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서비스 이용자의 초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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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서비스 이용자의 초상권
  • 편집부
  • 승인 2009.11.06 00:00
  • 수정 2013-02-05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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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수 /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정책자문위원, 제주장애인인권포럼 대표
▲ 고현수 /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정책자문위원, 제주장애인인권포럼 대표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왕세자탄강진하도십첩병(王世子誕降陳賀圖十疊屛)’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고종이 앉아야 할 자리에 고종이 없다는 것이다. 단지 왕이 앉을 의자만이 그려져 있다. 1874년 왕세자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연회를 베푼 장면을 그린 것인데 이 연회의 주최자인 고종이 없다는 것은 의문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에선 당연한 것이었다. 왕은 그릴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정조가 한양에서 화성으로 행차하는 모습을 그린 ‘화성행행반차도(正祖大王華城幸行班次圖)’에서도 정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왕이 타고 앉을 말과 햇볕을 가릴 일산만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왕의 얼굴은 보여서는 안 되는 성역이었던 것이다. 단 필요에 따라 어명을 내려 어진을 그리게 하였는데 봉건왕조시대의 초상권은 단 한 사람 왕에게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초상권은 계급특권이 아니라 시민인권으로서 보편적 권리가 되었다. 초상권의 핵심은 개인의 신체에 대한 공공적 권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복지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 노인 등 신체적 허약자에게 초상권은 그 의미가 특별하다고 하겠다. 인권신장이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신체란 개인에 국한된 개념이고 법적 보호의 대상이 아니었다. 특히 장애인의 경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본인 동의 없는 신체기능에 대한 보완과 수술 등 외과적 의료행위가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더러 초상권 역시 지켜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초상권이 존중되면서 자신신체를 보호할 수 있고 자기 초상이 승낙 없이 전시 또는 게재되었을 경우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 동의 없는 신체의 촬영과 그 촬영된 모습이 세상 밖으로 알려졌을 경우 처벌을 법문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명인을 쫒아 다니는 직업적 파파라치는 물론, 무신경하게 사회복지이용자의 사진을 공개적 자리에 유출했을 경우 이 역시 법의 잣대로 보았을 때는 처벌적 손해배상 요구감이다.


 필자는 도내 일간신문 칼럼에서 대학사회복지사진전의 문제점을 비판한 적이 있는데, 사진전 팸플릿에 등장하는 시설생활인의 얼굴을 본인동의 하에 촬영하였는가가 핵심이었다. 이 후 학생회 대표가 학생들의 순수성은 존중되지 않고 초상권만을 갖고 비판한 것이 못마땅하여 항의전화가 온 적이 있었다. 사진촬영에 대한 본인의 동의가 없었을 뿐더러 시설측에서 설령 동의가 있었더라도 본인 동의를 구하지 않았기에 이는 명백히 초상권 침해이다. 솔직히 많은 현장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들, 자원봉사자들이 사회복지 이용객의 초상권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는지 반문하고 싶다.


 요즈음 신문지상에는 겨울이 가까워짐에 따라 사회복지시설이나 소외계층 가정을 찾는 독지가들의 미담기사가 부쩍 늘고 있다. 기사사진을 보면 쌀과 라면 등 부식류 상자에 기증표시를 돋보이게 배치하고 클라이언트와 함께 찍은 단체사진이 같이 실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겨울나기를 도와주는 이분들의 선행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 물적·심적 봉사자의 행위 못지않게 받는 입장의 클라이언트의 초상권 보호도 중요하다. 이는 인권보호의 영역이다. 사진촬영에 동의 여부를 묻는 세세함은 봉사활동을 넘어 인권보호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사진전을 통해 사회복지현장을 조금이나마 세상에 알리려는 예비사회복지사 학생들이나 경제적 공황임에도 불구하고 생활시설을 찾는 봉사자 모두 그 분들의 순수성은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더욱 부탁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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