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어프리’ 키오스크, 조사대상 1002대 중 단 1대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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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어프리’ 키오스크, 조사대상 1002대 중 단 1대뿐
  • 이재상 기자
  • 승인 2022.06.24 09:28
  • 수정 2022-06-24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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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정보단말기(키오스크)와 모바일 응용 소프트웨어 등에 대해 장애인의 접근성 보장을 명시한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 개정안이 6개월 뒤인 2023년 1월 시행 예정이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6월 13일 ‘장애인 무인정보단말기 접근·이용 개선방안 토론회’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고 적절한 시행령 마련 방안을 논의했다. 

 

무인정보단말기, 장애유형 불문

접근과 이용 어려운 상황이지만

복지부 사업주들의 부담 이유로

장차법시행령 단계적 적용 추진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가격 대당

2,000만원 수준 민간사업자가

구입할 수 있도록 비용지원 필요”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 사무국장은 “무인정보단말기는 비대면 경제가 가속화되면서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사용자의 편의성을 위해 도입된 무인정보단말기가 장애인 등 정보 취약계층에게는 오히려 불편함을 가중시키고, 오히려 재화·용역에서 배제와 차별을 야기하고 있다.”며 무인정보단말기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다.

은행에서 처음 상용화된 무인정보단말기는 이후 식당, 카페, 마트, 영화관 등 다양한 곳에 보급돼 지난해 기준 민간분야에만 약 27만 대가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모니터링은 장추련 부설 ‘15771330 장애인차별상담전화 평지’ 45개 지역상담소별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을 중심으로 모니터링단을 구성, 전국 15개 광역 중심의 공공과 민간생활영역, 무인시스템 및 생활편의업체 등 총 26개 업종의 1,002개의 키오스크를 대상으로 약 한 달간 진행됐다.

모니터링 결과, 지역사회 내 1,002개 무인정보단말 중 화면에 수어가 제공되는 등 장애유형별 편의를 모두 갖추고 있는 기기는 인천세종병원에 있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단 한 대에 불과했다.

무인정보단말기는 장애유형을 불문하고 접근과 이용이 어려운 상황으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 너무 높아, 기기나 화면이 내려오는 기능이 필요하지만 조사 대상 96.9%에는 그런 기능이 탑재돼 있지 않았다.

또한 91.5%의 무인정보단말기에는 점자유도블록이나 음성신호가 없어, 시각장애인이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다. 62%의 무인정보단말기에는 별도의 사용 방법 안내가 없었고, 설명이 있는 경우에도 절반 정도가 글자로만 돼 있어, 발달장애인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전체 15%가 기기가 출입구에서 보이지 않는 매장 안쪽에 있었으며, 실제로 휠체어 사용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곳도 12.3%인 123개나 됐다. 접근 어려운 이유로는 장애물이 있거나 공간이 좁아 지나가기 어려움, 키오스 앞의 턱 등이었다. 또한 91.5%가 시각장애인이 키오스크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다.

52.8%가 휠체어가 접근할 여유공간이 없었으며, 기기의 높낮이나 화면의 높낮이가 조절되는 기기는 전체 3%밖에 되지 않았다. 조작이 필요한 부분들의 높이도 투입구와 발행구 등 기본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70% 이상이 손이 닿기 어려웠으며 전혀 손이 닿지 않는 기기도 127개나 됐다.

전체 87.7%가 터치스크린을 사용한 터치방식으로만 운영되고 있었지만, 시각장애인에게 제공되는 편의장치가 전혀 없는 기기도 46.8%, 648개나 됐다. 청각장애인에게 수어가 제공되는 기기는 인천세종병원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기기 하나만 유일했다.

키오스크 이용 시 사용자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이 바로 문제가 생겼을 때 연락방법인데, 모니터링 대상 키오스크 63.5%는 연락방법 자체가 없었다.

한편 지난해 6월 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5조 3항에 따르면 내년 1월 28일부터는 이 같은 키오스크를 설치·운영할 경우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복지부는 사업주들의 부담을 이유로 장차법 시행령에서 단계적 적용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는 올해 하반기에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할 예정이다.

김 국장은 “키오스크의 보급이 확대되고, 무인점포가 늘어가는 현재 상황에서 사업주의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이 강력한 법 규정으로 제시되지 않는다면, 사업주 스스로 장애인이 기기 접근성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단계적이 아닌 기본적인 접근성 의무 원칙이 반영된 시행령이 만들어져야” 함을 주장했다.

