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엔 CRPD 선택의정서’ 비준,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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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유엔 CRPD 선택의정서’ 비준, 시작일 뿐이다
  • 편집부
  • 승인 2021.08.2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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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8월 10일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2007년 장애인권리협약(CRPD)에 서명하고 2008년 12월 국회에서 비준했지만, 선택의정서 비준은 유보한 지 12년 9개월 만이다. 국가가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국제조약에는 서명해 놓고 차별할 경우 조사받고 책임지겠다는 부속문서에는 지금까지 서명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의 유보 이유는 ‘국내적 여건 미성숙‘이었다. 하지만, 속내는 직권조사권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선택의정서는 전 세계 96개국이 비준했다. 국회도 6월 29일 ‘선택의정서 비준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더욱이, 7월 유엔 산하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로부터 선진국 지위를 부여받은 나라로서 비준 유보는 더 이상 명분이 없다.

장애인차별금지법 48조는 ‘장애인차별이 발생할 경우 손해배상, 법원의 구제조치 등 사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선택의정서를 유보한 사이,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차별구제 청구는 고작 14건에 그쳤다. 그중 시정조치로 인용된 사건은 7건뿐이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한 구제조치는 단 한 건도 인정되지 않았다. 진정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높은 기각률도 심각한 실정이다. 이처럼 국내에서 장애인차별 구제문제는 제도적인 한계에 이르렀다는 게 장애계의 시각이다. 그동안 장애계가 권리구제를 위해 끊임없이 선택의정서 비준을 촉구하고 나선 이유이다. 국내법만으로 해결이 되지 않으니 국제법에 호소해 보겠다는 것이다.

장애계가 그토록 갈망하는 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의 핵심내용은 개인진정제도와 직권조사권 두 가지이다. 선택의정서는 개인이 국내의 모든 법적, 행정적 절차를 거쳤음에도 구제받지 못한 경우 유엔에 진정할 수 있는 개인진정제도와 진정이 없어도 심각한 인권침해를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인지할 때 해당 국가를 방문해 직권으로 조사하는 직권조사권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처럼 개인진정제도는 국내 권리구제 절차를 모두 거친 후에도 자신의 권리가 훼손되었다고 생각될 때 사용할 수 있는 최후의 절차적 권리인 것이다. 그래서 선택의정서 비준은 피해자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권리구제는 물론 국내 인권 증진을 위해서도 필요한 절차이기에 더 이상 미뤄져서도 안 된다.

그러나 선택의정서가 비준된다고 해서 장애인들의 인권과 권리가 하루아침에 개선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선택의정서 비준이 실효성 있게 작동하려면 여러 후속조치가 수반돼야 한다. 장애인의 개인진정을 돕는 지원책도 필요하다. 차별피해자가 장애인권리위원회에 진정해 차별 결정을 받더라도 국가가 이를 무시하면 그만이다.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장애인차별 시정 권고를 이행할 구속력이 있는 후속 절차법이 마련돼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이후에도 국내법과 제도, 구제절차 등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와 정비가 뒤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국제법 하의 개인진정과 직권조사 없이도 국내법만으로 해결되는 인권선진국으로 국격을 끌어올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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