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에 혁명적 전환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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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에 혁명적 전환이 필요할까?
  • 편집부
  • 승인 2022.03.11 10:02
  • 수정 2022-03-11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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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현/샘교육복지연구소 소장, 『래디컬 헬프』공동번역자

2020년 내내 코로나19로 피폐한 생활 속에서 나를 『래디컬 헬프Radical Help』라는 책을 만났다. radical은 ‘급진적, 근본적’이란 뜻이고, help는 ‘도움, 원조’란 뜻이니 책 제목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면 ‘근본을 바꾸는 원조방식’. ‘뿌리부터 다른 새로운 사회 서비스’라는 뜻이다. 무엇이 문제이길래 개선도 혁신도 아니고 완전히 달라진 사회복지 서비스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일까?

저자는 힐러리 코텀(Hilary Cottam)이란 영국 여성이다. 자신을 사회활동가 또는 사회설계자라고 소개한다. 그녀는 영국과 세계 여러 곳에서 빈민의 삶을 개선하는 일을 하다가 기존의 방식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 영국의 복지제도는 1900년 무렵 다양한 제도적 개선의 흐름 속에서 1942년 베버리지가 제안한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라는 보고서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보편적 보건, 경제, 사회적 복지제도는 이웃 나라들로 복제되어 퍼져나갔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7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새로운 혁명이 필요한 시기에 와 있다. 저자에 의하면 베버리지식 복지제도는 이미 그 수명을 다했고 현대의 문제들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정해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고령화와 노인인구의 증가, 만성질환, 긱 이코노미, 빈곤의 재생산과 빈부격차의 양극화, 난민, 기후위기 등의 문제들은 베버리지 시대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한편, 복지현장을 보면 서비스 전문화의 이면에 파편화되고 분절화되고 경제적 효율성이 강조되면서 복지서비스는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사회를 공동체로 만들기보다는 결핍과 위기를 측정하여 잠재우는 쪽으로 더 기능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엘라’네 경우이다. 엘라와 네 자녀의 어려움들을 해소하기 위해 70여 개의 기관에서 스물아홉 명의 담당자들이 수시로 엘라와 가족에게 전화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우편물을 보내고 현관문을 두드린다. 서비스는 종류도 많고 담당자도 많고 예산도 해마다 늘어나지만 취약한 사람들의 삶은 점점 활기를 잃고 얼어붙어 가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삶이 지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의 삶에서 사회복지 서비스와 담당자들이 차라리 나가주었으면 좋겠다고 외친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먼저 저자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점, 복지국가와 만족한 삶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요구한다. 저자가 연구팀과 함께 10여 년 동안 당사자들을 찾아다니고 그들과 어울려 살면서 실험한 결과로 제안하는 ‘래디컬 헬프’의 이상은 6가지 원리의 키워드들로 요약된다. 그것은 비전, 역량, 관계, 다양성, 가능성, 개방성이다. 사람은 누구나 보람 있는 삶을 누리며 공동체와 지역사회에 기여하면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의 다양한 관계를 통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하고 나누며 기여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도 발전하고 서로서로 연결되고 감사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사회복지의 프레임을 바꿀 때이다. ‘당신은 무엇이 부족한가요? 무엇이 필요하세요? 지자체가, 복지관이, 전문가가 도와드릴게요.’가 아니라, ‘당신에게 의미 있는 삶은 어떤 것인가요? 그러기 위해 무얼 하고 싶으세요? 여기서 함께 모여 시도해보아요.’가 되어야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 코로나19가 창궐한 감염병의 시대에 우리가 열어갈 복지사회는 시민들 각자가 사회에 참여할 장이 더 많아지고 자신의 능력을 드러낼 모임들이 다양해지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서 서로 능력과 도움을 주고받음으로써 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권리를 실제로 누리고 확대하는 민주사회여야 한다. 그것이 근본부터 새로운 래디컬 헬프의 내용이다. 이 책은 이러한 대 전환의 흐름에 함께 하자는 ‘초대’로 끝난다. 우리 함께 호랑이처럼 힘차게 새로운 복지사회를 향해 꿈꾸며 나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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