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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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의 승리
  • 이주언
  • 승인 2022.01.1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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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언/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최근에 5살 딸 덕분에 OTT플랫폼을 통해 ‘겨울왕국2’를 봤다. 한국어 자막과 더빙을 선택할 수 있어서 딸은 한국어 더빙을 듣고, 나는 한국어 자막을 함께 보면서 만화영화를 보았다. 2년 전 이맘때가 떠올랐다. ‘겨울왕국2’가 극장에서 개봉했을 때, 농인 엄마가 딸과 함께 만화영화를 볼 수 없어서 엄마도 딸도 너무나 속상했다는 이야기에 나도 속상했다.

2016년 2월 우리는 멀티플렉스 상영업체들을 상대로 배리어프리 영화 즉,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이 제공되는 영화를 상영하라고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우리는 이듬해인 2017년 12월 승소했다. 그리고 극장 측이 항소하여 기나긴 2심 재판을 거치는 동안 코로나가 덮쳤다. 상영업체들은 관객이 줄어서 상영관들을 폐쇄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긴 터널 같았던 4년여의 2심 재판이 끝나고 얼마 전에 판결이 선고되었다. 아주 아주 길고 복잡한 판결문이었다. 줄이면 이런 내용이다. 멀티플렉스 상영업체들은 시각, 청각장애인들을 차별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 현재 개방형 배리어프리(대형 스크린에서 자막이 나오고, 대형 스피커에서 화면해설이 나오도록 한 것) 영화 상영을 하고 있지만 대상 영화, 상영관 숫자와 횟수가 너무 적다. 폐쇄형 배리어프리(자막과 화면해설 수신기기를 통해 해당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 영화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차별이다.

그런데 차별을 시정하는 조치의 내용이 이렇다. 시정조치의 대상은 상영업체들이 운영하는 300석 이상인 상영관 또는 복합상영관은 각 상영관의 좌석수를 모두 합해서 300석 이상이면 복합상영관 당 1개 이상 상영관이다. 예를 들어 여의도의 멀티플렉스에는 총 9관, 1,183석이 있는데, 그중 가장 객석이 적은 58석짜리 상영관(5관)에만 조치를 취하면, 나머지 8개 관 1,125석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된다.

시정조치 방법은 총 상영 횟수의 3%에 해당하는 횟수(토, 일요일 포함)만큼 개방형 또는 폐쇄형으로 배리어프리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다. 일주일 내내 오전 8시 20분 첫 회에 배리어프리 영화를 배치해두어도 3% 횟수 기준만 충족하면 된다. 3%를 넘으면 피고들에게 과도한 부담이라고 하는데, 왜 그런지 판결문을 봐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1년에 10만 원씩 쓸 수 있는 문화누리카드를 극장에서 사용한다면 극장들은 경제적 부담 없이 장애인 관객을 늘릴 수 있다. 그리고 화면해설과 자막 기기는 65만 시각, 청각장애인뿐 아니라 결혼, 취업, 관광 등으로 한국에 있는 200만 외국인들도 쓸 수 있다.

결국, 재판부는 극장들이 장애인차별을 한다고 하면서도, 300석과 3%의 캡을 씌웠다. 300석이라는 기준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에 있는 캡인데 좌석수를 쪼개어 운영하는 복합상영관의 현실과는 맞지 않으니 이 기준은 없애야 한다. 3%는 법령에 근거 없이 재판부가 씌운 캡이다. 보이지 않지만 장애인들을 제한하는 그 견고한 캡이 너무 무겁고 아프고, 화가 난다. 이 소송에 대해서 원고도 피고도 납득하지 못하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관님들께 캡을 깰 수 있는 기회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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