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올림픽에서 승리의 방아쇠를 당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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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올림픽에서 승리의 방아쇠를 당기고 싶어요”
  • 차미경 기자
  • 승인 2020.10.06 10:15
  • 수정 2020-10-06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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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최초 장애인사격팀
심재용 감독과 강명순-김규호-박승후-김문열 선수
인천 최초 장애인사격팀인 (왼쪽부터)심재용 감독, 김규호, 김문열, 강명순, 박승우 선수.
인천 최초 장애인사격팀인 (왼쪽부터)심재용 감독, 김규호, 김문열, 박승우, 강명순 선수.

인천의 첫 사격분야 장애인실업팀이 지난 9월 1일 창단했다. 소속 선수이자 감독을 맡은 심재용 감독과 강명순, 김규호, 박승우, 김문열 선수로 구성된 사격팀은 인천의 첫 사격분야 장애인실업팀이다. 역도와 배드민턴에 이은 세 번째 실업팀이다. 각기 사격을 시작한 동기와 시점은 다르지만 국가대표로서 올림픽에 참가해 메달을 목에 거는 최종 목표를 향해 과녁 정중앙에 총구를 겨누는 5명의 사격인을 만나보자. 

 

실업팀 첫 감독 자리

부담만큼 기대감도 높아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에 위치한 국제사격장에서는 고요한 긴장감 속에 명쾌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자가 이곳을 찾은 날도 인천사격장애인실업팀 선수들 역시 연습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진지하고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장애인 사격의 참가자격 기준은 척추 및 기타 장애(SH1)와 경추장애(SH2)로 나뉘는데, 인천실업팀의 심재용 감독과 강명순, 김규호 선수는 SH1에, 팔과 손가락 사용이 힘들어 총 받침대 등을 활용해 사격에 임하는 SH2 종목에는 김문열, 박승우 선수가 속해 있다.

우리나라 장애인 사격 국가대표이기도 한 심재용 감독은 첫 실업팀의 감독이라는 자리가 부담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기대심도 높고, 잘 해내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고 말했다.

사실 실업팀 입단은 모든 체육인이 희망하는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장애체육인들에게 ‘꿈의 직장’과도 같았다.

심 감독은 실업팀 이전과 이후의 변화를 묻는 기자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고 표현했다. “장비부터 실탄까지 모든 게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실업팀 이전에는 선수들이 실탄을 직접 구매해서 사용해야 하는데, 화약총탄의 경우 한 발의 가격이 300원이어요. ‘빵’하고 한 번 쏠 때마다 300원씩 쓰이는 거죠. 그런데 그게 모두 선수 개인이 감당해야 하다 보니, 연습 자체도 부담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실업팀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 지원이 되다 보니 선수들이 훨씬 연습에 집중할 수 있죠.”

심재용 감독은 다른 선수들은 받지 못하는 혜택을 받고 있기에 더욱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도 말했다. “현재 인천시에 등록돼 있는 장애인 사격선수는 21명이에요. 그중 저를 포함해 5명 만이 실업팀으로 뽑힌 거죠. 장애체육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실업팀 선수가 된 만큼 저희 팀 모두가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심 감독은 팀을 대표해서 인천시와 인천시장애인체육회에 감사를 전했다. “저를 비롯한 다섯 명의 선수들이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운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준 박남춘 시장님과 이중원 인천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님께 이 자리를 통해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기대와 지원에 부응해 꼭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이를 통해 제2, 제3의 장애인실업팀이 창단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강명순, 10년간 국가대표

도쿄올림픽에서 결실 맺길

심재용 감독과 함께 우리나라 장애인 사격 국가대표인 강명순 선수에게 2021년으로 연기된 도쿄올림픽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지난 2010년부터 사격 국가대표로 활동했고, 1년 미뤄지긴 했지만 도쿄올림픽이 딱 10년되는 해이기도 하다 보니 저 개인적으로는 꼭 메달을 따는 결실을 맺고 싶다는 욕심과 목표가 있어요. 그래서 하루하루 연습이 소중하고, 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1984년부터 배드민턴과 볼링 등 다양한 장애인체육 종목에 참여했던 강명순 선수는 2005년 지인의 추천으로 심재용 감독과 연이 닿아 지금까지 사격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처음에는 볼링과 배드민턴 등 동적인 운동을 하다 사격을 하려고 하니 재미도 없고 힘들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과의 싸움이고, 제 자신을 이겨내고 그만큼 발전하는 게 눈에 보이니 점점 재미가 붙더라고요. 내가 얼마만큼 노력하느냐에 따라 점수로 그 결과가 나오는 것이 어떨 때는 잔인(웃음)하기도 하지만 사격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인 것 같아요.”

