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사건' 비상상고 기각…무죄 판결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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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사건' 비상상고 기각…무죄 판결 유지
  • 이재상 기자
  • 승인 2021.03.12 09:38
  • 수정 2021-03-16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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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박인근 무죄 판결, 비상상고 사유로 정한 ‘사건
심판이 법령 위반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 판결
“헌법 최고가치인 인간의 존엄성 침해” 된 점은 인정

3천여 명이 끌려가 500여 명이 숨진 형제복지원 사건의 당시 책임자인 고(故) 박인근 전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검찰이 제기한 비상상고가 기각됐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특수감금 혐의로 기소돼 무죄를 확정받은 박 씨의 비상상고심에서 “이번 사건은 비상상고의 사유로 정한 ‘그 사건의 심판이 법령을 위반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3월 11일 기각 판결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군사독재 시절인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장애인과 고아 등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과 구타, 성폭행 등이 자행돼 12년간 513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원장 박 씨는 특수감금 등 혐의로 기소됐지만, 1989년 법원은 박 씨의 행위가 당시 정부 훈령에 근거한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형법 제20조 ‘정당행위’로 판단해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당시 법원의 박 씨에 대한 무죄 판결은 비상상고의 근거가 된 내무부 훈령이 아니라 법령에 의한 행위를 처벌하지 않도록 한 형법 20조”라며, ‘내무부 훈령은 형법 제20조 적용의 전제로 삼은 여러 사실 중 하나로, 박 씨에 대한 무죄 판결은 법령위반’이 아니라 법령 적용의 전제 사실을 오인한 것이어서, 비상상고의 요건에 맞지 않는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형사소송법 제441조 ‘비상상고’란 형사사건 확정판결에 법령위반이 발견된 경우 검찰총장이 잘못을 바로잡아 달라며 대법원에 직접 상고하는 비상절차로, 법령 적용의 오류를 시정함으로써 법령의 해석·적용의 통일을 도모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이 법령에 위반한 때에는 그 위반된 부분을 파기하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제446조(비상상고의 파기판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대법원은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은 폭행을 당하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하더라도 저항하지 못하고, ‘부랑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격리·고립되어 소외된 삶을 살아 왔다.”면서도, “법령위반의 의미와 범위에 관하여는 다른 비상상고 사건에서 적용한 것과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원칙을 벗어나면 확정판결의 법적 안정성에 커다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이번 사건의 핵심은 신체의 자유 침해가 아닌 헌법의 최고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됐다는 점”이라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등 진실규명 작업으로 피해자의 아픔이 치유돼 사회통합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2018년 9월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는 “위헌·위법인 내무부 훈령 410호를 적용해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 등의 원생들에 대한 특수감금 행위를 형법상 정당행위로 보고 무죄로 판단한 당시 판결은 형사소송법이 비상상고의 대상으로 규정한 ‘법령위반의 심판’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며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형제복지원 사건을 비상상고 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문무일 검찰총장은 2018년 11월 27일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을 서울 이룸센터에서 만나 “과거 정부가 법률에 근거 없이 내무부 훈령을 만들고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국가 공권력을 동원해 국민을 형제복지원 수용시설에 감금했다, 게다가 강제노역을 시키면서 폭력행사 등 가혹행위를 해 인권을 유린했다.”며 “당시 김용원 검사가 형제복지원의 인권유린과 비리를 적발해 수사를 진행했지만, 검찰이 외압에 굴복해 수사를 조기에 종결하고 말았다. 인권이 유린되는 사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검찰 본연의 역할에 전력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형제복지원 피해자와 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공식사과와 함께 비상상고 했다.

한편 피해자들을 대리한 박준영 변호사는 “중대 불법을 저지른 사람의 무죄 판결을 바로잡지 못한 것은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면서도, “대법원은 판결이유에서 국가의 조직적 불법 행위를 인정했고, 이는 소멸시효가 없는 사건이 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면서 “이번 판결이 피해자들의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도움이 됐으면 됐지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임을 피력했다.

이재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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