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권익 위해 살아온 44년 외길인생 ‘편견 없는 세상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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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권익 위해 살아온 44년 외길인생 ‘편견 없는 세상 꿈꾼다’
  • 편집부
  • 승인 2022.02.08 09:43
  • 수정 2022-02-0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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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남숙 인천광명원 원장

지난해 제16회 인천사회복지상 대상을 수상한 임남숙 인천광명원 원장의 삶에 시각장애인은 과거이며, 현재이고 또 미래였다. 지난 44년간 묵묵히 시각장애인들의 교육과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자립기반 조성에 힘써온 그의 삶 속에 담긴 시각장애인을 향한 따뜻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희망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시각장애인과 동고동락(同苦同樂)의 삶

 

임남숙 원장의 시각장애인과의 삶은 2세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임 원장의 부모님이며, 인천광명원의 설립자인 고(故) 임경삼 목사, 송보애 원장님께서 한국전쟁 이후 1956년부터 시각장애인 고아 6명을 자택에서 양육했고, 자연스럽게 어렸을 적부터 시각장애인들과 언제나 함께 생활하며 이들과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어려움도 함께 지켜봐 왔다.

“제게 있어 시각장애인들은 그냥 오빠이고, 언니이자 동생이었어요. 당시 광명원은 송월동에 위치해 있었는데, 송현동에 있는 교회로 예배를 다녔었거든요. 그래서 예배를 드리러 갈 때는 그분들의 손을 잡고 안내했던 기억이 있지만 그때를 빼면 그분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함께 생활했던 것 같아요. 노래를 매우 잘했던 분도 계시고, 또 피리나 하모니카를 유창하게 연주하시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청각과 후각이 발달해서 식사준비도 척척 해내고, 냄새로 어떤 반찬이 있는지까지 알아맞히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장애에 대한 편견이 쌓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임남숙 원장은 시각장애인을, 보이지는 않지만 다른 뛰어난 감각들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고 이 소신은 시각장애인의 교육과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재활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임 원장은 우선 시각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주거 공간을 변화시키는 것부터 시작했다. 과거 마치 ‘수용시설’ 같았던 어둡고 딱딱한 분위기에서 가정과 같은 ‘친근한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변화를 꾀했다.

“처음 생활 공간을 아파트 형태로 디자인해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 건축 시간도 계속 연장되면서 매년 상승되는 공사비에 비해 정해진 공사 단가는 적다 보니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복지부와 인천시의 지원으로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새롭게 완성된 광명원을 처음 봤을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힘들었던 만큼 큰 보람을 느꼈었죠.”

임남숙 원장이 광명원을 건축했을 당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편안함’이었다. 시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보니 최대한 모서리를 둥글게 하고 경사로의 높이를 낮췄으며, 화장실의 개수를 많이 확보함으로써 기다림 없는 편한 생활이 되도록 했으며, 널찍한 생활 공간을 조성해 서로 부딪침을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 외에도 ‘인권’, ‘자립’, ‘커뮤니티 케어’라는 국가정책에 발맞춰나가기 위해 자체 자립체험 홈을 신설해 운영하고, 이용인의 인권과 안전을 위한 ‘심리안정실’도 운영하고 있어요. 또한, 노유자시설의 취약점인 안전에 관한 기반시설 설치에 만전을 기해 시설 장애인들이 보다 안전한 환경 속에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어요.”

한편, 임남숙 원장은 인천혜광학교 측이 시각장애인의 체육 및 문화활동을 위한 공간이 필요했음에도 학교의 공간 부족으로 진행이 어려워지자 광명원 건물 위에 해당 공간을 설치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해 현재의 ‘삼애관(다목적실)’을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배려 덕분에 현재 ‘삼애관’은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의 합주를 위한 공간으로 쓰는 것은 물론 광명원과 혜광학교를 이용하는 시각장애인의 크고, 작은 행사 등 활동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나아가 지역사회 주민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인재양성과 직업재활 열매 맺다

 

임남숙 원장은 인터뷰 내내 시각장애 정도에 따른 맞춤형 재활과 직업연계에 대해 강조했다. 같은 시각장애인이라도 개인이 가진 특성과 장애의 경중을 구분해 개인에게 맞는 교육과 재활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는 곧 인재양성과 자립과 연계된다는 것이다.

“교육은 지역사회 자립의 기반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광명원에 거주하며 인천혜광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위한 학습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추진해 학습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이 방과 후에 적절히 학습을 받을 수 있도록 학습지원 교사를 배치해 지원했어요. 이를 토대로 인천혜광학교에 대학입시를 위한 진학반이 개설되었고, 진학반 학생들을 위한 시설도 설치하면서 인재 양성의 토대를 만들게 된 거죠.”

실제로 임 원장의 노력으로 추진된 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 전문 직업인이 배출됐으며, 특수학교 교사, 공무원, 사회복지사, 일반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천광명원 출신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시각장애인 후배들을 가르치고 보살피는 일을 이어 가고 있다. 또한 이들은 지역사회로 자립해 가정을 이루기도 하고 단독세대로 거주하며,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임 원장은 설명했다.

