 냉면과 만두뿐,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시켰다. 그런데 냉면 양이 2인분은 족히 넘을 정도다. 게다가 맛까지 끝내준다. 가격도 착하다. 2인분 양에 7천 원이라니!

배도 채웠으니 슬슬 레트로 여행을 시작해 볼까나. 식당 뒤 옛 판교역부터 둘러봤다. 옛 판교역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판교역은 일제강점기 때 식량 약탈과 징용, 징병, 위안부 수송을 위해 장항선을 개통하면서 운행됐다. 예부터 서산 팔읍의 한 곳이었던 서천의 역명이 판교역으로 된 것은 염판교리에서 열린 판교장 때문이다. 판교장은 보부상들이 진을 치고 물품을 거래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한때는 하루에 100두의 소가 거래되던 우시장으로도 이름 높았다. 해방 후에는 시골의 청년들이 꿈을 안고 도시로 향하는 길목이기도 했다.

 옛판교역. 1931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판교역은 2008년 장항성 직선화로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엣 판교역은 '판교특화음식촌'으로 사용되고 있다.

판교역은 1931년 11월에 보통 역으로 영업을 시작했지만 장항선 직선화 공사로 2008년 지금의 판교역으로 이전하고, 옛 판교역은 ‘판교특화음식촌’으로 사용하고 있다. 판교역은 옮겨졌지만 그 앞에 파란 슬레이트 지붕의 ‘판교역전슈퍼’는 그대로 있다. 한가로운 역전슈퍼는 나른한 오후 햇살에 졸고 있다. 역전슈퍼를 카메라에 담아 저장하고 다음 스탬프 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문 열어놔도 가져갈 사람 없는 시골마을

슬레이트 지붕이 인상적인 오방앗간

 

옛 정미소인 오방앗간으로 가는 길목에 ‘서울시계점’이란 간판이 남아 있는 집을 만났다. 휴대전화가 보급되고 시계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도시에서는 만나기 어려워진 시계점을 복고풍 여행지 판교마을에서 만났다. 빠르게 진화하는 문명만큼이나 사람의 감성도 과거의 추억으로 회귀하는가 보다. 매일 시계태엽을 감아주어야 했던 ‘불알시계’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시계점과 마주 보고 있는 택배점도 오래되긴 마찬가지다. 문을 활짝 열어 놓은 택배점은 시골가게에서만 느껴지는 풍경이 머물러 있다. 문을 열어놔도 그 안에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이웃과 경계는 없는 곳이다. 경계가 없는 곳은 사람과의 경계도 느긋하게 아름답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멀리 떨어져 사는 일가친척보다 가까이에 사는 이웃사촌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농촌 문화, 이웃과 경계 없는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서천 판교마을이다.

시계점과 택배점을 지나니 ‘오방앗간’이 반긴다. 스탬프 보관함이 없었더라면 하마터면 놓치고 갈 뻔했다. 오방앗간은 정미소로 활용되던 건물로 파란 양철지붕에 지붕 위쪽은 반 층 정도 더 올라가 있다. 벽은 얇은 나무를 세로로 덧대고 창살로 가려진 창문은 추억을 가둬 놨다. 방앗간 앞에는 ‘오혁철’이라는 문패가 걸려 있다. 인근에서는 가장 오래된 방앗간으로 명절엔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기도 했다고 한다.

서울시계점. 손목시계조차 귀해진 요즘 옛 정취가 물씬 남아 있는 시계점을 만났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택배 물건이 쌓여 있어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는 마을, 판교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 서린 장미사진관

판교 오일장엔 도인 같은 생선장수 할머니만

 

방앗간을 지나면 일본식 가옥인 장미사진관이다. 장미사진관은 2층 구조의 건물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살던 집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이곳 동면에는 남자 다섯 명, 여자 여섯 명의 일본인, 그러니까 열한 명의 일본인이 살았고, 이 열한 명이 동면 사람들 5,515명을 쥐락펴락 농토와 상권을 장악했다고 한다. 그들은 조선인에게 쌀을 빌려줄 때 반드시 ‘텐노하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라는 일본말을 시켰다고 한다. 나라 잃은 설움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 다시 생각해 봐도 통곡할 일이다. 해방 이후 우시장과 세모시장이 열릴 때 상인들의 숙소로 사용하다가 한참 뒤 장미사진관으로 용도가 바뀌어 사용됐다. 지금은 건물만 그대로 남아 당시의 아픔을 전해주고 있다.