이어 “일반적 키오스크 가격은 200~500만 원인데 비해 배리어프리가 갖춰진 키오스크는 약 2,000만 원으로 가격 차이가 많이 난다. 민간사업자가 구입할 수 있도록 국가가 일정 정도 비용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행 법률 1300여개 중

‘단계적 적용’ 규정 법률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유일

공공영역 키오스크 접근성

개선 방식 ‘단계적 적용’

아닌 ‘시행일 유예’ 방식

민간영역 키오스크 접근성

규정도 시행시기 유예하는

방식으로 마련해야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우리나라 현행 법률 1300여 개 가운데 ‘단계적 적용’을 규정한 법률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사실상 유일하다.”면서 “제도의 정착을 위해 초기에 일시적으로 도입되는 ‘단계적 적용’이 법이 시행된 지 14년이 되도록 유지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차법 상 ‘단계적 적용’은 동 법이 제정되면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을 줄이고, 정당한 편의제공에 따른 급격한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고자 법 시행령 별표에서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하는 사업주, 시설, 기관 등의 적용범위와 시행시기를 단계적으로 규정하게 된 것.

2017년 장차법에 관광활동의 차별금지 조항이 신설됐으나, 이듬해 만들어진 시행령은 별표를 통해 장애인 편의 제공 의무를 지니는 관광사업자를 2025년과 2030년 두 번에 걸쳐 단계적으로 확대한다고 규정했다.

김 변호사는 “무인정보단말기에 대한 장애인 편의 제공 의무 역시 이런 선례를 따를 가능성이 크다.”며 “‘단계적 적용’은 복잡한 해석의 문제를 야기해 실무적으로 불필요한 혼란을 가중하기도 한다.”면서 “무엇보다 사회 전 영역에서의 장애인 차별을 폐지하자는 입법 취지에 맞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지난 2020년 11월 장애인 및 고령자가 무인민원발급기를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행정사무정보처리용 무인민원발급기(KIOSK) 표준규격’을 개정했다.

개정된 주요내용은 △선택규격이었던 화면 확대기능, 휠체어 사용자 조작 편의기능을 필수규격으로 강화한 것으로 필수규격이 종전 5종에서 7종으로 확대 △저시력자 및 시력이 감퇴한 고령자 등을 위해 화면 확대기능 추가 △무인민원발급기 높이를 1,220㎜ 이하로 낮춰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한 것 △음성인식 기능을 선택규격으로 추가해 터치스크린 화면의 버튼을 조작하지 않고 음성으로 민원서류를 신청할 수 있게 한 것 등이다.

이 공공영역 키오스크 접근성 개선 방식은 ‘단계적 적용’이 아닌, ‘시행일 유예’ 방식이다. 동 표준규격 개정안은 개정으로부터 약 8개월의 여유를 두고 2021년 7월부터 시행됐다.

김 변호사는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에서 사용되는 키오스크 제조상황이나 응용 소프트웨어가 크게 다르지 않은 점, 공공영역과 비슷한 수준의 법 적용 방식을 설계할 필요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민간영역의 키오스크 접근성 규정도 법령 또는 표준규격의 시행시기를 유예하는 방식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물리적 환경 따른

어려움 겪는 사람들에게

키오스크 사용법 교육하고

물리적 환경개선 위해

정부가 적극적 개입해야

 

∎임경미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이사는 “코로나19 이후 제가 사는 충북에도 무인점포가 많아지며 무인정보단말기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번 조사를 나가 보니 무인정보단말기는 애초에 장애인의 접근 자체가 막힌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예전에는 손을 흔들어 주인에게 물건을 달라고라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람이 없다 보니 그마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무인정보단말기를 가장 많이 접했던 곳은 은행으로, 초창기 은행에 있는 무인정보단말기 역시 장애인 대한 접근성이 없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높이와 휠체어 발판과 기기가 닿아서 사용이 안 되었으며 시각장애인은 점자 및 음성지원이 되지 않아 사용하지 못했었다. 이후 차별 진정을 통해 은행의 무인정보단말기는 장애인이 접근이 가능하게 바뀌었다.

임경미 이사는 “접근성이란 제품과 서비스를 모든 사용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정의되어 있듯이 이제는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문자를 익히지 못했다는 이유로, 디지털 문해능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배제돼서는 안 될 것”임을 주장했다.

그는 “정부는 예산 부족이라는 이유로 더 이상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스마트폰이 출시되고 어르신들이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스마트폰 사용법 교육을 통해 스마트폰 문제를 해결했듯이 시대적 흐름에 따른 사회적 환경과 물리적 환경이 변화할 수밖에 없다면 그에 따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키오스크 사용법을 위한 교육과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사회적 물리적 환경변화가 개인의 문제가 되어서는 절대적으로 안 되며, 이는 정부의 의지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문제”임을 밝혔다.

이어 “현대사회에서 빠르게 변화되고 그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편리성을 위해 키오스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 접근성이 이뤄지지 않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고 사회와 물리적인 것에 의한 것이라면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기에 지속적으로 차별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임을 피력했다.

이재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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