 

 

장애 당사자 특성 반영한

직업재활 프로그램 중요

 

임 원장은 중복장애인에 대한 자립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중복장애인의 자립에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시설 내 성인 중복장애 이용인들의 근로 욕구를 바탕으로 ‘자립작업실’을 신설하는 것을 시작으로 보다 체계화된 작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내디딤일터’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장애인 당사자들의 직업능력 향상과 건전한 사회생활 익히기를 도모했다.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지난 2010년 중복장애인들의 직업적응훈련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인 ‘아이드림’이 설립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저는 장애인들의 사회 자립에는 개별 맞춤형 자립 프로그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같은 시각장애인이라고 해도 학습에 관심과 재능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안마 등 기술적인 부분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있고, 또 시각장애 중에서도 저시력자와 전맹 등 개인마다 장애 정도와 특성이 다 다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공부, 안마기술 이러한 시스템만 적용시켜서는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거죠. 현재 아이드림에는 15명의 시각장애인과 15명의 지적장애인이 함께 활동하고 있어요. 이들은 학습적인 교육을 계속 이어가는 데는 힘이 들 수 있지만 단순 조립이나, 협동을 통한 인쇄, 현수막 제작을 하는 데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맞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처럼 장애인의 학습과 재활에도 개인의 성향과 특성에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임 원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시각장애인과 경증의 청각장애인이 함께 할 수 있는 ‘빛나당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보통 장애인 바리스타라고 하면 발달장애인들이 주로 도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들도 반복적 훈련을 통해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현재 이 프로그램의 시각, 청각 장애인들이 바리스타와 제과제빵 자격을 취득한 상태에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2시간씩 광명원 내에서 직접 만든 제과제빵과 커피를 광명원과 혜광학교 이용인, 학생, 교사 등에게 판매하고 있어요. 조금 더 전문화되면 외부에 카페를 오픈할 계획도 가지고 있고요. 이러한 도전이, 시각장애인의 직업이라고 하면 안마사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편견을 한 꺼풀 벗겨내는 데 일조하길 바라요.”

 

혜광브라인드오케스라,

음악 통한 장애인과 비장애인 대화

 

“교육은 사람의 재능을 개발해 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상실된 시각 대신 하나님께서 주신 다른 감각 중 청각과 촉각을 이용해 음악적 감각이 뛰어난 시각장애인을 성장하게 해주는 것 역시 제 소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임남숙 원장은 광명원 이용인과 혜광학교 학생 중 음악적 감각이 뛰어난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지난 2002년부터 개별 레슨 및 동아리 활동으로 피아노, 플롯, 기타, 오카리나, 차임벨 등 연주활동을 진행했다. 이후 2004년부터 2016년까지는 지역사회 자원을 연계한 정기적인 음악교실 활동과 지역사회 내 다양한 발표회 및 연주회 참가 등 적극적인 활동을 지속해 음악적인 감각과 재능이 뛰어난 인재를 발굴하는 기회의 장을 끊임없이 만들어 왔다.

임 원장의 이와 같은 노력이 밑거름되어 2011년 인천광명원을 운영하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광명복지재단에서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된 세계 최초 오케스트라인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가 창단됐다. 이후에도 광명원에서 운영됐던 음악동아리 활동을 통해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인 이용인들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가 지금처럼 발전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시각장애인 당사자들에게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으며, 비장애인은 시각장애인들의 연주를 통해 위로와 감동을 받음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간다고 생각해요.”

임 원장은 지금은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지만 궁극적으로는 미술, 연기, 노래 등 다양한 분야의 장애인예술단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잖아요. 그 재능에는 학습도 있겠지만, 미술, 음악, 노래, 연기, 만들기 등 다양한 부분이 있음에도 장애인들은 자신의 재능을 키울 수 있는 기회조차 갖기 힘든 것이 현실이에요. 최근 정부와 지자체에서 장애인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부분은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만, 아직은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 아쉬운 부분도 있어요, 제가 혜광브라인드오케스트라를 구성하고 운영해 본 결과, 장애인예술단을 운영하는 데는 비장애인단체보다 훨씬 많은 인력은 물론 예산도 필요해요. 당사자뿐 아니라 장애인을 도와주실 보조인도 필요하고, 반복 교육이 필요한 경우, 레슨비와 연습공간 대여비용도 늘어나기 마련이죠. 그런데 이런 세부적인 부분은 반영이 안 된 것 같아 아쉬운 부분이 많아요. 하지만 한편으론 장애예술인에 대한 관심과 지원의 움직임이 시작됐다는 것에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언젠가는 장애인분들이 누구나 자신의 예술적 가치를 선보일 수 있는 분위기와 지원체계가 단단하게 마련돼 보다 다양하고 많은 공연과 전시회 등을 관람할 날이 올 거라 믿어요.”

 

 

장애인은 수혜자가 아닌

동행인으로 바라봐주길

 

임남숙 원장은 모든 사람들이 장애인을 ‘동행인’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오길 희망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분야에서의 차별이 먼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에서는 커뮤니티 케어로 활동보조인 지원과 주택 마련, 일자리 창출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그런 큰 범위 안에서의 지원만큼이나 개개인의 필요에 맞춘 사회적 환경, 정보 접근성, 의료혜택, 문화 참여활동 등 실생활에 밀접한 것들 먼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도 몇몇 분들은 장애인이 받는 다양한 사회적 서비스를 ‘수혜’라고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아 안타까워요. 사회적 서비스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돕기 위한 보조적인 역할이라는 것을 많은 분들이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작은 인식이 하나둘 변해갈 때 우리가 항상 이야기하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사는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억이 희미하게 남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각장애인들과 함께해 온 임남숙 원장에게 시각장애인은 이제 삶 그 자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시각장애인의 복지향상을 위해 묵묵히 걸어나가는 것 역시 일상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임남숙 원장과 함께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는 시각장애인의 내일이 오늘보다 기대되고 밝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차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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