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느끼는 사람의 체온, 2020 장애인인권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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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느끼는 사람의 체온, 2020 장애인인권영화제
  • 정다희 사회복지사/함께걸음인천장애이자립생활센터 IL팀
  • 승인 2020.11.20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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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인천장애인인권영화제

“답답해 죽는 줄 알았잖아” 지난 11월 12일부터 13일까지 이틀 동안 온라인으로 개최된 ‘2020 인천장애인인권영화제’ 초청작 영화 <나는 보리>의 대사이다. 주인공 ‘보리’가 학급에서 겉돌며 친구들의 물음에도 항상 묵묵부답으로 생활하다 겨우 한마디 대답하자, 같은 반 친구는 “그동안 네가 말을 하지 않아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고 말한다. 보리는 농인 가족에서 유일한 청인 아이다. 처음 세상을 마주할 때부터 청어가 아닌 수어로 가족과 소통했던 보리는 누군가 답답해 죽는 상황을 너무나 당연한 일상으로 경험하며 자랐다.

우리도 보리와 보리 친구처럼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들을 낯설게 받아들이지만, 곧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그 나이 또래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나누고 공통점을 발견하고 남이 아닌 친구가 된다.

이처럼 우리는 영화를 통해 주인공의 생각과 상황에 빠져들며 등장인물의 장애 여부를 뒤로하고 보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어떤 인간에 몰입하게 된다. 그 순간 우리는 장애를 뛰어넘고 에피소드를 공유하며 함께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 가운데 보리가 느꼈던 소외감, 그리고 아이가 원했던 동질감, 모든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이야기하며 ‘2020 인천장애인인권영화제’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온도 36.5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시작되었다.

처음, 장애인문화에 문을 두드리다

2020년, 늦은 감이 있지만 살고 싶은 도시, 함께 만드는 인천을 만들기 위해 인천에서도 10편의 다양한 장애인인권영화로 꾸며진 영화제가 개최되었다.

내가 장애인인권영화제를 처음 경험한 것은 ‘2014년 서울인권영화제’를 통해서였다. 그중 <만복아 약먹자!>라는 작품은 정신장애인그룹홈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재활학과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있지만, 나는 정신장애인의 존재와 그룹홈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전공서적을 통해서만 이해하고 있었을 뿐 장애당사자의 에피소드를 보고 감정을 공유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일전의 <맨발의 기봉이>, 영화 <레인맨>을 보며, 장애인 주인공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좀 더 다듬어지지 않은 솔직한 감정들을 온전히 느끼며 영화라는 통로를 통해 장애인 당사자와 교감할 수 있었다. 물론 맨발의 기봉이와 레인맨은 훌륭한 영화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삶은 맨발의 기봉이처럼 선악이 뚜렷하지 않고, 레인맨의 주인공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인천장애인인권영화제를 통해 장애인들이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 그리고 장애인 주변인들의 담담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프라이빗한 열린 축제

영화제의 온라인 개최를 준비하며 가장 큰 문제는 영화 배급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극장을 통한 현장 개최가 아닌 온라인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때문에 영화가 불특정 다수에게 송출하게 되어 불법 녹화와 캡처, 녹음에 무방비하게 노출시킬 수 있다는 감독님들과 배급사들의 우려가 뒤따랐다. 결국 아쉽지만 이러한 우려를 반영하여 상영관에 비밀번호를 걸어 정보제공에 동의하고 사전에 예약한 한정된 인원만 입장이 가능하게끔 운영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번 장애인인권영화제를 특정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지역주민 모두를 위한 축제의 장을 만들고자 고민했었다. 하지만 비밀번호를 건 영화제를 준비하게 되면, 이전에 가졌던 많은 고민들, 노력들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고민을 통해 영화제 준비의 최우선 순위로 ‘장애인인권영화제는 영화를 통한 장애인 인권선언이다’를 다시 내세우고, 불특정 다수에게, 보통의 체온, 보편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공유하며 공감을 얻고자 했던 영화제의 목적을 되새겼다.

비밀번호를 제공받아 영화를 관람하는 대신 앞뒤로 개막, 폐막작, 부대행사는 비밀번호 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부대행사 중 ‘감독과의 대화’는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되어 채팅을 통해 자유롭게 질문을 받고 소통할 수 있도록 진행해 현장감을 살렸다.

첫 인천장애인인권영화제는 이렇게 안정성과 개방성을 모두 꾀하며 진행되었다. 다만,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진행되어 직접 사람들과 호흡하고, 소통하지 못했던 점이 아쉬웠다. 이후 이러한 아쉬움은 사전예약 인원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통한 만족도 조사를 실시해 랜선 넘어 여러 장소에서의 현장의 소리를 듣는 것으로 해소하고 있다.

끝내며

‘2020 장애인인권영화제’의 큰 의미는 인천이라는 좌표 평면 위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며 점으로 서 있던 장애인 관련 단체들이 문화를 통한 장애인인권 향상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함께 행사를 준비했다는 데 있다. 코로나라는 꽁꽁 언 땅에 첫 삽을 뜨는 게 쉽지 않아 우여곡절도 많고, 기획만큼 완벽한 영화제는 되지 못했더라도 처음으로 인천 내 장애인 관련 단체들이 손을 맞잡고 큰 한 걸음을 띄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인천장애인인권영화제가 일회성이 아닌 인천 내 큰 행사로 자리잡기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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