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차별금지법 제정, 더는 ‘합의’ 운운 변명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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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차별금지법 제정, 더는 ‘합의’ 운운 변명말라
  • 편집부
  • 승인 2021.11.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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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4일, 10만 명이 동의한 국민동의청원으로 국회 심사 절차에 들어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안이 지난 11월 10일 심사 기한을 넘겨 또다시 국회 농단에 폐기 처분될지도 모를 처지에 놓였다. 지난 11월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차별금지법 국민동의청원이 21대 국회 임기만료인 2024년 5월 29일까지 연장된 것이다. 이미 한 차례 연장되었던 기한 10일을 불과 하루 앞두고 벌어진 결정이었다. 여야가 침묵으로 동의를 표했고 법사위원장은 만장일치로 가결됐음을 선포한 것이다. 법제사법위가 3년 뒤인 21대 국회 임기만료일까지 심사를 연장한 것은 결국 이 법 제정을 반대하는 보수 개신교계 표심을 의식한 것으로 ‘자동폐기’를 염두에 뒀다고밖에 볼 수 없다.

차별금지법은 1997년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제정을 주장한 이후 꾸준히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국회에 정부 입법으로 처음 발의된 것은 2007년 노무현 정부 때다. 지난 19대 국회까지 차별금지법은 7차례 발의됐지만 모두 소관 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는 발의조차 되지 않았다. 제21대 국회에서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권인숙·박주민·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대표 발의한 4건의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돼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이 처음 공론화한 지 24년째 발의와 폐기를 반복하며 아직도 제자리걸음인 셈이다. 가장 큰 이유는 보수 기독교계가 동성애 등에 대한 입법을 강하게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표를 의식한 국회의원들의 눈치 보기가 크게 작용한 탓이다. 한 표가 아쉬운 두 대선 후보들의 결정적 한마디에 법안 심사 운명이 갈린 셈이다. 국회가 그동안 내세운 논리는 한결같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한국교회총연합회를 방문해 차별금지법을 “일방통행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충분한 논의와 토론을 통해 얼마든지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면서 심사 연기 단초가 됐다. 이에 앞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역시 개식용 금지를 “법으로 제도화하는 데는 여러 사람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차별금지법하고 똑같은 거 아닙니까.”라며 사실상 법 제정 반대 입장을 밝혔다. 보수 기독교계의 표심을 의식한 태도로 볼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 말하는 사회적 합의 운운은 범죄 등 명백한 반사회적 악행 금지를 사회적 ‘합의’ 여부로 할지 말지를 판단하자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상식적으로 ‘차별’과 ‘혐오’를 두둔하는 사람이 있다면 범법자일 뿐이다. 유엔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한국 정부에 아홉 차례나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은 더는 거스를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전 사회적 과제이며 국민적 공감대와 사회적 합의라는 명분은 국회가 침묵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해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국민 88.5%가 찬성했고, 10만 국민동의청원 하면 논의해보겠다 해서 10만 명이 동의하지 않았는가. 이제 정치권의 사회적 합의 운운은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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