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당사자주의와 맞춤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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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당사자주의와 맞춤서비스
  • 강내영/화면해설 작가
  • 승인 2020.12.17 09:48
  • 수정 2020-12-17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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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시력인 화면해설작가다. 아마도 ‘화면해설’이라는 단어가 많이 낯설 것이다. ‘화면해설’은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시각적 정보와 소리로 알 수 없는 청각적 정보를 음성으로 제공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외국에서는 Audio Description, ‘음성해설’이라는 단어로 다양한 분야에서 통용해서 쓰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화면해설’, ‘현장해설’, ‘영상해설’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에 따라 여러 단어로 쓰이고 있다.

조금은 낯선 이 단어가 이 글을 통해 친숙해지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더 낯선 ‘장애인 당사자주의’에 대해 찬찬히 써내려 보고자 한다.

현재 나는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라는 배리어프리콘텐츠 제작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배리어프리’란 장애유무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음성해설)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수어를 제공하는 콘텐츠를 말한다.

내가 회사를 설립하게 된 이유는 7년 전, 청각장애가 있는 대학동기가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 당시에 초창기 멤버로 함께 했었는데 그때 자신에게 필요한 문자통역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아서였다. 흔히들 말하는 ‘장애인 당사자주의’를 그때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장애 관련 서비스들은 비장애인들에 의해 만들어져 제공이 되는데 장애인의 욕구가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에 장애인 당사자가 중심이 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야 장애인 당사자의 욕구와 장애 정도, 유형에 따라 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By the Blind(시각장애인에 의한), For the Blind(시각장애인을 위한), Of the Blind(시각장애인의)’를 내걸고 시각장애인 참여 시스템, 나아가 청각장애인들도 참여하는 시스템으로 배리어프리콘텐츠들을 제작하게 됐으며, 영상뿐만 아니라 공연, 전시, 관광 등 다양한 분야해서 작업을 하고 있다.

‘맞춤 서비스’란 무엇일까? 기존 배리어프리버전의 경우 화면해설과 자막이 함께 제공이 되는데 잔존청력을 가지고 있는 청각장애인들이 불만 사례가 많았다. 대사 사이 빈 공간에 제공되는 화면해설이 잡음으로 느껴져 피로감을 호소하거나 감상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이다.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 장애 영역인데 서로 다른 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는 건 이용자 측의 편의가 고려되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 의견들을 반영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버전 따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수어버전을 따로, 화면해설과 자막수어 합본을 따로 제작하게 되었다. 의뢰를 하는 곳에도 명목상이 아닌 장애 영역에 맞는 맞춤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이해를 시키고 있다.

얼마 전 국립극장에서 만든 창극 <춘향>의 배리어프리버전을 제작했었는데 세계 최초 시각장애인 앵커인 이창훈 씨에게 화면해설 내레이션을 맡겼었다.

화면해설을 녹음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성우의 경우 영상 재생 시간의 1~2배 정도 소요된다. 배우의 경우 2~3배 정도 소요가 되는데 이창훈 씨의 경우 4~5배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유인즉 점자단말기로 화면해설대본상 대사가 아닌 화면해설 문장을 찾아 촉지한 뒤 읽는 데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재녹음 시 해당 문장을 찾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화면해설이 들어갈 타이밍을 표시한 TC(타임코드)가 대본에 삽입되어 있지만 눈으로 찾는 시간과 손으로 찾는 시간이 차이가 있었다.

장애인 당사자주의 시스템에서 ‘맞춤 서비스’라는 것은 ‘서비스 제공’에서도 필요하지만 ‘제작 과정’에서도 필요하다. 장애인 참여자들에게 맞춤 서비스(제작 환경)가 제공이 되기 위해서는 비장애인의 이해와 협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주의라고는 하지만 비장애인 없이는 어려운 것 또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소통하며 만들어간다면 만족도 높은 서비스가 제공이 될 것이며, 장애인의 사회 참여 또한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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