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로 바꾸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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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로 바꾸는 세상
  • 편집부
  • 승인 2021.02.19 09:23
  • 수정 2021-02-19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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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완 8단/아름바둑 창시자

 

“이거 보라고. 애들이 이렇게 많이 바뀌었잖아.” 비디오 영상을 보여주며 조금 흥분해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자폐아동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모습을 꾸준히 영상에 담았고 동료기사들에게 발전과정을 설명하는 중이었다. 몇 개월 배우지 않았음에도 아이들은 확연히 많이 바뀌어 있었다. 3초 이상 초점을 맞추기 힘들어하던 아이가 10초 이상 집중해서 바둑판을 볼 수 있었다. 동시에 소근육도 많이 좋아졌으며 착석시간도 길어졌다. 짧게는 두 달, 길게는 1년 사이에 아이들은 상당한 발전을 보여줬다.

자폐인을 대상으로 바둑을 쉽게 가르치기 위해 만든 아름바둑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바둑을 어떻게든 둘 수 있고 승부를 이해하기만 하면 아이들은 이기고 싶어 했으며 그런 승부욕이 여러 발전을 가지고 오는 듯했다. 승부욕이 없는 아이들도 재밌어하고 두고 싶어 했다. 처음으로 또래들과 승부를 겨뤄보는 경우가 많았다.

아름바둑을 개발한 건 자폐인들의 부모님 때문이었다. 나 자신이 갓 태어난 딸아이의 부모로서 그들의 사연을 듣고 공감하며 그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데 대한 무한한 영광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내가 하는 이 중요한 일에 모두 동참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폐인에게 바둑을 가르친다면 우리 사회에 큰 변화가 있을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적어도 절반의 프로기사들이 자폐인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바둑 역사상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허황된 기대라는 걸 아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0%, 20%, 10% 자꾸만 기대수준이 내려갔다. 사실 이 어려운 일을 생업에 영향까지 받으며 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수밖에 없다. 나도 처음부터 이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지금은 동료기사들 중 1% 정도가 함께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정도로도 아주 큰 힘이 되며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만약 이 숫자가 3%가 된다면 정말 세상은 바뀔 수 있을 것 같다.
1%란 숫자는 다른 그룹에서도 크게 다를 거 같지 않다. 그렇다면 99%의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너무 매정한 걸까? 그렇지 않다. 장애인들을 도울 수 있는 여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그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3%의 비장애인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제일 먼저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적 지원이 우선되어야 한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으며 특히 자폐를 비롯한 발달장애는 아직 원인조차 모르고 있다. 본인이 그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 사회와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두 번째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과 그들의 가족을 만나볼 필요가 있다. 직접 대면해서 만나보는 것이 가장 좋을 테다. 외국처럼 고등학교 졸업을 위해서 봉사활동을 강제하는 방법도 좋을 거 같다. 기업에서 나서주는 것도 좋겠다.

마지막으로 민간단체의 지원도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름바둑은 재단법인 한국기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한국기원이 없었다면 아름바둑은 없었을 것이다.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100여 명의 발달장애인에게 아름바둑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봉사였지만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소정의 강의료를 받고 있다. 나 말고 13명의 프로기사도 똑같이 강의료를 받는다. 강의에 가장 열성인 지도자 중 2명은 각각 3명의 아이를 둔 주부 프로기사다. 애들을 힘들게 키우면서 그 누구보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발달장애인 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님을 만나고 나서부터 사명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나면 그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시간이 그 무엇을 하는 시간보다 값지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기원도 처음부터 적극적이었던 건 아니었다. 우선 일반 바둑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다는 데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쉽게 말해 바둑을 보급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바둑 보급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긴다.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기원은 아름바둑을 보급하는 일이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도 했다. 가장으로서 가정을 책임지듯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희생인가. 기업과 민간단체도 마찬가지일 테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런 영광스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모두 조금씩만 힘을 합친다면 3%의 기적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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