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선거권 행사 위한 인지적 접근권 보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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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선거권 행사 위한 인지적 접근권 보장해야
  • 편집부
  • 승인 2022.02.08 09:14
  • 수정 2022-02-08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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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진 /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헌법은 위와 같이 시작합니다.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근본적인 원칙. 선거는 이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원칙을 함께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실현해나가는 장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형식적이라고도 비판하지만, 그래도 선거가 민주주의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이 선거엔 누가 참여할 수 있는가.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제24조)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공직선거법은 “18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 및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다.”(제15조 제1항)고 정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국민은 [공직선거법 제18조의 제한(1년 이상의 징역∙금고형을 선고받은 자 등)에 해당하지 않는 한] 18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대통령, 국회의원을 뽑을 선거권을 갖습니다. 그 외의 조건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선거권을 누가 갖는지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선거권을 가진 사람들이 선거권을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지입니다. 국가는 선거권자가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습니다(공직선거법 제6조 제1항). 선거권 행사의 의미는 단순히 선거일 당일에 투표함에 투표용지 한 장을 넣고 온다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선거권 행사는 이전까지의 정치에 대한 평가(회고적 투표)이자, 이후의 정치에 대한 기대(전망적 투표)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공적 존재’로서의 한 사람이 존재함을 표현합니다. 선거로 선출되는 정치인들은 어떤 정책을 약속하고 실천할 것인지 고민할 때 한 표를 행사할 한 사람 한 사람을 ‘신경’씁니다. 그런데 선거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치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취급되어 정책 결정 시의 고려대상에서 배제될 것입니다.

장애인이 선거권을 갖는다는 것은 당연한 명제이고, 보유한 선거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29조는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정치 및 공적 생활에 효과적이고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 특히 ‘투표절차, 시설 및 용구가 적절하고, 접근 가능하며, 그 이해와 사용이 용이하도록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7조는 국가∙지방자치단체∙공직선거후보자∙정당은 장애인이 선거권, 피선거권, 청원권 등을 포함한 참정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차별하여서는 아니 되며,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설 및 설비, 참정권 행사에 관한 홍보 및 정보 전달, 장애의 유형 및 정도에 적합한 기표방법 등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지체장애인을 위한 기표대 설치,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선거공보∙점자 투표용지 제작 의무화 등 법적∙정책적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리적 접근성’뿐만 아니라 ‘인지적 접근성’ 또한 주목되고 개선되어야 합니다. 인지적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아 발달장애인의 선거권 행사를 가로막는 두 가지 장벽이 있습니다.

첫째, 선거공보입니다. 현재와 같이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하고 전문적인 용어로 이루어진 선거공보를 받은 발달장애인은 누군가의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스스로 공약을 평가하고 결정할 수 없습니다. 영국, 스웨덴 등에서는 ‘이해하기 쉬운 형태(easy-read version)’의 선거공보가 선거권자들에게 제공되고 있습니다. ‘이해하기 쉬운 형태’란 어떤 정보를 제작할 때 용어, 그림, 용지 등을 발달장애인을 위해 설정된 일정한 기준에 따른 것을 말합니다. 둘째, 투표용지입니다. 숫자와 글자를 인식하거나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발달장애인으로서는 숫자와 글자로만 이루어진 투표용지 앞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자와 정당을 식별하여 기표하기 어렵습니다. 영국(스코틀랜드), 캄보디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는 후보자가 속한 정당의 로고나 후보자의 사진을 포함한 투표용지가 모든 선거권자에게 제공되고 있습니다. 이는 발달장애인뿐 아니라 문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비문해자를 위하여도 유용할 것입니다.

최근 발달장애인 당사자들과 대리인단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이해하기 쉬운 형태의 선거공보 제작 및 그림투표용지 제공을 의무화하라는 차별구제청구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우리 사회가 누구나 자신이 보유한 선거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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