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당사자가 만든 장편영화가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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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당사자가 만든 장편영화가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 정은경 기자
  • 승인 2022.06.09 13:39
  • 수정 2022.06.09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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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영화감독 김종민

 

영화감독 김종민은 장애영화계에서는 나름 ‘스타’다. 2019년 토론토스마트폰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받았던 ‘하고 싶은 말’을 비롯해 ‘다리 놓기’ ‘용기’ ‘중고거래’ 등등, 그의 작품들은 장애인 당사자의 이야기를 담아 세상에 알린 걸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는 장애인이다. 세 살 때 뇌병변을 앓아 심하진 않지만 왼쪽이 마비된 상태다. 그러나 언뜻 보면 그는 비장애인 같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경계인’이라고도 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경계인’에서 시작된다.

 

경계인, 어떤 의미인가?

처음 만나는 사람 중에는 내 장애를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장애인인 듯 아닌 듯한 게 현실의 나다. 그렇다고 외관만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사실 스스로도 스무 살 전까지는 장애인이란 인식이 없었다. 스무 살 이후 ‘장애’라는 문제를 인식했고, 이후 장애인인권운동을 하면서부터 장애인들과 오랜 시간 생활을 같이했다. 그러면서 장애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내 사고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내 영화현장에서는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일을 한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하니 당연히 오해도 있을 수 있다. 장애인 스태프들은 장애인 스태프들대로, 비장애인 스태프들은 또 그들대로 고충을 내게 이야기한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오해를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사회에서 만나는 비장애인들 중에는 ‘역차별’을 호소하기도 한다. 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의 입장이 백 퍼센트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다 듣고 난 다음에 그들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대표적인 예로 기업 등에서의 장애인 티오가 왜 역차별이나 혜택이 아닌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렇게 나는 영화 현장은 물론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로 이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말하는 경계인은 회색인이 아니라 다리다.

 

그럼에도 김종민 감독은 ‘장애인 당사자 영화감독’이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모두 장애인 비전문 배우가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촬영 현장. 그의 촬영 현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고 있다.

 

장애인 이야기만을 다루는 이유가 따로 있나?

물론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비장애인 감독보다는 장애인들의 이야기에 더 크게 공감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처음 기획부터 ‘장애인 이야기를 다뤄야지.’ 하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아니다. 난 장애인보다는 사랑, 성장, 소통에 방점을 두고 있다. 첫 영화인 ‘다리 놓기’의 경우 청각장애인 여성과 시각장애인 남성 사이에 벌어지는 오해와 갈등, 화해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랑과 이해로 승화된다. 장애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니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 속에서 모티프가 찾아지고, 자연스럽게 체화된 생활이 영화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2010년 ‘다리 놓기’ 이후 김종민 감독이 제작한 영화는 총 10편이다. 모두 단편이다. 프로듀싱한 영화도 두 편 있다. 하나는 배우 이유영이 출연한 단편영화 ‘고란살’이고, 다른 하나는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국제영화제 등에서 초청돼 호평을 받은 장편영화 ‘블랙스톤’이다. '블랙스톤'은 환경을 다룬 영화다. 장애와 환경, 어떻게 보면 뜨거운 감자 같은 진지한 주제들이다. 하지만 그는 진지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1979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마흔넷, 하지만 ‘장난기’ 가득한 맑은 눈빛과 천진한 웃음이 나이보다 젊어 보이게 한다. 하지만 영화로 화제를 돌리면 그는 자못 진지해진다.

 

토론토국제스마트폰영화제 개막식에서, 김종민 감독의 ‘하고 싶은 말’이 개막작으로 초청되어 화제가 됐다.

 

최근 ‘복지식당’이 개봉했고, 그전에도 ‘오아시스’ ‘말아톤’ ‘나의 특별한 형제’ 등 장애인을 그린 영화가 많이 있었다.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느꼈던 아쉬움은 없나?