장미사진관과 함께 있는 판교시장은 너무 작아서 시장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마침 오일장이 서는 날이라 그래도 사람들이 많을 거라 기대했지만, 아침 장은 파해서 한산했고 옷가게와 난전 몇 개가 오일장이 섰다는 걸 짐작하게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생선을 팔던 할머니는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볼 뿐 물건을 팔 마음도 없는 것처럼 좌판에 누워 있는 생선만 넋 놓고 바라본다. 할머니 표정에서 도인의 무심함이 묻어난다. 시장 뒤쪽엔 아기고양이 두 마리가 장난을 치며 놀고 있다.

일본식 가옥인 장미사진관이 길 초입에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살던 집으로, 나라 잃은 설움이 곳곳에 배어 있다. 
장미사진관 옆으로 판교시장이 있다. 오일장이 열린 날이지만 아침장은 파하고 인적이 없다. 알록달록한 옷들이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장에서 발을 구르고 손벽을 치며 "골라골라~" 하던 동석을 떠오르게 한다. 

 

고픈 배 달래주던 술 만들던 동일주조장

신성일·엄앵란이 튀어나올 듯한 판교극장

 

시장에서 몇 발짝만 옮기면 동일주조장이다. 동일주조장은 2000년도까지 술을 만들던 공장이다. 판교마을에 사람이 많았던 시절, 주막에 술을 공급하던 중요한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창문은 쇠창살로 막히고 유리창은 군데군데 깨져 있어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쌀이 귀했던 시절, 세수(稅收) 확보 차원에서 가정에서 술을 담그면 밀주로 단속하면서 주조장을 통해 밀가루로 막걸리를 제조해 판매했다. 그 후 ‘통일벼’가 보급되면서 쌀의 자급자족이 이루어지자 비로소 쌀막걸리가 보편화되었다. 박 씨네가 3대째 운영했던 동일주조장은 막걸리 재료인 쌀을 원활하게 수급하기 위해 쌀방앗간을 함께 하기도 했다. 동동주, 탁주, 농주, 왕대포는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곡주로 어려웠던 과거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애환과 삶을 담고 있는 술이다.

마을 가운뎃길을 지나 판교극장으로 발길을 이어갔다. 판교극장은 ‘공관’이라 불리며, 새마을운동 당시 근면자조협동이라는 기치로 건립된 건물이다. 인근 미산, 옥산, 흥산, 문산, 비인, 서면 등 주변 지역 사람들이 영화를 보거나 유명 가수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또는 노래자랑을 하기 위해 몰려들었던 핫플레이스였다. 극장엔 영화 포스터가 그대로 붙여져 있고 당시의 요금표도 남아 있다. 매표소의 요금은 일반 500원, 청소년 200원이다. ‘맨발의 靑春’, ‘꼬마신랑’, ‘돌아오지 않는 海兵’, ‘별들의 故鄕’,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미워도 다시 한번’, ‘똘이장군’…, 이런 영화들을 당장이라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판교마을이 레트로 여행지로 거듭나려면 손볼 곳이 많다. 아직은 카페도, 공방도 없다.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아 일견 쓸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여행지가 서천 판교마을이다. 낡고 오래된 건물도 사람이 살면서 가꾸면 잘 버텨준다고 한다. 동일주조장과 장미여관, 오방앗간, 판교극장도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당시의 정체성을 살려 새롭게 운영된다면 여행자들에겐 쉼터로, 동네 사람들에겐 사랑방으로 큰 역할을 할 것 같다.

벽화가 정겨운 판교 마을길. 인적이 드문 마을길은 고즈넉한 정취를 담고 있어 목적 없이 어슬렁대기에도 좋은 힐링 스폿이다.
몇십 년 전 영업 당시의 요금표와 옛 영화들의 포스터가 그대로 붙어 있는 판교극장.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금방이라도 '맨방의 청춘'의 신성일과 엄앵란이 '짠' 하고 등장할 것 같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유휴공간문화재생사업을 진행하면서 우편엽서를 만들기 위해 그린 판교마을의 건물들.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판교극장, 장미사진관, 동일주조장이다.

 

[무장애 여행정보]

⦁가는 길

용산역에서 서천역까지 하루 8회 무궁화호 열차가 운행한다.

-소요시간: 3시간

-좌석: 3호칸 전동휠체어 2좌석, 수동휠체어 3좌석

-요금: 6,900원(복지할인 50% 적용된 금액)

-판교역은 리프트가 없다, 서천역에서 내려 택시를 이용해 이동한다. 서천 장애인콜택시 즉시 콜택시 이용(☎ 041-951-0774, 오전 9시~오후 6시까지만 운행)

-서천판교역 ☎ 041-951-7788, 충남 서천군 판교면 저산리 308-5 저산길 8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식당: 삼성식당(☎ 041-951-5578)

⦁장애인주차장: 판교역, 판교오일장 주차장

⦁접근 가능한 화장실: 판교역, 판교전통시장. 판교행정복지센터

⦁기타 문의: 판교행정복지센터(☎ 041-951-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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