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애극복을 넘어 장애를 수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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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애극복을 넘어 장애를 수용했다
  • 편집부
  • 승인 2022.04.21 10:03
  • 수정 2022-04-21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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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행 뇌병변장애인 작가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고?” 2020년에『마음 장애인은 아닙니다』출간 후, 독자 중 일부 사람이 이런 말을 적어 놓은 걸 보았다. 이 사람들은 내 책에 나오는 ‘극복’이라는 단어를 잘못 해석한 거라 본다. 책을 수박 겉 핥기로 목차만 읽은 것이다. ‘극복’이라는 말을 마치 극복을 하면 장애인이 비장애인으로 되는 줄 알았나 보다. 결코 그런 의미로 그 단어를 적은 것은 아니다.

한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장애도 감기처럼 며칠 지나면 나으면 얼마나 좋을까?” 감기는 며칠 지나면 증산이 없어지면서 말끔해진다. 장애도 마찬가지로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장애는 감기처럼 유행병이 아니다. 평생 함께 가면서 극복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극복’이라는 단어를 쓴 것인데 목차에 극복이라는 단어가 나오니 오해를 한 것 같다.

장애가 감기처럼 생각한 적이 있다는 말에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 지인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지하철에 가면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이 함께 있다. 지금은 휠체어 장애인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만 엘리베이터 이용을 못 할 때에 에스컬레이터와 함께 있는 계단에 있는 리프트를 이용했다. 한번은 지인이 리프트를 이용해 내려가고 있었다. 바로 계단에서는 어린아이와 엄마가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엄마! 왜 저 아저씨는 저걸 타고 내려가는 거야?” 이 말을 들은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저 아저씨는 아파서 저거 타고 내려가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지인은 내려가 그 엄마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기 어머님! 아이에게 정확히 말해 주어야죠. 저는 아파서 저걸 탄 게 아닙니다. 불편해서 타고 내려온 겁니다. 아픈 것과 불편한 것은 구분해서 설명해 드려야죠.” 아픈 것과 불편한 것도 구분 못 하는 어른들이 많다. 장애도 며칠 지나면 증상 없이 말끔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태어날 때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부모님은 첫 아이인 나의 장애를 고치려고 유명하다는 병원은 다 다니셨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매번 똑같았다. “재활운동밖에 방법은 없습니다.” 아들의 장애를 고쳐보기 위해 온갖 병원을 다닌 부모님은 망연자실하셨을 것이다. 보통 아이들이 걸을 나이에도 못 걷는 아들을 걷게 해 보겠다고 아버지는 걷기연습을 함께 하였다. 아버지의 헌신이 걷게 만들었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다. 아버지의 ‘할 수 있어! 걸을 수 있어!’ 하는 격려가 걷게 만들었다. 장애를 고쳐보려고 했지만 아마도 부모님은 장애는 평생 함께 가야 함을 당시에 깨달았나 보다.

내가 말한 극복은 비장애인으로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매일 도전함으로 몸의 장애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잊고 산다는 의미에서 극복을 말한다. 발음연습, 운동, 글쓰기를 함으로 장애는 아무것도 아님을 매일 느끼며 살고 있다.

나는 장애를 극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젠 장애와 더불어 극복하면서 장애를 수용하는 삶을 살고 있다. 평생 장애와 함께 가야 하기에 부딪히며 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일어나 나간다. 오늘도 장애와 함께 도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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