이창동, 정윤철 같은 대감독들의 영화에 대해 내가 감히 무슨 말을 하겠나. 언급된 영화 모두 장애인식 개선에 큰 기여를 한 영화들이다. 그중에 특히 내게 충격을 주었던 영화는 ‘오아시스’였다. ‘오아시스’가 개봉하던 해에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 나이가 되기까지 장애인들의 사랑, 성 이런 것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보고는 머리에 총을 맞은 듯했다. 스스로도 장애인이면서 장애인에게도 사랑이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욕구라는 걸 생각하지도 못했다니…. 아무튼 대단한 작품들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도 굳이 아쉬운 점을 말한다면 장애인 당사자가 만든 영화가 없다는 거다. 특히 장편영화가 없다. 장애인 당사자가 만든 장편영화가 나와줬으면 좋겠다. 장편영화라야 언론도 주목하고 대중들도 많이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장애에 대한 인식도 더 많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본인이 만들면 되지 않나.

물론 만들고 싶다. ‘오징어 게임’을 10년 준비했다고 하는데, 나 역시 10년째 장편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10년 전에 시나리오 두 편을 완성해 놓았는데, 제작사를 만날 수 없어 여태 내 책상 속에 있다.

 

그의 책상 서랍 속에 잠자고 있는 두 편의 장편 시나리오는 어느 날 갑자기 장애인이 된 청년의 절망, 사랑, 성장을 그린(이렇게 써놓고 보니 대단히 밋밋하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여기까지만 쓴다) ‘위드미’와 라이따이한 여성과 한국 장애인 남성이 양궁을 매개로 만나서 사랑을 이어가는 이야기인 ‘퍼펙트 골드’다. 이 시나리오들을 들고 많은 영화사 문을 두드렸다.

 

단편영화계에서는 나름 유명세도 있는데, 시나리오가 팔리지 않는 이유는 뭔가.

기회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위드미’의 경우, 많은 프로듀서들이 관심을 가졌지만 ‘장애인’ 이야기를 ‘장애인’ 감독이 ‘장애인’ 배우를 써서 찍는다고 하니 모두 망설였다.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다. ‘퍼펙트 골드’는 ‘위드미’보다는 대중적이었는지 제작사가 나섰고, 회사와 함께 각색까지 마쳤는데, 코로나가 덮쳤다. 큰 제작사도 아니었으니 당연히 엎어졌다.

 

절치부심하고 있는 김종민 감독에게 최근 좋은 제안이 들어왔다. 부천국제영화제의 지원사업에 지원해 보라는 유명 프로듀서의 제안이다. 판타지나 장르영화에 특화되어 있는 부천국제영화제지만 주제성이 강한 영화, 아시아영화에도 많은 지원을 하는 터라 김 감독의 영화라면 선정될 수도 있을 거라는 권유였다. 열심히 준비해 공모에 참여했고 지금은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세 편만 꼽는다면?

왕가위의 ‘화양연화’, 이창동의 ‘밀양’ 그리고 김용화의 ‘국가대표’다.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 앞서 꼽은 두 영화와는 약간 분위기가 다르다.

나도 스포츠인이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해서 내 영화 속에도 스포츠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그런 면에서 국가대표는 스포츠인의 열정, 스포츠 정신이 잘 표현된 영화다.

전국 체전에서 경기를 하고 있는 김종민 선수

김종민의 두 번째 직업은 육상선수다. 처음 시작은 수영이었다. 인천장애인체육회 직원이었던 친구의 권유로 시작했다. 그런데 수영에서는 성과를 거두기가 어려웠다.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성과가 나지 않으니 흥미도 반감됐다. 그때 친구가 육상을 권했다. 수영보다는 성과 내기가 쉬운 종목이라고. 그렇게 시작한 것이 투척 3종(원반던지기, 창던지기, 포환던지기)이다. 인천 장애인 대표선수로 전국 체전에 참가한 횟수만도 열네 번 정도 되는 듯하다.

 

체전 열네 번이면 메달도 꽤 많겠다. 그간에 거둔 성적은 어떤가?

은메달, 동메달 합해 30개는 되는 거 같다. 처음 7, 8년은 동메달밖에 못 땄다. 그러다 첫 은메달을 딴 게 충북대회(2017년)였다. 계속 동메달만 따다 보니 은메달에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그전까지는 감히 도전할 생각도 못 했다. 금·은메달을 따던 선수들은 기업 운동부에서 돈을 받고 운동을 하는 직업 선수였지만 나는 아마추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은메달과의 기록 격차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만하면 겨뤄볼 만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2017년 대회를 준비하면서는 자비로 헬스장을 다니면서 어깨 근육을 키우고 종목도 3종이 아닌 2종으로 줄였다. 덕분인지 창던지기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체전 참가 8년 만의 일이었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와 혼자 치킨 시켜 놓고 파티했다.