인천장애인사격실업팀에 첫 선수가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는 강 선수는 보다 훌륭한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서라도 실업팀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운동선수는 운동으로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 그렇다 보니 내가 인천에 사는 사람이어도, 일할 곳이 없으면 다른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사실 그러한 이유로 많은 실력 있는 선수들이 다른 지역으로 가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고요. 이번 사격실업팀 창단을 통해 보다 많은 장애인실업팀이 생겨나고, 훌륭한 선수를 육성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김규호, 실업팀에 들어오고

‘소속감’생겨 훈련에 더 집중

 

2017년 교통사고로 병원에 장기가 입원했다가 퇴원하고 집에서만 활동하던 김규호 선수는 사고 전 유해조수 구제(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멧돼지나 새를 쫓기 위한 목적) 활동을 했던 것을 바탕으로 장애인 사격에 도전했다.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실업팀에 들어온 뒤 ‘소속감’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 소속감이라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우리가 누군가의 가족으로 살고, 결혼을 하고, 회사를 다니고 하는 모든 것의 기본에 ‘소속감’이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어떠한 울타리 안에서 내가 맡은 일을 해내며, 그에 따른 인정을 받는 것이야말로 사회활동에 기본이잖아요. 실업팀 이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그러한 감정을 실업팀 입단 후 크게 느끼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안정된 마음으로 연습에 매진할 수 있게 됐고, 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표를 잡는 것도 한결 수월해졌고요.”

김 선수는 장애인스포츠 실업팀 환경이 개선돼 보다 많은 선수들이 안정적으로 운동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비장애인 스포츠계와 비교해 보면 장애 선수들이 실업팀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잖아요. 보다 많은 장애선수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운동에 매진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됐으면 좋겠어요.”

 

 

김문열, 점점 굳어가는 근육

사격 도전으로 다시 희망 찾아

생활탁구 생활을 6년간 해오던 김문열 선수는 점점 굳어가는 근육으로 인해 운동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장애인 사격선수가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을 듣고 사격이라면 나도 다시 도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문을 두드렸던 것이 사격선수로의 첫 발걸음이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실업팀 입단하기 전에는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어요. 점점 굳어가는 근육 때문에 다른 운동을 포기했는데, 사격은 제 상태로도 가능하다는 얘길 듣고 시작했는데, 장비부터 실탄까지 들어가는 비용도 많다 보니, 노모와 단둘이 기초생활비를 받으며 살아가는 제게는 모든 것이 부담이었죠.”

김 선수는 비싼 실탄비용 때문에 대회 2~3일 전에만 실탄으로 연습할 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선수의 생활을 이어왔다. “실업팀 입단 후에는 우선 실탄 걱정은 안 하고 있어요.(웃음) 또 월급도 나오다 보니 생계도 많이 나아졌고요. 사실 저처럼 생계 때문에 실력과 욕심이 있음에도 중간에 운동을 포기하는 장애선수들이 정말 많이 있어요. 돈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거죠. 실업팀과 지원이 늘어나서 실력 있는 선수들이 마음껏 운동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에요. 또 현재 운동을 하고 있는 장애선수들에게 저희 사격실업팀이 좋은 자극제 역할이 돼서 그들이 보다 성장하는 발판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박승우, 나이는 제일 어리지만

목표는 가장 높게 잡고 있어요

실 업팀의 막내인 박승우 선수는 20대 초반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됐지만 그는 그 상황을 원망하며, 포기하기보다는 새로운 삶에 대한 목표와 도전을 택했다.

“중환자실에서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기사를 보고 있었는데, 그때 리우팰럴림픽에서 소총 종목에 이장호 선수가 동메달을 따는 것을 보고, ‘아! 나도 저걸로 생계를 유지해야겠다’라고 결심을 하고, 퇴원도 하기 전에 장애인사격연맹에 문의를 했었어요. 물론 당시에는 실업팀이 없다 보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제 생각과는 다르긴 했지만(웃음) 결국 지금 첫 번째 목표를 달성했잖아요.”

그의 말대로 사격선수로 생계를 유지하는 데 성공한 박 선수의 다음 목표는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고, 최종 목표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올림픽이 1년 미뤄지면서 국가대표 선발전이 다시 치러질 계획이에요. 그 선발전에서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것이 목표예요. 그리고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꿈꿀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거는 것, 그것이 최종 목표죠. 그 순간을 위해 하루하루 힘들지만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거고요.”

기자 역시 절망에 빠져 슬퍼하는 것보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는 그의 모습에서 멀잖은 미래에 메달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를 TV를 통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사격을 시작한 시점과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한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방아쇠를 당기는 그들의 희망의 총알이 과녁 한가운데에 꽂히길 응원한다.

 

차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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