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립 근거 포기한 대법원 ‘형제복지원’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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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립 근거 포기한 대법원 ‘형제복지원’ 판결
  • 편집부
  • 승인 2021.03.1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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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군사정권 시절인 1970~80년대 ‘부랑인 선도’라는 명분으로 3천여 명의 시민들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과 학대, 성폭행 등을 비롯해 500여 명을 숨지게 한 당시 고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이사장에 대한 1989년 대법원의 무죄 판결이 잘못됐다며 검찰총장이 제기한 비상상고가 기각됐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의 핵심은 신체의 자유 침해가 아닌 헌법의 최고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됐다는 점”이라고 규정하면서도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초유의 인권유린이 자행된 사건에 대해 ‘법리상 불가피성’을 내세워 비상상고를 기각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대법원이 위헌이자 무효인 법령을 전제로 “다른 비상상고 사건과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법적 안정성’만 고집하는 것은 주객전도이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등 진실규명 작업으로 피해자의 아픔이 치유돼 사회통합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반헌법적인 국가 정책으로 반인권적 인권유린이 벌어진 사건에 대해 뒤늦게나마 법적 단죄를 내려도 모자랄 판에 사법부가 사실상 진실화해위에 사건을 떠넘겨 직무를 유기했다. 1989년에도 법원은 박 전 이사장의 행위가 정부 훈령에 근거한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형법 제20조 ‘정당행위’로 판단해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사법부조차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비호한 것은 물론, 32년이 지난 오늘 사법농단의 사법부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7년 이곳을 탈출한 사람들에 의해 그 만행이 세상에 알려졌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길거리 등에서 발견된 무연고자들은 물론 장애인·고아·가족이 있는 일반 시민·어린아이들까지 잡아다 이곳에 강제로 감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복지원은 말이 복지원이지 실상은 삼청교육대와 같은, 합법을 가장한 강제 수용시설이었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12년간 잡혀간 사람만 3만7천여 명에 공식 사망자가 513명이라고 한다. 당시에도 검찰의 부실·축소 수사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검찰은 형제복지원 원생들에 대한 불법구금, 폭행, 사망 등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정부 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가해자인 박인근 이사장을 업무상 횡령 혐의 등만 인정해 징역 2년 6월 선고에 그쳤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사실상 국가에 의한 반사회적 범죄행위다.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사회정화사업’이란 이름으로 정당화됐다. 박인근은 군부 독재정권 하수인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형제복지원 사건이 인권유린 사건인 만큼 국가가 도의적인 책임을 다하는 차원에서 원심을 파기해야 한다는 검찰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법을 무시한 내무부 훈령에 근거해 중대한 인권침해가 자행됐는데도 대법원은 정의의 수호보다는 법리의 안정성을 택함으로써 법의 존립 근거를 사법부 스스로 허물었다. 이제 남은 건 진실화해위 몫이다. 서둘러 국가 폭력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사법부가 외면한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명예회복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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