 

올해 10월 열릴 제42회 전국장애인체전에도 육상 투척 종목 인천 대표선수로 참가한다. 목표는?

창던지기 금메달이다. 그러기 위해서 요즘 평일에는 매일 한두 시간씩 문학경기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인천장애인체육회에서 투척을 전공한 코치를 배정해 주어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 있다. 그리고 운동선수로서 직장도 생겼다. 올초 인천의료원 총무팀(장애인체육단) 소속으로 취업을 했다. 돈을 받고 운동을 하게 되었으니 더 좋은 성과를 내야 하지 않는가.

 

운동에도 영화 못지않은 열정을 갖고 있는 그에게 우문을 던졌다.

 

영화감독과 육상선수, 둘 중 하나만 할 수 있다면 어떤 걸 택하겠는가?

지금 이 시점에? 스무 살이 아니라… 그럼 전제가 있다. 영화를 해도 돈을 주나? 영화로 밥벌이를 할 수 있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영화를 하고 싶다.

 

운동으로도 생계유지는 안 된다. 일주일에 20시간 일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장애인식 개선 강사 일도 하고 책도 쓴다. 김종민은 얼마 전 다른 장애인 예술가 등과 함께 ‘비욘드 핸디캡’(공저)이란 책을 냈다. 이에 앞서서 이미 두 권의 소설책(모두 공저)도 냈다.

 

운동 하랴, 강연 다니랴, 책 쓰랴, 언제 영화를 하나 싶다. 어떻게 시간을 쪼개 쓰나?

영화는 어차피 돈 버는 일이 아니다. 혼자 열심히 하는 일이다. 그러니 다른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은 모두 영화를 위한 시간이라고 보면 된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보자. ‘김종민에게 영화란 ○○이다’라는 명제를 완성한다면?

‘김종민에게 영화는… 애증이다’ 정도가 될 것 같다. 너무 사랑하는데, 그럼에도 너무 힘든 것. 그래서 끝끝내 버텨내야 하는 삶. 그것이 내게 영화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장애인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조금이라도 앞서 걸어온 사람으로서 “멘탈이 강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오래 힘들어도 슬퍼하지 않으면 좋겠다. 영화를 하는 내내 힘들 거니까. 그러니 멘탈을 강하게 단련시켰으면 좋겠다.

 

초여름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 만났는데,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헤어지기 전 김종민 감독에게 가볍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연애, 부천국제영화제 공모 당선, 단독 단행본 출간.

 

심플하지만 현실적이고 절실한 답이 돌아왔다. 그의 모든 발걸음에 응원을 보탠다.

 

김종민이 추천하는 김종민 영화 베스트3

하고 싶은 말

러닝타임: 6분

출연: 최우준, 이수하

감독의 한마디: “6명의 장애인 만든 6분짜리 단편영화”

뇌병변장애1급 장애인 우준은 오늘도 전철에서 그녀를 본다. 우준은 카페에서 일하는 그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오늘도 긴장하고, 연습한다. 그녀가 일하는 카페에 찾아간 우준은 드디어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중고거래

러닝타임: 26분

출연: 이정례, 강민영

감독의 한마디: “우연한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 힐링을 준다!”

갱년기가 찾아온 장애인 여성 신애와 면접에서 물먹고 애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20대 비장애인 여성이 중고거래를 위해 만나 벌어지는 신경전. 그리고…

 

듣고 싶은 말

러닝타임: 9분

출연: 윤현정, 임태욱, 이동화

감독의 한마디: “나도 모르게 건네진 작은 위로의 말!”

코로나로 인해 카페 운영이 힘들어진 부부는 평소에 자주 오던 중증장애인에게 의외의 말을 듣는다. 그 손님이 나가고 나중에야 그 말은 바로 힘든 자신이 너무도 듣고 싶은 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오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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