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애인 비하’가 ‘표현의 자유’란 사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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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장애인 비하’가 ‘표현의 자유’란 사법부
  • 편집부
  • 승인 2022.04.21 09:47
  • 수정 2022-12-0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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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비하 표현을 사용했다며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장애인들이 제기한 차별구제 청구소송이 법원에서 원고패소로 판결 났다. 법원은 ‘외눈박이’, ‘정신분열’ 같은 말은 장애인을 낮춰 부르고 혐오를 부를 수 있는 표현이 맞다며, 무의식적인 언어 습관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강화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국회의원의 발언은 그 영향이 크다고 꾸짖으면서도 정치인들에게 손해배상을 물어야 할 정도의 책임은 없다고 판단했다. 소송 1년만인 장애인의날을 5일 앞두고 나온 이번 판결 결과에 장애계가 자괴감과 좌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인들의 발언이 매우 부적절하지만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의견 표명이 보장돼야 한다’는 사법부의 논리는 상식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괴변으로밖에 볼 수 없다.

앞서 장애인 당사자들은 지난해 장애인의날을 맞아 ‘집단적 조현병(허은아 국민의힘)’, ‘외눈박이(곽상도 전 국민의힘)’, ‘정신분열적(조태용 국민의힘, 윤희숙 전 국민의힘)’, ‘꿀 먹은 벙어리(김은혜 국민의힘)’, ‘절름발이(이광재 더불어민주당)’ 등의 혐오 발언을 한 전·현직 국회의원들과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박병석 국회의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정신분열’ 표현에 대해 정신분열병 명칭에 부정적 의미가 매우 심각해 조현병으로 공식 개정된 점, ‘외눈박이’, ‘절름발이’, ‘벙어리’ 표현에 대해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점, ‘집단적 조현병’ 표현에 대해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장애 용어를 쓰는 건 장애를 명백하게 혐오하는 마음으로 사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그러나, 사법부는 이들의 발언이 장애인들에게 수치심과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명예훼손과 모욕에 대한 과도한 책임 추궁이 ‘정치적 의견 표명’을 막는 수단이 돼선 안 된다며, ‘장애인의 인격권 보호’ 의무를 저버렸다. 명예훼손과 모욕감을 주는 ‘장애인 비하’가 ‘표현의 자유’이자 ‘정치적 의견 표명’이라는 사법부의 인식 수준에 깊은 우려와 함께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형법에서조차 엄연히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처벌 조항으로 규정하고 있는데도 사법부는 이를 무시함으로써 스스로 권위를 내팽개쳤다. 소송에 임하는 정치인들의 불성실한 태도도 논란거리다. 이들 국회의원들은 소송 과정에서 제대로 된 사과는커녕 한 번도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고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아 재판부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해당 6명의 정치인들은 재판 과정에서 대리인과 답변서를 통해 ‘장애인을 비하할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조태용·김은혜 의원은 ‘정신분열적’, ‘꿀 먹은 벙어리’라는 표현이 언론과 시중에서 ‘일반적으로 관용구처럼 사용되는 표현’이라고 우기기까지 했다. 허은아 의원은 ‘집단적 조현병’이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나온 표현이므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범위 내에 있다’는 뻔뻔함까지 보였다. 국회의원들의 인권에 대한 의식 수준이 이 정도이니 국내 정치 수준이 나아질 리가 있겠는가. 사법부는 “피고들은 국회의원 지위에 있던 자들로 인권 존중의 가치를 세우고 실천하는 데 앞장서 모범을 보여야 할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스스로의 지적에서 이번 판결의 문제점을 되짚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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